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딸린 양옥집서 ‘美친 건축’ 만들다

'운생동'. 전통적인 기왓집이나 점집을 연상시키는 이름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이름의 건축사무소는 실험적인 건축으로 세계에서 주목받는 곳이다.

해외 건축학도 사이에서는 한국보다 유명하다는 이 곳, '운생동'을 둘러봤다.

    입력 : 2016.10.25 17:30

    [남의 회사 구경하기: <6> 건축사무소 운생동]
     

    서울 성북동 골목을 걷다 보면 혜화동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다다라 거대한 벽화 한 점을 만난다. 건축사무소 운생동(韻生同)이 2013년 성북동 신사옥 시대를 열며 담벼락에 그려넣은 벽화다.

    이름만 듣고 얼핏 점집을 연상하지만, 운생동은 2001년 일본 건축저널 ‘10+1’이 선정한 ‘세계건축가 40인’에 뽑힌 건축가 장윤규(52)의 설계사무소다. 2004년 문화시설 ‘예화랑’을 필두로 복합문화공간인 대치동 ‘Kring’, 파주 생능출판사 사옥, 서울대 건축대학 등을 설계해 업계에서 ‘미(美)친 건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네덜란드 잡지 ‘MARK’에 한국 최초로 특집 소개된 데 이어 스페인 ‘Diseno Interior’, 이탈리아 ‘INTERNI’, 미국 ‘Interior Desing’, 일본 ‘SMAU’ 등 세계 유명잡지가 줄줄이 이곳의 실험적 건축을 조명했다. 인턴십 공고가 뜨면 세계 각지에서 이메일이 날아올 정도. 몽골 국적으로 지난해 입사한 난딘체체그(25)씨는 “해외 건축학도 사이에선 한국보다 운생동이 더 유명하다”고 말했다.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14년째 운영 중인 지하 1층 '갤러리 정미소'. 주차장이던 공간을 전시실로 리모델링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사옥 주차장을 개조한 ‘갤러리 정미소’에선 분주히 전시장 조명을 손보는 작가들의 모습이 보였다. 코너를 돌자 나타난 사옥 입구는 그 모양새가 회사보단 ‘집’에 가까웠다. 새 학기 처음 사귄 친구네 집 놀러 가는 낯선 기분으로 대문을 통과해 돌계단 스무 개를 오르니 연속극에서 자주 보던 정원 딸린 양옥 한 채가 나타났다. 1층 통유리 너머로 수많은 건축 모형이 보였고, 정원에선 고양이 한 마리가 밥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집에서 만드는 집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직원 4명으로 출발한 운생동은 ‘뛰어난 예술품’을 뜻하는 중국말 ‘기운생동(氣韻生動)’에서 이름을 따왔다. 사람이 모여 사는 집을 만드는 회사라 動(움직일 동)만 同(함께 동)으로 바꿨다. 2003년 대학로의 한 지하공간을 임차해 10년간 사용하다 2013년 이곳으로 사옥을 이전했다. 장 대표에게 이유를 물으니 “사람이 햇빛 보고 살아야죠”라며 웃는다. “대학로 시절 지하 사무실은 빛과 시간이 멈춘 실험실 내지는 발전소 같은 공간이었어요. 단독주택을 개조한 이곳은 창 밖으로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을 느낄 수 있지요. 건축이라는 인공적인 산물을 생산하다 보면 자칫 나무와 땅, 공기 같은 자연의 의미를 놓칠 수 있거든요. 오래전부터 직원들에게 ‘집에서 만드는 집’이라는 작업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①사옥 안쪽에서 바라본 운생동 사옥 정문. 일일연속극에서 자주 보던 '성북동 부잣집' 풍경과 비슷하다. ②정원. 테이블을 펴놓고 둘러앉아 바비큐 파티나 음악회를 연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400㎡(약 120평) 남짓한 1층 업무 공간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빽빽이 들어찬 스무 개 책상에서 건축가들이 컴퓨터 작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캐드(CAD·설계 도면을 모델링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작업 중이던 건축가 김민균(28)씨는 “업무 강도가 업계 최고”라며 혀를 내둘렀다. “한 사람이 크고 작은 프로젝트 여럿을 동시에 진행하기 때문에 밤샘 작업이 많죠. 노역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운생동은 기능에만 충실한 ‘심심한 건축’은 사절이거든요. 새로운 것을 고안하려면 밤샘 전투는 기본이죠.”

