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사회] 조선시대의 청탁금지법, '奔競금지'는 왜 失效했나?

  • 최재경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입력 : 2016.10.10 04:30

    [조선시대 로비 단속한 '분경금지법', 국가 노력 실패로 효과 못 봐]

    300년 넘게 전 세계 수학도의 골머리를 앓게 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유명한 피에르 드 페르마(Fermat·1601~1665)는 프랑스 툴루즈 지역의 법관이었다. 17세기 프랑스는 공직 부패가 심각해서 법관들은 아예 일반인을 만나지도 못하게 했다. 이러다 보니 페르마는 낮에 재판하고, 밤에는 인적 끊어진 집에서 소일거리로 수학 연구에 매진해 위대한 수학자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가 밤에 사람들과 어울려 포도주를 마시며 놀았다면 정수론과 확률론을 창안하고 미적분학의 기초를 닦아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부패를 막으려던 조치가 수학사에서 뜻밖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9월 28일부터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부패 척결의 역사적 시험을 치르고 있다. 민족의 운명을 바꿀 획기적 쾌거라는 시각도 있고, 어려운 민생을 더 힘들게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 골프장이나 고급 음식점은 손님이 줄어 울상이지만, 공직자나 기업 임직원들은 가정에 충실해졌다니 좋은 일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부패 방지를 위한 인간의 노력 역시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우리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제도는 조선조의 '분경 금지법'이다. 분경(奔競)은 분추경리(奔趨競利), 즉 이익을 얻고자 분주히 돌아다니며 로비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주로 벼슬을 얻기 위해 권력자의 집에 드나들었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9년, 2대 왕 정종은 분경을 금지하고 단속했으며 성종은 기본법인 경국대전에 이를 아예 명문화했다. 정3품 이상 당상관과 사헌부 및 사간원 관리들은 친가 8촌, 외가·처가 6촌 이내와 이웃을 제외한 사람을 집에서 만날 수 없었다. 어기면 무조건 분경으로 간주해서 곤장 100대와 3000리 유배로 처벌했다. 사형에 버금가는 중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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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로 경기도의 유명 일식집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5일 오후 손님이 끊겨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경기도의 한 일식집. /연합뉴스

    法 존재만으론 입법목적 달성못해…
    관계당국 부단한 노력 뒤따라야
    수사·재판기관은 운용의 묘 살리고
    주무부처는 적극적 보완 나서야

    하지만 이후의 조선사를 보면 분경 금지가 효과 있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당쟁의 격화와 외척 및 세도정치의 발호, 각종 민란은 매관매직이나 인사 청탁, 지방관의 수탈 등 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국가 노력의 실패를 방증하기 때문이다. 성종 때 사헌부 지평을 지낸 홍한(洪瀚)은 지방관의 불법이 성행하는 이유로 법 집행의 일관성 결여를 꼽았다. 즉, 중국은 한결같이 대명률(大明律)대로 하여 조금도 더하거나 덜함이 없기 때문에 모두 법을 두려워하는데 조선은 사정(事情)과 법을 가지고 논하여 낮추었다 높였다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법을 무시한다면서 '법을 범하는 자가 있으면 율(律)대로 결단하되 조금도 봐주지 말 것'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법은 시대 현실을 반영한 국민적 합의다. 하지만 어떤 법률도 존재만으로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 아무리 법망이 치밀해도 인간의 탐욕은 우회로를 찾기 마련이다. 인간의 삶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법은 사문화하거나 국민적 저항과 반발에 직면하기 쉽다. 부패 척결의 시대적 소망을 담은 청탁금지법이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라는 입법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면서도 경제 위축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서 굳건하게 제자리를 잡으려면 국민의 감시는 물론 관계 당국의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수사·재판기관은 법 시행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고 현실에 터 잡은 합리적 단속과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한다. 주무 부처인 국민권익위는 법 적용 과정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문제점을 기록·분석해서 보완할 부분이 발견되면 즉각적인 제도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

    선선한 가을이다. 분경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갑자기 여가 시간이 많아졌을 공직자와 기업 관계자들이 골치 아픈 수학책은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에서 독서의 여유를 즐긴다면 좋을 것 같다. 집 청소나 요리, 가족과의 정담이나 함께 영화 보기도 물론 추천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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