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싸우는 의사가 쓴 대형병원 응급실 체험기

한때 죽으려 했던 사람이 죽으려 하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됐다.
누구보다 죽음 가까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응급실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팩션 에세이 《만약은 없다》(문학동네)가 출간 한 달도 안 돼 3쇄를 찍었다.
이 책을 쓴 남궁인(33)씨는 충남 소방본부에서 근무 중인 공중보건의로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입력 : 2016.09.04 14:55

    [Top Class: '만약은 없다' 저자 남궁인]
     

    남궁인씨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고려대의료원에서 응급의학과 수련의 과정을 마쳤다. 전공을 결정하기 위한 인턴 1년 과정 동안 응급실에서만 넉 달을 보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배들을 보며 응급의학을 전공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응급환자에게 사력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그 누구의 지시 없이 혼자 고뇌하고 결국엔 사망선고를 내리는 선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멋있었어요.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남궁인씨. /김선아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적어
    24시간 동안 혼자서
    수백 명의 환자 진료해

    주말에는
    100여 명 환자를
    동시에 진료하기도

    동시에 100여 명의 환자를 진료

    그가 응급의학과를 지원하던 당시만 해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고려대의료원 세 곳을 통틀어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다섯 명뿐이었다. 24시간 근무체제로 돌아가는 응급실 상황을 고려한다면 누군가는 교대 없이 쭉 응급실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다.

    “24시간 동안 혼자서 수백 명의 환자를 진료해요. 24시간 근무가 끝났다고 해서 바로 퇴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다음 근무자에게 브리핑하고 회진을 돈 다음, 일지까지 쓰고 집에 돌아가면 정오가 되는 게 보통이었어요. 그러곤 한 10시간 정도 죽은 듯이 자요. 일어나서 1시간 정도 밥 먹고 남은 시간에 글을 써요. 이렇게 4년을 보내면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되는 거죠.”

    주말이면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급격하게 늘어난다. 동시에 100명 넘는 환자를 본 적도 있다. 하룻밤이 아니라 ‘동시에’ 말이다.

    “환자 한 명이 들어오면 상태를 보고 그 사람 차트를 머릿속에 입력해요. 다른 환자 앞에 서면 바로 그 환자의 차트가 머리에 떠오르죠. 100명 넘는 환자의 차트가 입력돼 있는 거예요. 신기하게 다 외워져요.”

    “나는 분명히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죽음을 막연하게 여겼던 의대생 시절, 죽고자 하는 생각은 갖가지로 변형되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만약은 없다' 서문 중에서

    누군가에게는 퇴원 조치를 취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사망 선고를 내린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다 메스를 들고 다른 환자에게 향하기도 한다. 수많은 환자가 그의 책임 아래 놓여진다. 응급실 상황은 다른 병동과 달리 긴박하게 돌아간다. 끊임없이 새로운 환자가 실려 오고 여기저기서 경보음이 울린다. 연달아 심정지가 일어나고 ‘줄초상’이 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만약은 없다》의 1부 ‘만약은 없다는 말-죽음에 관하여’는 응급실에서 마주한 이 같은 죽음에 대해 다뤘다.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의식을 잃은 채 실려 온 50대 남성을 늘 하던 대로 형식적인 면담과 정신과 협진을 한 후 집으로 돌려보내지만 불과 두 시간 후, 그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다시 응급실로 돌아온다.(‘죽고자 하는 열망’, 12쪽) 앞으로 한 달밖에 못 사는 담도암 말기 환자를 퇴원시킨 다음 날, 50대 여성이 119 카트에 실려 온다. 소형차를 운전하다 마주 오는 차와 부딪혀 갈비뼈가 부러지고 심장이 조각난 그녀는 손을 써볼 틈도 없이 급사한다. 잠시 후 그녀의 차량과 충돌한 차량의 운전자가 응급실로 실려 오는데 바로 어제 돌려보낸 담도암 말기 환자였다. (‘죽음에 관하여’ 36쪽)

    우연이라기엔 잔인한 죽음의 진실이 눈에 보이듯 그려진다. 네일건으로 작업하다 한쪽 눈에 대못이 박혀 온 남자, 지하철에 뛰어들어 하반신이 으스러진 할아버지, 목을 매단 가장, 손목을 그은 아가씨, 신들린 듯 경기를 일으키는 할머니, 자동차에 치여 두개골이 박살 난 남자 등. 남궁씨는 강렬하게 각인된 환자의 죽음과 상태를 기록하며 머릿속의 잔상을 지워나갔다.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날들이었어요.”

