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비치·개캉스… 견공님, 어서옵쇼

강원도 양양에는 반려견 전용 해변 ‘멍비치’가, 부산 해운대에는 초호화 스위트룸을 갖춘 반려견 전용 호텔이 등장했다.
반면 ‘영양탕’ 간판을 내세운 보신탕집은 현저히 사라지고 있다.
반려동물 100만 마리 시대. 더 이상 복날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개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입력 : 2016.08.16 19:16

    강원도 양양에 강아지 전용 해수욕장까지 등장…
    늘어나는 개들의 천국


    6시간 비행 끝에 푸껫공항에 도착했다. 덥지만 청량하고 달콤한 공기에 코가 저절로 벌름벌름. 시원한 바닷바람에 머릿결이 흩날렸다. 호기심 많은 내 딸 스와(1)는 태어나 첫 장거리 비행이 피곤할 법도 한데 주변을 살피느라 눈동자를 바쁘게 굴렸다.

    그래픽=김의균 기자

    장장 7박 8일간의 여름휴가! 엄마, 아빠, 나 그리고 스와 우리 네 식구는 단독 풀빌라 리조트에서 실컷 수영도 하고 파우더 같은 모래 해변을 맘껏 뛰놀았다. 그곳엔 눈치 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우리 모녀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와 “뷰티풀”을 연발하며 카메라를 들이대서 조금 귀찮았을 뿐. 꿈만 같던 휴가를 보내고 다시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후텁지근한 공기가 훅 밀려온다. 살갑지 않은 시선들도 느껴진다. “어머, 개까지 데리고 해외여행을 다녀왔나 봐!” 수군대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멍멍!” 지나가던 청소부 아주머니가 한마디 하신다. “네 팔자가 내 팔자보다 낫다.”


    성동구에 사는 비숑프리제 봉쥬르(3)씨는 지난 여름휴가에 봉스와양과 함께 태국 푸껫에 다녀왔다. 두 모녀는 주인 잘 만나 그동안 전국 각지의 애견 펜션과 애견 호텔들을 섭렵해 반려견계 금수저로 불린다. 해외여행은 이번이 처음. 봉쥬르씨는 “출국 전 제주 여행을 통해 예행연습을 했다”며 “6개월 전부터 광견병 예방접종에 마이크로칩 이식, 동물검역소 방문 등 이것저것 귀찮고 번거로웠지만 우리를 가족처럼 생각하며 철저하게 여행을 준비해주신 주인님 덕분에 개 평생 이렇게 꿀맛 같은 휴가는 처음”이라는 후기를 전했다.


    부러워하는 개들에게 봉씨가 한마디. “프랑스와 스위스, 이탈리아에 다녀온 친구도 있는걸요.” 봉씨 모녀의 해외여행 후기는 블로그(blog.naver.com/sks5058)를 통해 연재되고 있다.

    애견 블로거 ‘봉쥬르봉스와 파파’ 소규성씨의 반려견 봉쥬르, 봉스와 모녀. /소규성씨 제공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7월 1일~8월 11일 반려견 검역 건수는 수출 1241건 1497마리, 수입 936건 1503마리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3%, 10%씩 늘었다. 대한항공 측도 “여름 바캉스 성수기 시즌 반려동물을 동반한 여행자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며 “반려동물의 안전한 운송을 위해 항공사에서도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여행뿐 아니다. 전국 각지의 바캉스 핫플레이스를 배경으로 찍은 SNS 속 ‘개캉스(개와 함께하는 바캉스란 뜻)’ 사진에는 ‘좋아요’가 실시간 클릭된다.

    강원도 양양에는 반려견 전용 해변 ‘멍비치’가 개장했다. 부산 해운대에는 1박에 150만원짜리 초호화 스위트룸을 갖춘 반려견 전용 호텔도 등장했다. 개고기 즐기는 인구는 줄어드는 추세다. 5년 전 1만여 곳에 달하던 육견 사육 농장은 현재 6000여 곳으로 줄었다. ‘영양탕’ 간판을 내세운 보신탕집도 현저히 사라지고 있다. 반려동물 인구 1000만, 등록 반려동물 100만 마리 시대. 더 이상 복날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개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영양탕 사라지고
    곳곳에 ‘개’리비안베이


    애견 동반 숙소 늘어… 1박에 150만원 스위트룸도
    반려견이 저출산 원인? 오히려 육아에 자신감 생겼어요

    반려견, 한국 사회의 한 축으로

    일러스트=김의균 기자

    ‘개 노릇 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아. 더 중요한 공부는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무엇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무엇이 사람들을 괴롭히는지를 재빨리 알아차리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야. 아주 어려운 공부지. 말하자면 눈치가 빠르고, 눈치가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야.’김훈 소설 ‘개’의 주인공인 진돗개 보리는 “개 노릇엔 눈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동물 중 눈치가 유난히 빨라서일까?

