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니까… 풍요롭다

소비, 소유욕에 지쳐 ‘비워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몇 년간 쌓아두었던 물건들을 한번에 정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철마다 사들인 옷과 신발로 가득 찬 수납장을 비운다.수천 권 책들로 빼곡했던 책장을 솎아내고, 얼리고 쟁여놓은 음식물로
터져나갈 듯한 냉장고도 과감히 털어낸다. ´단순´하게 살기로한 사람들을 만나봤다.

    입력 : 2016.08.23 18:41

    [Minimal Life]
     

    설레지 않은 물건은 버려라… ‘미니멀 라이프’ 실천하기


    침실엔 덩그러니 매트리스와 책장 하나뿐이다. 싱크대 상부장엔 그릇 몇 개 놓여 있다. 그 흔한 벽시계, 가족사진 하나 없다. SNS엔 요즘 ‘텅 빈 집’ 사진들이 자주 목격된다. 그 많은 가구와 살림살이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소비, 소유욕에 지쳐 ‘비워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미니멀리스트’ 저자 조슈아 필즈 밀번은 “인생에서 넘치는 것을 없애고, 물건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미니멀리스트”라 정의했다. 철마다 사들인 옷과 신발로 가득 찬 수납장을 비운다. 수천 권 책들로 빼곡했던 책장을 솎아내고, 얼리고 쟁여놓은 음식물로 터져나갈 듯한 냉장고도 과감히 털어낸다. SNS에선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거나 버린 후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비워내기 프로젝트’ ‘미니멀리즘 게임(물건 개수를 날짜에 맞춰 버리고 인증샷을 올리는 행위)’이 한창이다.

    네이버 카페 ‘미니멀 라이프’는 생긴 지 2년도 안 됐지만 회원 수 3만명을 넘어섰다. 서점가에선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같은 책들이 스테디셀러에 올랐다.

    쉬운 일은 아니다. 큰맘 먹고 산 가구와 전자제품, 인생에 길잡이가 돼 준 책, 추억 담긴 물건들을 버리기는 더더욱 어렵다. “망설이는 사이 35평형 집이 짐으로 가득차 15평이 돼 있더라”는 말은 격하게 공감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물건을 자신의 일부로 생각해 존재감을 느끼고 애착이 심해지면 비워내지 못하고, 버려도 불안해한다”며 “소유욕이 심하면 ‘저장 강박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의 저자 곤도 마리에는 조언했다. “‘무엇을 버리느냐’가 아니라 ‘어떤 물건에 둘러싸여 생활하고 싶은가’가 중요하다. ‘무엇을 남길까’에 중점을 두라!”

    꼭 필요한 것만 남겼더니 아들 방 생겨… 반찬도 딱 3개만

    주부 김리은씨 집 거실에는 수납장·책장·테이블이 전부다. /조혜원 영상미디어 기자

    식생활까지 미니멀…
    집 안 청소도 5분이면 충분

    경기도 화성 사는 주부 김은란(42)씨는 빈티지 마니아였다. 빈티지 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집은 10년 넘게 사 모은 빈티지 가구와 소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그녀가 집을 비우기 시작한 것은 아들이 엉금엉금 기어다닐 때부터다. 빈티지 소품을 입에 갖다 대고 물고 빠는 거였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싶었지요.”

    그날부터 벼룩시장, 블로그, 아는 수집가들에게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지만 내게 진정으로 소중한 게 뭔지 생각했어요.” 리스트를 작성한 뒤 우선순위가 낮은 것부터 버렸다. 빈티지 의자만 20개 놓여 있던 거실은 로봇청소기가 돌아다닐 만큼 넓어졌다. 컴퓨터 책상, 소파, 축음기뿐이다. 침실에도 서랍장과 테이블 하나만 남겨뒀다. “아홉 살 아들 방이 생겼어요.” 수집품은 집에서 쓸 수 있는 생필품 위주로 10%만 남겼다. “무소유의 행복을 만끽하는 중이죠(웃음).”

    김리은씨의 소박한 한 끼 식사는 반찬 수 3가지를 넘지 않는다.

    서울 상암동에 사는 주부 김리은(37)씨 인생관은 ‘소유는 적게, 삶은 풍요롭게’다. 집 안 풍경도 그렇다. 여섯 살, 여덟 살 아들에 반려견 3마리까지 키우는 집치고는 썰렁해도 너무 썰렁하다. 35평형 주상복합아파트 방 2개 침실에는 커다란 매트리스 하나와 텅 빈 책장만 놓였다. 공간만 차지하는 침대 프레임은 버렸다. 나머지 방 하나엔 남편이 쉴 수 있는 테이블 의자만 있다. 제습기도, 전자레인지도, 그 흔한 김치냉장고도 없다. 김씨는 “불편할 때도 있지만 잠깐씩 사용하는 것들이라 굳이 사지 않았다”고 했다. 식생활도 미니멀이다. 싱크대 상부장은 텅 비어 있다. 하부장에는 냄비 4개와 간단한 식기류, 베이킹 도구, 양념장만 있다.

