“왕자도 별것 아냐, 혼자 살아도 괜찮아”… 공주도 변하더라

    입력 : 2016.11.15 17:48

    [The 테이블: 시대를 반영한 디즈니 공주들]
     

    지난 한 달간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디즈니 영화관’이 열렸다. 90년대 개봉한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알라딘’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첫 줄 구석 자리라도 괜찮으니 제발 한 자리만…’ 하고 애를 태웠지만 빈자리는 없었다. 디즈니 영화관이 인기를 얻자 이번 달 메가박스 하남 스타필드점에서 연장 상영을 한다.

    90년대 개봉한 디즈니 영화 ‘인어공주’(왼쪽)와 공주의 전형을 깬 드림웍스 영화 ‘슈렉’의 피오나 공주.

    “20년 전 만화영화에 왜 그리 목매느냐” 묻는다면 당신은 30대 여성이 아니다. 90년대 초반, 디즈니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는 것은 10대 소녀들의 연례 문화 행사였다. 1991년 ‘인어공주’가 개봉했을 때 내가 살던 서울 아파트 단지 근처 극장에서는 입석표까지 생겼다. 피아노학원 질색하던 친구들도 ‘어 홀 뉴 월드’(‘알라딘’)나 ‘뷰티 fosem 더 비스트’(‘미녀와 야수’)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제가는 외워서 쳤다. 어리고, 예쁘고, 날씬했으며 언제나 왕자와 사랑을 이뤘던 공주는 여자애들 사이 최고 인기를 누렸다.

    이들이 IMF 외환 위기와 대학 입시를 겪었다. 예쁘고 순진하게, 왕자님과의 사랑을 꿈꾸다가는 굶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성기를 누렸던 디즈니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때마침 드림웍스가 ‘슈렉’(2001)을 내놨다. 덩치 크고 못생긴 이 영화의 초록색 괴물 주인공들은 단번에 디즈니의 동화적 세계관을 뒤엎어버렸다. ‘슈렉’의 피오나 공주는 귀엽고 상냥한 디즈니 공주들과는 딴판이었다. 밥을 짓기 위해 나뭇가지를 분지르고, 뱀을 입으로 불어 풍선으로 만든다. 90년대 디즈니에 출연했다면, 당연히 악역을 맡아야 할 캐릭터! 그런데도 20대가 된 여자들은 이 억척스럽고 괄괄한 피오나 공주를 자신과 동일시했다.

    이들이 취업과 결혼에 직면한 30대가 됐을 때 디즈니가 다시 내놓은 공주 이야기가 ‘겨울왕국’이다. ‘공주와 동화, 노래’라는 전통을 이으면서도 비틀었다. 공주 안나가 첫눈에 반한 왕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주위 사람들이 축하는커녕 “말도 안 된다”며 말린다. 마법에 걸린 공주를 구하는 것도 왕자의 키스가 아니라 가족의 눈물이다. 특출난 능력 때문에 왕국에서 쫓겨난 공주는 자신만의 왕국을 짓는다.

    디즈니 '겨울왕국'의 엘사 공주.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90년대 디즈니 공주에 심취했던 30대 여성들도 열광했다. 사회생활도, 연애도 이미 꽤 해본 이들이 ‘왕자도 별거 없더라. 능력 있으면 혼자 살아도 상관없지 않아?’라고 생각할 때쯤 엘사 공주가 “다 잊어버리고(렛 잇 고) 자유롭게 살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찾던 공주였다! 예쁘고 선한 데다 사랑과 축복까지 받는 공주를 어느 세대 여자인들 좋아하지 않으랴.

    하지만 공주도 변한다. 공주 열풍 주도하는 디즈니가 지난달 발표한 ‘공주의 자격’만 봐도 20여년 전 내가 알던 공주와는 공통점이 별로 없다. 영국 학부모 5000명을 대상으로 ‘6~12세 딸이 가졌으면 하는 태도’를 설문 조사해 육아 전문가와 함께 추려낸 공주 10대 원칙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것 ▲건강하게 살 것 ▲사람의 겉모습과 직함만 보고 판단하지 말 것 ▲정직할 것 ▲친구에 대해 신의를 지킬 것 ▲자신을 믿을 것 ▲불의를 바로잡을 것 ▲최선을 다할 것 ▲충직할 것 ▲절대 포기하지 말 것.

    공주는 이미 변했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겨울왕국’을 보고 자란 소녀들이 10년, 20년 뒤에 어떤 공주가 됐을지, 이들이 만드는 왕국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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