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기본은 호기심과 질문, 한국선 실험·문제풀이가 전부”

    입력 : 2016.10.14 09:04

    [iF: 과학사·과학철학 분야 세계적 석학 장하석 英 케임브리지大 석좌교수]
     

    과학사·과학철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장하석(49)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는 지난 23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자신을 ‘실패한 과학자’라고 소개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며 노벨상을 꿈꿨지만, 보다 근원적인 답을 찾겠다는 이유로 과학사·과학철학으로 방향을 바꿨다는 이유에서다.

    /신현종 기자

    한국 과학계 다원주의 부족
    다원주의, 상상 못할 기술의 원천
    획일적 사고방식·치열한 경쟁 탓
    창의성 외치지만 ‘융합’은 안 돼

    한국은 스마트폰 잘 만든다
    따라 하는 걸 잘하니까
    이젠 전혀 새로운 걸 만들어야

    과학사에 독특한 위치 ‘배터리’
    배터리가 발명된 건 1800년
    작동원리 전기는 100년 후 발견
    기초과학과 공학·응용과학이
    한 방향으로만 안 간다는 걸 방증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장 교수는 런던대 교수를 거쳐 2010년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가 됐다. 2007년 저서 ‘온도계의 철학’으로 과학철학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인 ‘라카토슈상’을 수상했다. 장재식 전 산자부 장관이 아버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형이다.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로는 ‘다원주의(多元主義)’와 ‘배터리’를 꼽았다.

    ―촉망받는 물리학도였는데 갑자기 전공을 바꿨다.

    “어느 순간 내가 궁금한 것에 과학이 답을 주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데 ‘빅뱅 이전엔 뭐가 있었나’라고 캐물으면 과학은 ‘모든 것이 빅뱅에서 생겼다’고 답한다. 이런 답은 결국 과학이 아닌 철학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과학에서 추구하는 답은 한 가지지만, 철학은 더 많은 답을 준다. 물론 어느 쪽이 진리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한국 사회와 과학계에 다원주의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다들 창의성, 창의성 하는데 잘 안 된다. 융합도 잘 안 된다. 획일적인 사고방식과 치열한 경쟁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면서 융합을 하려고 하면 되겠나. 벽만 높아지지. GPS(위성항법장치)를 보면 수많은 기술이 결합돼 있다. 양자역학, 전통 물리학도 있고 기계공학, 항공우주, 전자공학 다 들어 있다. 하지만 GPS공학이라는 건 없다. 융합은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 다른 분야의 장점을 결합하면서 자신의 분야도 챙길 수 있다. 막상 이런 얘기를 하면 한국에선 그럼 어느 분야가 주도권을 잡고 융합을 해야 하는지 물어본다. 주도권이 문제가 아니라 필요한 걸 얻을 수 있는 게 먼저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다원주의는 왜 필요한가.

    “한국이 스마트폰을 잘 만든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한국이 만들었나. 20~30년 전만 해도 한국은 발명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 대신 따라 만드는 걸 잘했다. 하지만 이제는 전혀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 다들 스마트폰만 만드는데 어떻게 새로운 걸 만들겠나. 상상하지 못한 다른 기술, 제품, 과학은 결국 다원주의에서 나온다. 답이 하나라도 가는 길은 여러 가지일 수도 있다. 프리스틀리, 라부아지에, 쉘레는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구해서 산소를 찾아냈다. 과학에 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세상에 하나만 잘해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산불을 끄려면 산의 지리도 알아야 하고, 동물과 식물의 생태도 알아야 한다. 물리학으로 어떤 각도로 물을 뿌려야 할지 파악하고, 화학으로 만든 약품으로 불을 끈다. 한 분야라도 모르면 산불 끄기에 대한 완벽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장하석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는 “획일적 답을 추구해서는 재미가 있을 리 없다”면서 “자신만의 답이 있다고 믿는 것이 과학을 대하는 자세”라고 말했다. /신현종 기자

    ―한국의 과학 정책이 기초과학과 공학·응용과학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나도 예전에는 순수과학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생각이 점차 바뀌고 있다. 과학과 기술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기초과학이 응용과학이 되고, 응용과학과 기술이 경제를 발전시킨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렇게 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많은 과학 분야의 토대에 있는 열역학은 어떻게 탄생했나. 증기기관이라는 기술 때문에 열역학이 발달했다. 상식과 거꾸로 일어나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최근 쓰고 있는 ‘배터리의 과학’이라는 책에도 이 얘기를 담았다.”

    ―왜 하필 배터리인가.

    “배터리는 과학사에서 아주 이상한 위치에 있다. 우리가 왜 그런지 모르지만, 다시 말해 과학적 원리를 모르지만 되는 것들이 있다. 이탈리아의 볼타가 배터리를 발명한 건 1800년이다. 하지만 배터리가 작동하는 원리가 되는 전자(電子)는 1800년대 끝에 발견됐다. 거의 100년 동안 원리도 모르면서 배터리는 발전을 거듭했다. 때로는 기초과학이 하지 못하는 걸 공학은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기초과학과 공학, 경제의 관계도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 기초과학만이 중요하다고 하거나, 공학·응용과학이 먼저라고 하는 것 모두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신현종 기자

    ―창의성을 쌓으려면 위대한 과학자들의 삶을 보라고 했다. 시대가 달라졌는데, 그들의 삶이 왜 중요한가.

    “위대한 과학자들의 공통점은 이해가 잘되지 않는 부분은 덮어버리지 않고, 오히려 집중해서 파헤쳤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자유로운 환경과 생각에서 창의성이 발휘된다고 여긴다. 하지만 과거의 과학자들은 틀을 깨기 위해 절망적인 상황에서 연구해 창의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맞는지 의심하면서 통념과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위대한 과학자들의 방식보다 훌륭한 연구법, 학습법은 없다.”

    ―틀을 깨라는 것인가.

    “오해하면 안 된다. 틀을 깨라는 것이 과거의 것을 버린다는 의미가 돼서는 안 된다. 뉴턴의 고전역학은 이후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나왔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서로 보완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한다. 과거의 틀을 버리기만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과학에 흥미를 잃은 사람들이 많다.

    “교육과 문화의 문제가 크다. 과학의 가장 기본은 호기심과 질문인데, 한국의 과학 교육은 정답이 이미 있는 실험과 문제 풀이가 전부이다. 과학에는 절대적 지식은 없고, 지식을 가장 잘 획득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누가 묻느냐에 따라 질문 자체가 달라지는데 답도 다 다르지 않겠나. 자신만의 답이 있다고 생각하면, 과학이 좀 더 재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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