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곳

'걷기 열풍'으로 각 지자체는 '걷기 길'을 만들었다.
하지만 관리를 안해 엉망인 경우가 많고, 유명한 걷기 길은 왁자지껄한 장터의 모습과 같다.
덜 알려졌지만 소소한 풍경이 있는 전국각지의 '옛길'에 다녀왔다.

  • 눌산 여행작가 
  • 편집=문채은

    입력 : 2016.10.23 11:06

    [주간조선: 한갓진 옛길 걷기]
     

    여행작가 '눌산'.

    전국의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경쟁이라도 하듯이 ‘걷기 길’을 만들었지만, 실상은 다르다. 만들기만 하고 관리를 안 해 엉망인 길이 많다. 실제로 가보면 걷기 힘들 만큼 유실이 됐거나 차도를 걸어야만 하는 경우도 많다. 과연 ‘길’의 운명을 인간이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것일까?

    길은 사람의 발자국을 먹고 산다. 길도 숨을 쉬며 그 속에 생명을 잉태한다. 그러기에 수십, 수백 년이 지나는 동안 다져진 길을 만나게 되면 그 길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생명들과 함께 걷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른 가을빛을 찾아가는 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걷기 열풍으로 왁자지껄한 장터가 되어버린 ‘소문난 길’이 아닌, 조금은 덜 알려졌지만 소소한 풍경과 느리게 걷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옛길’이 이번 여행의 목적지다.

    육지 속 섬마을, 뒷섬마을 아이들의 ‘학교 가는 길’

    전북 무주 '학교가는 길'. /눌산 여행작가

    전북 무주 읍내 뒷산인 향로봉(420m)을 사이에 두고 금강이 휘감아 흐른다. 향로봉에 올라 앞섬과 뒷섬 마을을 내려다보면 금강의 물줄기가 크게 굽이쳐 만든 물돌이형 지형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안동의 하회마을이나 예천의 회룡포 못지않은 비경을 자랑한다. 지금은 앞섬과 뒷섬 두 마을에 다리가 놓였지만, 옛날에는 산 너머 읍내에 있는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나룻배가 유일한 이동 수단이었다.

    이 길은 이러한 지형적인 조건으로 인해 생긴, 말 그대로 ‘학교 가는 길’이다. 지금은 무주군에서 ‘맘새김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모두 네 개의 코스를 만들었지만, 토사 유출로 인해 길이 유실된 구간이 있어 뒷섬마을 입구 후도교에서 질마바위와 북고사를 지나 무주고등학교 정문까지 이어지는 ‘학교 가는 길’만 열려 있다.

    보통 1시간 이상을 걸어서 학교에 다니던 시절, 산골 아이들의 걸음은 빨랐다. 달리기 수준의 걸음 속도는 보통 두어 시간 걸어야 하는 거리를 한 시간에 주파했다. 책가방을 둘러멘 아이들이 뛰어가면서 내는 달그락거리는 양은 도시락통 소리가 요란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이런저런 놀거리를 만들어 노닥거리기 일쑤였고, 강변을 걸을 땐 납작한 돌을 쥐고 물수제비를 뜨는 일은 놀이의 단골 메뉴였다. 이 모든 것이 불과 30~40년 전의 일로 ‘학교 가는 길’은 그런 추억이 서린 길이다.

    들목은 후도교 다리. 후도(後島)는 뒷섬을 한자화한 지명으로, 앞섬 역시 전도(前島)란 한자 지명을 사용하고 있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앞섬과 뒷섬이란 지명을 그대로 쓰고 있는데 유독 관청에서만 한자화한 지명을 쓰고 있다. 표지판 역시 전도와 후도로 표기되어 있어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학교가는 길'을 따라 오르면 향로봉에 이른다. /눌산 여행작가

    마을에서 강변으로 들어서면, 길은 절벽 아래로 이어진다. 절벽을 따라 걷다 보면 질마바위가 거대한 석문(石門)처럼 버티고 서 있다. 이 질마바위는 강물이 불면 나룻배를 띄울 수 없어 학교를 빼먹기 일쑤였던 아이들을 위해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망치와 정으로 쪼아 바위를 깨서 길을 낸 것으로 마치 소나 말의 등에 얹는 안장처럼 생겨서 이름을 질마바위라 붙였다. 질마바위 옆 콘크리트에는 ‘1971. 5. 20’이라는 공사일이 새겨져 있어 당시의 흔적을 알 수 있다.