    “손이 많이 가고 재료가 아낌없이 들어가는 요리보다는 반찬 수 3개를 넘지 않게 간소하게 차려요.” 식재료를 알뜰하게 사용하는 레시피를 고민하는 것도 습관이 됐다. “미니멀 라이프는 가족들 습관이나 성향까지도 바꿀 수 있는 생활법이에요. 친환경을 실천하는 첫걸음이죠.”

    인테리어 디자이너 권희라(38)씨는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기 위해 용인 아파트를 나와 서울 후암동 자투리땅에 집을 직접 지은 경우다. “딸을 키우다 보니 살림살이가 점점 늘었죠. 물건이 많아지니 찾기도 어렵고.”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도 ‘독’이 됐다.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은 무시된 천편일률적 평면 구조. “더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죠.” 조용하면서도 작은 땅이 많은 후암동에 자투리땅을 샀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권희라씨 집의 3층 부부 주거공간.

    5층 구조의 59.4㎡ 협소 주택을 지었다. 권씨는 작은 면적 내 수납 계획을 세세하게 세웠다. 1층은 부부의 작업실, 2층은 시부모 주거 공간, 3층은 부부 주거 공간, 4층은 삼대가 모이는 가족실, 옥상은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고 아인이가 놀 수 있는 정원으로 꾸몄다. 그렇게 필요한 것만 갖춘 집이 되었다.

    권씨는 곳곳에 물건이 드러나지 않도록 수납장을 배치했고 가구는 소파, 침대, 테이블만 남겼다. ‘추억의 물건’은 상자에 보관했다. “예전엔 그렇게 아깝고 소중하더니 보면 볼수록 필요없는 것이 많더라고요.”

    살림살이가 청소하는 데 5분이면 충분하다. 시댁과 합치고, 사무실도 들여오니 생활비도 줄었다. “집도 다이어트됐을 뿐 아니라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죠. 남의 시선에 휘둘리기보단 자존적인 삶을 살게 돼 행복해요.”

    “혼수라고 으레 사는 물건들, 대부분 불필요한 것들˝


    미니멀 라이프는 싱글족과 신혼부부들이 실천하기 쉬운 생활 방식이다.

    화성 사는 주부 김희연(34)씨 집 거실엔 식탁 겸 테이블 하나, 소파, 수납장, 화분이 전부다. 그 흔한 TV, 액자도 없다. 주방은 밥을 해먹는지 의아할 정도로 텅 비어 있고, 침실엔 침대와 작은 협탁, 전신 거울뿐이다. 도대체 물건은 어디에 보관하는 것일까?

    잠실 사는 결혼 3년차 주부 선혜림씨가 ‘예쁘게 빼기’를 실천한 주방. /조혜원 영상미디어 기자

    싱글족·신혼부부들
    “빼기가 홈 스타일링 시작”

    “붙박이장에 모든 짐이 들어가 있답니다.” 신혼 초엔 그녀의 열한 평짜리 복도식 아파트도 발 디딜 틈 없었다. “결혼 전 추억이 담긴 물건과 신혼가구가 뒤섞여 답답했죠. 숨 쉴 수가 없어서 이사 가는 수준으로 짐을 비워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버리고 나서 필요하면 어떡하지?’란 불안감 때문. “하지만 신기하게도 버린 물건은 대부분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김씨는 예비신부들에게 조언했다. “혼수라고 해서 으레 사는 물건들, 특히 주방용품 대부분이 불필요한 것들이에요. 살면서 필요할 때 하나씩 사도 충분합니다.”

    잠실 사는 결혼 3년차 주부 선혜림(32)씨의 25평형 집도 군더더기가 없다. ‘예쁘게 빼기’의 결과물이다. “맞벌이 부부로 살다 보니 청소할 시간은 없는데 살림살이만 늘어났죠. 그때부터 각종 선반, 액자, 수집했던 와인병 등 거실에 있는 것들을 ‘빼기’ 시작했어요.” 덩달아 소비도 줄었다. “요즘은 백화점, 마트 가서 예쁜 물건을 보면 ‘저게 다 짐이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부부 취향과 거리가 먼 물건, 집들이 선물과 사은품들은 요즘도 정리 1순위다.

