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청춘, 오늘도 '귓속말' 들으며 잠 청한다

ASMR은 ‘자율 감각 쾌락 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로,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상 소음’을 뜻한다. 누구나 편안한 감정을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일상 속 순간을 포착해 음성으로 당시의 오감(五感)을
재경험시키는 것이 ASMR의 포인트로 불면에 효과가 있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입력 : 2016.10.17 07:16

    [‘ASMR’로 안정 찾는 2030세대]
     

    영화 ‘인터스텔라’(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의 한 장면. 황폐한 지구를 탈출해 인간이 이주(移住)할 행성을 찾으러 떠난 쿠퍼(매슈 매코너헤이)는 우주선 안에 인공중력이 들어오자마자 이어폰을 꽂는다. 우주선을 돌아다니던 쿠퍼는 “우주선 외벽이 얇다”며 불안해하는 로밀리(데이비드 기아시) 곁에 다가가 이어폰을 꽂아준다. 그곳에서 흘러나온 물과 바람, 새 울음소리를 들은 로밀리는 차츰 안정을 찾는다.

    ASMR은 ‘자율 감각 쾌락 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상 소음’을 뜻한다. 불면에 효과가 있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취업·결혼·업무 스트레스로 불면
    젤리 씹거나 속삭이는 등
    편안함 주는 소리 들으며 잠들어
    말 건네며 면도해 주는 영상
    ‘데이나 살롱…’ 130만명 보기도

    수면 유도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유튜브 채널을 통해 널리 퍼진 ‘ASMR’은 영화 속 ‘지구 음성(音聲)’과 닮았다. ASMR은 2010년 미국 스테디헬스닷컴(steadyhealth.com)의 한 온라인 토론방에서 제니퍼 앨런(Allen)이라는 한 평범한 회사원이 만든 개념이다. 의학적으로 검증된 개념은 아니지만 ‘음성 자극으로 심적 안정을 유도한다’는 것이 골자(骨子)다.

    북미 지역에서 인기를 끌다가 재작년 한국에 상륙해 현재 유튜브를 중심으로 영상 540만개가 유통되고 있다. ASMR 채널을 운영하면서 유튜브 광고로 수입을 올리는 ‘ASMR 아티스트’란 신종 직업까지 생겼다. 지난 7월 MBC 예능 ‘마이리틀텔레비전’에서 가수 전효성이 ‘일일 ASMR 아티스트’로 출연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ASMR은 일상에서 편안함을 주었던 소리를 발굴해 재연(再演)한다. 한밤중 연인에게 귓속말하듯 소곤소곤 전달하는 것이 특징. 29만명이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 ‘DANA ASMR’의 인기 영상은 ‘먹는 소리’다. 마이크 가까이 입을 대고 쫄깃한 젤리나 부드러운 마시멜로, 바삭한 크래커를 씹는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파핑캔디 소리 영상엔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는 댓글이 유독 많다. 상황극도 한다.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을 걸며 남자 손님에게 면도를 해주는 ‘데이나 살롱 면도 롤플레잉’ 영상은 130만명이 봤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음성을 통해 촉발되는 건 편안함을 느꼈던 과거 어느 순간의 ‘기억’이다. 누구나 편안한 감정을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일상 속 순간을 포착해 음성으로 당시의 오감(五感)을 재경험시키는 것이 ASMR의 포인트”라고 했다.

    /‘DANA ASMR’ 유튜브 채널 캡처

    불면(不眠)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유명세를 탄 ASMR 열풍은 주 이용층인 20·30세대의 수면 장애 증가와 관련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수면 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0년 28만9500명에서 2015년 45만5900명으로 5년 새 약 57%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20~30대 환자는 전(全) 세대 중 증가 폭이 가장 컸다. 한진규 서울수면센터 원장은 “취업이나 공시(公試), 결혼을 앞두고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과 우울 탓에 수면 장애가 생겨 병원을 찾는 젊은 층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했다. 한국수면학회는 2013년 “젊은 세대는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수면 장애를 호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ASMR은 불안이 촉발한 불면을 해소하려는 20·30세대의 자구책(自救策)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서적인 안정은 필요하지만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는 젊은 층의 값싼 불면증 해소법이 ASMR”이라며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앱(app)이나 모바일 정보로 해결하려는 젊은 층의 경향이 반영됐다”고 했다. 민간요법에 불과한 ASMR의 남용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정신과전문의 박주언 박사는 “ASMR은 자기 전 특정한 행동이나 용품에 의지해야만 잠잘 수 있는 ‘수면 개시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DANA ASMR’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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