    개는 반려동물로 항상 1순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개와 함께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애견 VS. 비애견 축이 팽팽히 맞서 눈치를 봐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런저런 이유로 버려지는 수도 상당하다. 개와 공생하는 묘법은 없는 걸까?

    30대 싱글, 자녀 없는 부부가 선호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지난 5월 발표한 ‘2015년도 동물보호·복지관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반려동물 사육 가구 비율은 21.8%다. 이 중 30대 1인 가구 또는 부부로만 구성된 1세대 가구 비중이 각각 26.9%, 30%로 가장 높았다. 전체 반려동물 중 반려견은 512만마리로 추산된다.

    서울 도곡동 사는 싱글족 김세준(42), 변세이(34)씨도 1인 가구로 각자 반려동물을 키운다. 변씨는 가족과 함께 살다 반려견 푸들 ‘세나’와 함께 독립했고, 김씨 역시 독립한 뒤 최근 셔틀랜드 쉽독 ‘레이’와 믹스견 ‘춘장’을 차례로 입양했다. “레이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 한쪽을 심하게 다쳤던 아이예요. 친구가 하는 동물병원에 주인이 안락사를 시켜달라며 맡겼는데, 다른 곳은 모두 멀쩡해 차마 안락사시키지 못하고 친구가 4년 정도 병원에서 키우던 것을 제가 데리고 왔죠.”

    지난 바캉스에 반려견 봉쥬르, 봉스와 모녀를 데리고 태국 푸껫에 다녀온 애견 블로거 ‘봉쥬르봉스와 파파’ 소규성씨가 바캉스 당시 애견 동반 가능한 풀빌라에서 반려견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소규성씨 제공

    변씨의 반려견 세나는 올해로 열다섯 살. 2000년대 초반 애완견 키우는 게 붐이었던 ‘퍼피붐 세대’인 변씨는 친구들과 함께 유행처럼 세나를 입양했다. “세나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게 아니라 가족”이라고 강조하는 변씨는 주변 반려견들이 나이 들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면서 요즘 반려견의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김세준씨는 레이와 춘장을 입양하며 라이프 스타일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우선 장시간 외출이 쉽지 않다. 여름휴가도 고민만 하다 놓쳤다. 그래도 김씨는 “퇴근해 집에 들어왔을 때 나를 반겨주는 녀석들을 보면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결혼하지 않고 반려동물만 키우는 싱글족이 늘면서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일부 시각에 대해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반려견 키워보기 전에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아이를 낳아도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요즘 SNS는 ‘개캉스’로 도배 중

    올여름 바캉스에서 이슈가 된 말은 ‘개캉스’였다. 개를 데리고 바캉스 다녀온 사진들만 봐도 열풍을 실감한다. 아예 반려견을 ‘또 다른 나’처럼 주인공으로 삼은 인스타그래머도 적지 않다. 해운대 야경을 등지고 선 포메라니안 ‘달리’부터 캠핑을 즐기는 몰티즈 ‘햇님이’까지 전국 방방곡곡 인기 여행지에서 포즈를 취한 개 사진들은 팔로어들을 열광케 했다.

    개캉스 명소가 된 반려견 동반 호텔과 펜션들은 예약률이 치솟았다. 애견 펜션인 경기도 가평의 ‘애프터눈 가든’이나 태안 안면도의 ‘개리비안베이’는 한두 달 전 예약해야 성수기에 이용할 수 있다. 도심에서 머물며 ‘스테이케이션’하는 호텔파 개도 많았다. 강남구 봉은사로에 있는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부티크호텔 ‘카푸치노’는 7월 말~8월 초 만실에 가까운 예약률을 보였다.