    ③1층 건축가 공간. 곳곳에 운생동이 설계한 건축물 모형이 보인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단독주택 개조… 계단 옆에
    미술품 걸어 '갤러리' 같은 느낌

    애초 주택으로 지어진 공간이라 그런지 재택근무 같은 분위기였다. 집 느낌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리모델링도 최소한 했다고 한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옆엔 액자들이 걸려 있다. 젊은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장 대표가 하나둘 사 모았던 작품들이다. ‘연평도’(하태범) ‘홍콩’(박승훈) ‘러브’(김들내) ‘훔친 일요일’(이진주) 그리고 청계천 복원공사 당시 풍경을 담아낸 베니스비엔날레 메인 작품 ‘청계천’(안세범)도 보였다. 여성 설계사 임인후(28)씨는 “계단부터 회의실까지 이어지는 공간을 우리는 ‘갤러리’라 부른다”고 했다. “통상적으로 계단은 통해(通解)하는 역할로 사용되지만, 하루에도 십수번 오르내리는 이곳을 갤러리로 만들어놓아 젊은 예술가들과 자주 조우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2층엔 회의실과 장윤규·신창훈(46) 공동대표의 집무실이 있다. 벽면엔 책장처럼 생긴 ‘모델장’이 있다. 운생동이 설계했던 건축 모형들이 가지런히 전시돼 있다. 주택부터 박물관, 학교 건물, 대기업 사옥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이곳 건축가들은 설계 규모와 상관없이 다양한 의뢰인을 접한다. 신 대표는 “건축의 기본인 주택부터 건물·조경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 설계까지 크고 작은 경험 모두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택을 사옥으로 삼은 이유 중 하나도 젊은 세대의 주거 경험이 대부분 아파트에 한정돼 있기 때문. 애초 천편일률적으로 ‘제공된’ 공간에서 자라다 보니, 자기 손으로 가꿔야만 빛이 나는 이 단독주택이 공간 자체로 좋은 교보재가 된다.

    ④1층과 2층을 잇는 계단. 젊은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장 대표가 구입했던 작품들을 걸어놨다. ⑤2층에 나란히 배치된 신창훈 대표 집무실(왼쪽)과 장윤규 대표 집무실.

    "우린 집에서 일하는 가족" 2주마다
    全사원 어울려 문화생활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게시판에 나붙은 종이 한 장이 바람에 펄럭였다. 뮤지컬 공연 단체 관람 날짜를 공지하고 있었다. 운생동은 2주마다 미술관, 영화관, 공연장 등 전(全) 사원이 함께 어울려 문화생활을 한다. 출퇴근 자유롭고 건축가 각각의 개성을 존중하지만 회사 식구끼리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점심식사도 함께한다. 배달 음식을 시켜 정원에 테이블을 펴고 먹거나 성북동과 혜화동 곳곳의 맛집을 탐방한다. “우리는 양옥집에서 얼굴 맞대고 부대끼며 일하는 가족이잖아요.” 손걸레를 든 운생동 가장(家長)이 정원에 놓인 바비큐 그릴을 닦으며 말했다.
    "도시 전체와의 교감 뛰어날수록 좋은 건축"

    장윤규·신창훈 운생동 공동대표

    운생동 장윤규·신창훈 공동대표는 건축사무소 ‘아르텍’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부소장이던 장 대표가 지원자 신 대표의 면접관이었다. 건축계 선후배 사이로 만났지만 유독 죽이 잘 맞았다. 유학 경험이 없는 국내파라는 것도 공통점. 회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지금은 “아내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이”란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선 게이로 오해받은 일도 있었다. 신 대표는 “신입 사원 시절 장 대표에게 건축과 문화 그리고 술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그 정신은 운생동 경영에서도 이어가고 있다”며 웃었다.