    /김선아

    타인의 죽음을 기억하는 방법

    응급실에서 겪은 가장 비극적이고 잔인한 일을 다시 복기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잊고 싶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었다.

    “새벽 서너 시쯤 응급실이 평화로울 때가 있어요. 환자가 몇 명 되지 않고 상태도 안정적일 때 응급실 한구석에 있는 골방에서 그날의 환자에 대해 썼어요.”

    차트를 적듯 간단하게 메모한 것이 나중에 글을쓸 때 도움이 됐다. 응급실을 거쳐 간 환자가 신문에 실리면 기사도 스크랩해뒀다. 이렇게 모아놓은 응급실 4년의 기록이 글을 쓸 때 훌륭한 재료가 됐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와 환자에 대해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가는 환자의 인공호흡기 스위치를 끄는 의사의 이야기처럼 허구도 섞었다.

    “독자가 마치 응급실 현장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극적인 생사의 기로에서 고독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를 대리 체험하는 것처럼 읽어주세요.”

    어릴 때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주로 시를 읽고 썼다. 기형도, 이성복 시인처럼 되고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글재주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국문과 대신 의대를 택했다. 하지만 의대에 다니면서도 글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고대문학회에 들어갔다. 유일한 의대생이었던 자신을 문학회 동기들은 신기해했다.

    의대 친구들은 시험 족보와 함께 시집을 들고 다니는 그를 보고 ‘된장남’ ‘허세남’이라고 놀렸다.

    “꾸준함의 힘인 것 같아요. 읽고 쓰는 것을 쉰 적이 없어요. 필사적으로 써요. 페이스북에 글 하나를 올리더라도 며칠 동안 생각해서 쓰고 또 고심하고 고쳐요.”

    그렇게 쓴 글이 의사들의 신춘문예인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작인 《죽음에 관하여》와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흉부외과의 진실》이다.

    “시보다는 산문이 현장에서 있었던 사실과 감정을 보편적으로 전달하기에 적합했어요.”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를 의료진이 진료하는 모습.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죽음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살아야…

    남궁인씨

    ‘글 쓰는 의사’라는 근사한 타이틀도 얻었다. 응급의학과 동료들로부터는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우리 존재를 각인시켜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기성 작가들한테도 ‘작가’ 대접을 받게 됐다. 무엇보다 그의 글을 읽어주는 수많은 독자가 생겼다.

    “그동안 인터넷 게시판에서 아이디로만 존재하던 사람들이 눈앞에 독자로 나타나니까 신기했어요. 제 글을 읽어줬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글 쓰는 작가 입장이라면 자기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을 거예요.”

    남궁씨는 현재 충남 소방본부에서 공중보건의로 복무 중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중에 선발되는 소방본부 소속 공중보건의는 응급구조 활동 중인 소방대원에게 원격으로 조언과 지도를 해주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근무일은 여전히 불규칙하지만 응급실 시절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새로운 소설도 쓰고 있다. 앞으로 순문학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내년 4월에 공중보건의 복무가 끝나요. 그러면 다시 응급실로 돌아갈 거예요. 아직까진 환자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육체적으로 고되고 정신적으로 탈진할 수밖에 없는 응급실 의사보다 작가라는 선택지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의사로서 냉철한 모습이 아직은 더 크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죽음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다. 365일 24시간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서 뛰어다니는 그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죽음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니까 오늘 하루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세요. 이런 대답은 정말 진부하잖아요. 하지만 또 그 이야기 말고는 해드릴 말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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