    강변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길은 곧장 산비탈을 치고 오른다. 향로봉자락을 넘는 고갯길은 숨이 차오르는 힘든 길이지만, 오래전부터 사람의 발자국으로 다져진 덕분에 푹신푹신한 양탄자를 밟는 느낌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잿마루에 올라서면 천년고찰 북고사 앞이다.

    여기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산허리를 돌아 곧바로 무주읍내로 내려가는 옛길이고 또 하나는 금강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향로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두 길 모두 무주고등학교 뒤 약수터에서 만난다.

    산허리를 부드럽게 돌아가는 약수터 길은 옛길답게 탄탄하게 다져져 있어 바닥에서 전해져 오는 단단한 촉감이 온몸으로 전해 온다. 하늘을 가린 울창한 소나무숲길은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에 그만이다. 향로봉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는 급하지만, 올라볼 가치가 충분한 길이다. 향로봉 꼭대기에는 금강 최고의 전망대가 있어 금강이 마을을 크게 휘감아 흐르며 만들어낸, 육지 속 섬마을인 앞섬과 뒷섬 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느릿한 선비걸음으로 걷는
    함양 화림동계곡 ‘선비문화탐방로’

    경남 함양 '선비문화탐방로'. /눌산 여행작가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에서 “탁족의 행복을 누린 가장 환상적인 아름다움의 계곡은 함양 화림동의 농월정과 산청 지리산의 대원사계곡”이라면서 이 두 계곡을 남한 땅 최고의 탁족처(濯足處)로 꼽았다. 거연정에서 시작되는 화림동계곡의 선비문화탐방로는 안의면 소재지의 오리숲까지 10여㎞지만, 6㎞ 지점의 농월정에서 정점을 찍는다. 거연정의 집채만 한 바위와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소(沼), 그리고 농월정에 이르러서는 웬만한 축구장 넓이의 암반 지대로 바뀐다.

    속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물결이 암반을 타고 흐른다. 앉으면 누구나 바짓단을 자동으로 걷어 올린다. 이 어찌 탁족 한 번 안 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느릿한 걸음을 선비걸음이라 했다. 느리게, 좀 더 느리게 걷고, “에헴~” 하며 계곡물에 발 담그고 한나절 맘껏 여유 좀 부리고 싶다면 함양 선비길을 찾아가면 된다.

    지리산과 덕유산을 앞산과 뒷산으로 둔 화림동은 영남 유생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길목이었다. 또한 화림동에 걸쳐 있는 마을 사람들이 안의장을 보러 가던 길이었고 지게에 나무 한 짐 지고 나가 고등어 한 손으로 바꿔 들고 돌아오던 민초들의 길이기도 했다. ‘선비길’은 육십령 아래 거연정에서 출발, 영귀정에서 출발하는 6㎞ 1구간과 월림마을에서 출발하는 4.1㎞ 2구간으로 나뉜다.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좋은 평지라 전체 구간을 걸어도 3시간, 탁족하며 여유 부리는 시간을 더해도 4시간이면 족하다.

    거연정에서 출발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갔더니 ‘더 이상 길이 없습니다’라는 안내판과 함께 거연정이 마주 보이는 계곡으로 내려선다. 잘못된 표지판을 따라갔던 것은 차라리 행운이었다. 잠시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풍광에 젖어 본다. 본래의 길은 거연정 다리를 건너 곧바로 숲으로 이어진다. 대부분 나무데크가 놓여 있어 걷기에는 편안하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활엽수림이 호성마을길로 접어들기 전까지 이어진다. 길은 계곡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다시 산길로 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동호정과 경모정, 람천정을 지나 잠시 도로로 올라섰다가 다시 계곡으로 내려선다. 멀리 농월정이 보이고 하얀 암반이 드넓게 펼쳐진다. 바로 유홍준 교수가 남한 최고의 탁족처로 꼽은 곳이다. 농월(弄月)은 ‘한 잔 술로 달을 희롱한다’는 뜻으로 풍류를 즐겼던 선비들의 멋이 ‘길’까지 스며 있다.

    농월정에서 1구간은 끝이 나고, 이어서 2구간이 시작된다. 농월정에서 안의 오리숲까지의 구간은 숲길보다는 농로를 포함한 계곡 옆 제방길이 많다. 한낮 햇빛이 따가운 시간이라면 지루할 수도 있는 코스지만, 도로변에 야생화를 심어 자칫 밋밋할 수 있는 길에 재미를 주었다. 안의면에 들어서면 오리숲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안의천을 건너면 이 길의 최종 목적지인 광풍루.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이층 누각이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 집으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양식을 간직하고 있는 우람한 건물이다.