    잡지기자 신미경(34)씨는 100켤레 넘는 구두를 소유했던 슈어홀릭. 그러다 3년 전 ‘심플하게 산다’는 책을 읽고 미니멀 라이프에 입문했다. 신씨는 “30평형 집에 살았는데 저보다 물건들이 사용하는 공간이 훨씬 많았지요.”

    의류, 화장품, 책순으로 정리했다. 2년 이상 입지 않은 옷과 신발은 과감히 버리고 나눠줬다. 집안에 ‘여백의 미’가 살아났다. 때마침 전세 계약도 만료돼 11평의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신씨는 “‘마이너스’가 홈 스타일링의 시작”이라며 싱긋 웃었다.

    쓰던 물건과 작별하기 전 그림으로 남겨… “하루 한 개 버리기로 집착과 소유에서 해방됐어요”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심리에는 ‘아까워서’ ‘남다른 사연이 있어서’ ‘손때가 묻어서’ 등 여러 이유가 존재한다. 주부 강현양(34)씨도 그랬다. 하지만 지난해 3월부터 자신이 쓰던 물건을 버리기 전 일러스트로 그려 기록하는 일명 ‘버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로 달라졌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버리는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물건을 충분히 살피고 이별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물건을 많이 소유해도 행복하지 못한 나를 발견했지요. 오히려 물건을 버리면서 주변을 단순화시키니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주부 강현양씨의 일러스트.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작별’한 물건만 255개다. 소파부터 오래돼 입지 않는 남편의 겨울 점퍼, 2년간 모은 관리비 명세서, 유행 지난 스트랩 구두에 다이어리까지. 재사용이 가능한 것은 기부하거나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 판매했다. 작별한 강씨의 물건들은 인스타그램(@simpleyang_)에 그림으로 기록돼 있다.<일러스트 참조>

    지난 4월, 첫아이를 출산한 뒤에도 1일 1개 버리기를 실천하고 있다. “한꺼번에 다 버리면 지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하루 한 개 버리기를 꾸준히 실천하죠. 덕분에 불필요한 물건 찾아내고, 물건을 필요한 것만 살 수 있을 정도로 절제력이 좋아졌어요. 집착과 소유에서 자유로워졌죠.”

    묵은 짐 어떻게 버릴지 고민된다면… 전문가에게 ‘정리 컨설팅’ 받으세요


    용인 사는 최혜선(62)씨는 지난봄 35년간 묵혔던 물건을 덜어냈다. 세월만큼 쌓여 온 살림살이를 무엇부터 어떻게 버려야 할지 몰라 고민할 때쯤, 한 TV 프로그램에서 봤던 정리정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결과는 대만족. 묵은 짐의 3분의 1가량이 빠져나갔다. “몇 년째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언젠가 쓸 것 같아 처박아 놓은 냄비와 플라스틱 그릇 등을 싹 정리했어요.” 책 처분이 가장 힘들었다. “한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을 정도로 좋아했는데 책장 두 개만 남겨놓고 모두 처분했습니다.”

    묵은 짐 정리하고 싶지만 혼자 힘으로 힘들다면 최씨처럼 정리정돈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 대한정리정돈협회(www.대한정리정돈협회.com·02-537-8776), 한국정리수납협동조합(www.ocoop.or.kr·02-448-6828)이 대표적이다. 대한정리정돈협회의 경우 고객 홈페이지, 전화 상담을 통해 ‘정리컨설팅’을 알려준다. 정리할 공간, 물건 양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공간이 작고 물건이 많지 않다면 시간당 2만원(단, 6시간 이상) 서비스가 가장 효율적. 오전 9시~오후 6시 하루 동안 정리정돈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35만원을 내면 전문가 2명이 묵은 짐 정리에 도움을 준다. 많은 양을 한꺼번에 정리해야 할 때는 평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단순 정리뿐 아니라 어떻게 수납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주는 ‘인테리어 수납법’이 더해진다. 20~30평형은 100만~150만원, 30~40평형은 150만원부터다.

    한국정리수납협동조합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컨설팅을 신청하면 전문가가 직접 집을 방문해 상태를 파악한 뒤 상담을 진행한다. 정리정돈이 끝나면 정리 유지교육과 기초정리수납교육도 실시한다.

    황수연 대한정리정돈협회 대표는 “흔히들 ‘언젠가는 쓸 날이 오겠지’ 하고 버리길 주저하지만 그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며 “결단내리기 어려우면 전문가들의 충격요법을 빌리라”고 말했다.

    [The 테이블]멍비치·개캉스… 견공님, 어서옵쇼
    화성까지 500일… 집처럼 편하게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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