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15] 20년간 12차례… '공무원 외식 금지령'… 배달시키기 등 꼼수 난무… 흐지부지

    입력 : 2016.10.05 06:00 | 수정 : 2016.10.05 06:01

    1975년 1월 9일 서울 광화문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던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중앙청 정문에서 총무처 단속반에 무더기로 걸렸다. '공무원의 점심 외식을 일절 금한다'는 국무총리 훈령을 어긴 죄였다. 외식한 공무원 전원이 단속반에게 이름을 적혔다. 이날 출입기자단과 불고기 회동을 했던 문공부 국장급 간부들까지도 걸렸으나 '우리는 장관 허락받아 행사에 참여한 것'이란 해명 끝에 단속을 면했다(조선일보 1975년 1월 10일자).

    1960년부터 1970년대 말까지 정부는 공무원 기강을 다잡을 때마다 '외식 금지령'을 내렸다. 제1호는 4·19 혁명 직후 내려졌다. 1960년 8월 25일 전 공무원에 시달한 생활혁명의 첫 과제가 외식 금지와 도시락 지참이었다. 그러나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도시락 지참 운동 첫날에도 공무원 태반은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다. 제2공화국 장면 정권은 공무원을 상대로 도시락 먹기 운동을 열심히 펼쳤지만 '바시락 부시락 도시락 정권'이라는 빈축만 산 채 성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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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8월 25일 전 공무원에 대한 점심 외식 금지령이 처음으로 내려지자 ‘양은도시락’에 싸온 밥으로 사무실에서 식사하는 공무원들 모습(왼쪽)과 1960~70년대의 공무원 외식 금지를 보도한 기사들.

    제3공화국 때 공무원 외식에 대한 규제 목소리는 더 커졌다. 1970년대 후반까지 정부가 공직 사회에 내린 '금지령'은 신문에 보도된 것만 12번쯤이나 된다. 해제령이 내렸다는 보도는 없으니 금지령은 계속 살아있던 셈인데 똑같은 명령을 왜 반복했을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대 총리나 장관은 저마다 외식 엄금 등 공직자 기강 확립을 외쳤지만 길어야 서너 달이면 관청 앞 식당은 다시 붐볐다. '작심 3개월'이었다. 나사 풀린 공무원들 꼴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1965년 11월 박정희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전 고위 공무원들에게 경고성 친서를 보냈다. 대통령은 친서에서 '공무원들 근무 상태가 해이되어 10시쯤 출근해 우물쭈물하다가 점심을 두세 시간씩 먹고, 서랍 정리나 한 뒤 5시 반쯤 퇴근하는 사례가 태반'이라며 질타했지만, 공직 사회 기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정권마다 심심하면 국민을 상대로 쇼를 벌이는 것이냐"는 식의 비판도 일어났다.

    약삭빠른 일부 공무원은 갖은 꼼수로 변칙 외식을 했다. 어떤 지방 시청 직원은 단속을 피하려고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바람에, 매일 정오만 되면 청사가 배달원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내부 외식'이란 말이 나왔다. 도시락을 먹으라 했더니 어느 고위 공직자는 집에서 진수성찬을 요리해 관용차로 날라 먹었다. 단속은 미지근할 뿐이었다. 1962년 외식한 공무원 1명을 파면한 일이 있지만, 그 밖엔 중징계를 당했다는 보도를 찾기 어렵다.

    공무원의 점심 식사에 대한 규제의 역사는 이토록 깊다. 옛 외식 금지령은 '검약'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공무원 부패의 연결고리였던 외부인과의 식사 자체를 통제하려는 의도가 컸다. '김영란법' 같은 부패 견제 장치의 전신쯤 되는 셈이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우리 사회가 대변혁을 맞고 있으나, 현금 결제, 시간차 퇴실, 카드 분할 납부 등 제재를 피하려는 꼼수도 난무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 말 한마디로 전국 공무원 점심 외출을 아예 막았던 무지막지한 시대에도 요리조리 그물을 빠져나갔던 일부 미꾸라지의 '변칙 DNA'가 또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청렴 사회로 가기 위해 더 비상한 노력이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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