    말문 닫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는 ‘해인사 소리길’

    제대로 듣고자 한다면, 말문을 닫아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귀가 열린다. 하나 온갖 소음과 자기주장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말문을 닫고 귀를 열리게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소음의 공해에 묵직해진 어깨의 무게를 내려놓고 오로지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최적의 길이 여기에 있다. 그곳은 바로 가야산 ‘해인사 소리길’이다.

    천년고찰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1430m) 최고봉은 상왕봉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가야천의 발원지로 가을 단풍이 계류에 제 몸을 비춰 냇물이 붉은빛을 띤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홍류동(紅流洞) 계곡을 품고 있다. 해인사 소리길은 이 홍류동 옛길을 복원한 길이다. 옛 사람들은 홍류동 계곡을 넘나들며 해인사를 올랐겠지만 계곡 옆으로 도로가 나면서 옛길은 사라졌다. 그랬던 것을 가야산국립공원과 합천군이 대장경테마파크에서 해인사 입구 영산교까지 6㎞, 약 2시간30분 코스의 걷는 길을 만들었다. 영산교부터 해인사까지의 ‘산사 가는 길’까지 포함한다면 약 7.2㎞로 소요시간은 3시간 정도다.

    경남 합천 '해인사 소리길'. /눌산 여행작가

    4차선으로 확장된 광주~대구고속도로(구 88고속도로) 덕분에 해인사 가는 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해인사IC를 빠져나오면 곧바로 ‘소리길’ 들목인 대장경테마파크가 나온다. 소리길 주차장은 도로 아래에 있다. 소리길은 계곡 옆으로 난 농로에서부터 시작한다. 길은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논 사이를 거쳐 추수를 앞둔 들깨 밭을 지난다. 말랑말랑한 흙길의 촉감을 느끼기도 하고, 나무다리를 교차하며 계곡을 건너다니기도 하며, 마을 안길로 접어들기를 반복한다. 주말이면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지은 농산물을 가지고 나와 파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가을빛의 들녘을 가로질러 무릉교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며 길은 숲으로 들어간다. 계곡은 더 깊어지고, 소리는 더욱 웅장해진다. 이쯤에 이르면 말문은 저절로 닫힌다.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에 취해 걷다 보면 이 길이 왜 소리길이라 이름 붙였는지를 알 수 있다.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현판이 걸린 홍류문에서 입장료 3000원을 내고 지나간다. 영산교에서 소리길은 끝나지만, 길상암부터 해인사까지의 2.2㎞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추천한 ‘무장애길’이다. ‘무장애길’은 장애우와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휠체어에 몸을 싣고 이동하기 좋은 길을 이르는 말로 길상암부터 해인사까지 평탄한 길이 줄곧 이어진다.

    강길, 산길, 철길! 세 가지 즐거움 ‘섬진강 둘레길’

    주말이면 곡성기차마을 주변은 온통 주차장으로 변한다. 증기기관차와 레일바이크를 즐기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장사진을 이룬다. 곡성 사람들도 놀라자빠질 일이다. 폐역 하나로 곡성(谷城)이 이렇게 달라질 줄 누가 알았으랴. 영화 ‘곡성(哭聲)’의 여파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이유는 분명하다. 증기기관차의 추억과 섬진강의 여유로움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는 것이다.

    ‘섬진강 둘레길’은 곡성기차마을에서 시작한다. 왁자지껄한 곡성기차마을을 벗어나면 순간, ‘고요’가 흐른다. 곡성기차마을에서 1.3㎞쯤 차도를 걷다가 오곡면 소재지인 오지리에서 마을 안으로 접어든다. 오지리 마을의 골목길은 강돌로 쌓은 돌담길이다. 보통은 뾰족한 산돌을 쌓지만, 오지리 마을에서는 강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둥글둥글한 강돌을 쌓아 담을 만들었다. 도로변에는 새로 쌓은 돌담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오래되고 낡았지만 정겨운 돌담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목적지 표지판만 보고 걷는다면 보물과도 같은 돌담길을 놓칠 수 있으니 잠시 들러 보길 권한다.

    800m 직진하면 섬진강 침실습지로 수초와 모래톱이 쌓여 만든 천연 습지다. 이른 아침이라면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장관을 만날 수 있다. 강을 가로지르는 뽕뽕다리도 명물. 농기계나 사람만 건너다닐 수 있다. 여기서부터 작은침실골까지는 강변 제방도로를 따라 걷다가 17번 국도를 만나는 곳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산길로 접어든다. 침곡역까지로 이어지는 산길이다. 침곡역은 레일바이크 출발역으로 강 건너 호곡마을로 건너가는 줄배가 섬진강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 가정역까지 산길이 이어진다. 산 아래로 보이는 레일바이크 철로와 17번 국도, 섬진강과 나란히 걷는다.