    운생동 설립 초기인 2001년엔 일이 없어 직책만 대표일 뿐 다른 건축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퇴근하면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사무실로 돌아와 ‘운생동 프로젝트’에 매진했다. 밤늦게 일을 마친 두 사람은 아르바이트 뛰는 소(小)사장 처지를 즐거워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장윤규(왼쪽)·신창훈 공동대표. 20여년 전 면접관과 지원자 사이로 처음 만나 2001년부터 운생동을 함께 이끌고 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당시만 해도 프랜차이즈보다 패션 공방과 작은 화랑들이 주인이었던 가로수길에서 운생동 대표작 ‘예화랑’이 탄생했다. 직원 네 명이 일궈낸 성과였다. “건물 외관을 ‘주름’으로 표현했습니다. 주름 사이사이 공간을 만들어 ‘벽’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했죠.” 이 건물은 2006년 ‘강남구 아름다운 건물’로 선정됐다.

    신사동과 혜화동, 성북동을 거쳐온 15년의 세월 동안 이들의 운영 철학은 한결같았다. ‘수평성’과 ‘창의성’이다. 직업인으로서 건축가의 개성을 억압하는 ‘위계서열’을 배격한다. 두 대표가 생각하는 건축가란 건축물이 아니라 건축문화를 만드는 사람. 나아가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사고로 문화를 선도하는 사람이다.

    문득 최고 건축가는 어떤 집에서 사는지 궁금했다. 양옥을 개조한 사옥처럼 부촌(富村)으로 이름난 평창동이나 성북동의 고급 주택이 떠올랐다. “저희 둘 다 아파트 살아요. 그것도 같은 단지에서요.” 장 대표에게 꿈을 물으니 “건축가가 아닌 것”이라고 했다. “건축 바깥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싶어요. 도시 전체와 교감하는 건축을 하려면 팔방미인이 돼야 합니다. 건축가, 스페이스 코디네이터, 가구와 조명 디자이너, 책과 음반 제작자까지 다 하고 싶어요. 다채로운 역할이 어울려 이채로운 문화를 생성하는 것이 건축이니까요. 그래서 종국엔 건축가가 아니고 싶어요(웃음).”

    매년 10월 정기 공채… 자신만의 포트폴리오가 중요
    "협업이 생명, 술자리 극도로 싫어하면 적응 힘들 것"

    운생동 "학벌·학점은 안 봐"

    운생동은 매년 10월 정기 공채로 직원을 뽑는다. 총 인원은 22명. 설계직에 18명이 근무한다. 1차 서류전형은 이력서·자기소개서·포트폴리오를 합쳐 A4용지 4매 이내로 제출하면 된다. 2차는 포트폴리오 지참 면접으로, 포트폴리오에 수록한 작업들을 두 대표와 함께 보면서 건축에 대한 감각·열정·집중도·표현력·관점 다섯 가지 영역을 채점한다.

    학벌이나 스펙, 학점은 보지 않는다. 건축설계를 배우며 만든 ‘포트폴리오’가 핵심. 신창훈 대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좋은 포트폴리오는 많지만 자기 색깔이 드러나는 포트폴리오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우등생보단 한 걸음씩 성장해나갈 자세가 돼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고 했다. 개별 프로젝트 때 일시적으로 채용된 인턴이 업무 평가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다.

    장윤규 대표는 업무 강도에 대해 “최상”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다 보니 일 자체가 복잡하고, 업무량도 많은 편이지만 쉴 틈이 생기면 자유롭게 휴식을 부여합니다. 협업이 생명인 건축의 특성상 술자리를 극도로 싫어하거나, 다 함께 어울려 노는 문화를 배격하는 사람은 적응하기 어려워요. 운생동의 신조는 한 가지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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