    전남 곡성 '섬진강 둘레길'. /눌산 여행작가

    증기기관차 종점 가정역은 현수교 아래 섬진강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현수교를 건너 마을 산책을 하거나 강변으로 내려선다. 

    가정역에서 이정마을까지의 2.1㎞ 구간은 폐선이 된 철길을 걷는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이 손을 잡고 함께 철길을 걷는 장면을 보며, 한때 수많은 연인들이 그 장면을 따라 하기 위해 철길을 찾았다고 한다. 일반 철로에서라면 불법이지만 이 코스에서는 가능하다. 이정마을에서 압록유원지까지는 강길이다. 철로를 벗어나면 곧바로 다리 아래 계단을 따라 강으로 내려서는 길이 이어진다. 지난 여름 풀을 깎았다고는 하지만 웃자란 잡초가 걷기에 다소 불편하다. 하지만 강과 가장 가깝게 걷는 이 길을 포기할 수는 없다. 굳이 불편하다면 차도를 따라 걷다가 압록역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된다.

    길은 압록유원지에서 끝이 난다. 순자강과 보성강은 압록유원지에서 만나 섬진강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흘러간다. 이곳은 예로부터 고운 모래밭이 있어 강수욕장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서쪽 보성강 주변에는 매운탕집이 즐비하다. 여전히 성업 중이다.

    낙동강 오지마을 눌산리 ‘아람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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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봉화 '아람 옛길'. /눌산 여행작가

    35번 국도가 지나는 경북 봉화의 ‘삼동치’ 고개는 산을 넘어가는 일반적인 고개와는 달리 길게 뻗은 능선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덕분에 삼동치 고갯마루에 서면 멀리 낙동강의 물굽이와 산촌의 정겨운 풍경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봉화군에서도 오지로 알려진 삼동치 주변 지역은 낙동강 물길을 따라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 법전면 눌산리는 수십 개의 골짜기에 외딴집들이 각자 하나씩 차지하고 있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마을과 마을, 집과 집을 이어주는 ‘길’이 잘 형성되어 있다. ‘아람 옛길’은 바로 눌산리 사람들이 걸었고 지금도 걷고 있는 ‘옛길’이며 ‘현재의 길’이다.

    눌산리 새마을지도자인 김대환씨와 함께 ‘아람 옛길’을 걸었다.

    “우리 마을 입구인 늘미에서 가장 끝에 있는 아람까지 이어주는 길이 아람 옛길입니다. 아람은 ‘아름’의 경상도와 강원도 방언이더군요. 아름답다는 의미도 있고 해서 아람 옛길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체험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주민들이 모여 옛길을 복원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들목은 35번 국도변 개노리재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200m 지점에 있는 당소나무부터다. 마을의 가장 넓은 농토가 시작되는 곳으로 매년 정월대보름날 당제를 지낸다. 소나무에서 당제를 지내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들다. 소나무로 유명한 봉화답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지금은 폐교가 된 눌산분교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의 중심인 셈인데, 조만간 마을 주민들이 향토음식과 된장을 만드는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아람 옛길 구간에는 우물 두 군데와 세 군데의 샘터가 있다. 길에 식수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 많다는 것은 사람의 통행이 잦았다는 얘기다. 첫 우물터가 있는 눌산 쉼터를 지나면 독가뫼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우측 숲길로 들어선다. 야트막한 고갯길을 넘는 코스의 첫 관문, 마그내재다. 목이 마를 즈음, 물맛이 유독 좋다는 두 번째 우물을 만난다. 여기까지는 포장이 된 도로다. 길은 이제 말랑말랑한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낙동강을 만난다. 우람한 물소리와 함께 탁 트인 시야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이제 강길이다. 멀골솔밭에서 아람솔밭까지 낙동강을 따라간다. 차가 다닐 만한 폭의 비포장도로지만 차의 통행은 거의 없다. 마치 거대한 고인돌을 닮은 석문 근처에 이르면 물소리는 더 요란해진다. 길은 두 번째 솔밭인 아람솔밭에서 끝난다. 출발부터 내내 석문까지는 표지판이 잘 되어 있지만 종점에는 표지판이 따로 없다. 낡은 한옥 두 채의 의성김씨 제각이 있는, 두 번째 솔밭을 기억하면 된다.

    <본 기사는 주간조선 2426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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