    이 호텔의 반려견 동반객 대상 여름 패키지인 ‘바크룸 패키지’(세금 포함 18만5000원)에는 반려견을 위한 토마토 파스타 또는 북어 파스타를 주 메뉴로 한 룸서비스가 제공됐다. 패키지 외 바크룸만 별도 이용 시엔 파우치에 장난감 1개, 치석 제거제 2개, 강아지 옷이 담긴 ‘강아지 전용 어메니티’를 준다. 오은진 예약실장은 “이용객은 주로 20대 후반~30대 중반 여성 고객”이라며 “반려견 전용 히노키탕은 별도 요금(5만5000원)을 받는데도 이용률이 높다”고 전했다.

    국내 특급호텔도 반려견 동반 가능한 룸과 서비스를 늘리는 추세다. 쉐라톤은 대표적인 ‘도그 프렌들리(Dog-friend ly)’ 호텔 체인이다.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은 반려견과 함께 숙박이 가능한 룸을 마련했다. 발코니가 있는 룸이라 쾌적하다. ‘러브 댓 도그’ 패키지 예약 시 반려견을 위한 침대, 물&사료 전용 그릇, 매트, 배변 봉투를 제공한다.


    이달 초 부산 해운대에는 국내 최초 애견 동반 전용 호텔 ‘더펫텔’이 등장했다. 건물 전체를 반려견 동반 고객을 위한 공간으로 꾸민 것이 특징. 호텔 안에 애견 미용실, 카페, 동물병원(오픈 예정)까지 갖췄다. 1박에 150만원인 펫 프레지던트 스위트룸도 있다. 이번 휴가 때 반려견 동반 가능 호텔을 이용했다는 이규리(33)씨는 “애견인들은 여행지 선택의 폭이 좁은데, 반려견 ‘세미’와 함께 호텔에서 주변 눈치 안 보며 편히 지냈다”고 했다.


    애견 블로그(blog.naver.com/sks5058)로 유명한 ‘봉쥬르봉스와’의 견주 소규성·김가연씨 부부는 태국 푸껫으로 떠난 이번 바캉스에 비숑프리제 봉모녀를 동반했다. “챙길 것도 많고 여러모로 ‘주개전도’된 폭소만발 여행이었지만 모든 걸 함께해야 진짜 가족이고 진짜 ‘반려’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식 키우듯 반려견도 예절 교육


    끔찍이도 예쁜 반려견이지만 그로 인해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중계동 사는 이현숙(48)씨는 개를 극심히 싫어하는 ‘개 혐오자’였다. 개를 안고 다니는 사람만 봐도 뒤돌아서 혀를 차던 이씨가 작년 요크셔테리어 ‘호두’와 1년간 동거했던 일은 잊을 수 없다. “아들, 딸이 사춘기가 되니 집이 삭막해졌어요. 마음이 헛헛하던 차에 누가 개를 키워보라고 권해서 호두를 입양했는데 성격이 밝고 애교가 많아서 금세 마음이 열렸어요. 공통의 화제가 생기니 가족들이 다시 거실에 모여 예전처럼 사이가 좋아졌죠.”

    흔히 반려견은 가족이라고 말한다. 1인 가구인 변세이(왼쪽), 김세준씨에게도 반려견 ‘세나’‘레이’ ‘춘장’(왼쪽부터)은 소중한 가족이다. 두 사람은 반려견을 키우며 책임감과 배려심을 배웠다고 했다.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허니문’ 기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호두의 짖는 소리에 급기야 경고문에 가까운 공고문이 아파트 게시판에 붙었다. 이씨는 주민들 눈치를 보며 호두를 숨겨 키우듯 하다 올 초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입양 보냈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의 수는 늘었다지만 반려동물을 삶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문화적 환경은 조성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보신 문화가 뿌리 깊게 박힌 우리나라 정서상 반려견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과 극이다. 반려동물과의 공생을 위해서는 애견인들이 페티켓(Pet+Etiquette)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김광식 위드펫동물병원 원장은 “영국 등 선진국의 경우 부모 교육처럼 애견인을 대상으로 반려견 교육을 진행하며 반려견에게도 예절 교육을 시키는 게 일반적”이라며 “반려견을 자식 키우듯 엄격히 해야 타인과 어울려 잘 커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개무룩’ 표정으로 대박…
    유기견서 SNS 스타로


    팔로어 14만명 넘는 ‘달리’
    대만 팬도 열광 ‘개 한류’ 견인

    개캉스를 가는 개들이 있는가 하면, 바캉스를 앞두고 버려지는 유기견들도 있다. 매년 7월은 유기견들의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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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의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 1만1000여 개가 클릭된 일명 ‘달리 상전’ 사진. /달리 인스타그램

    특히 피서지, 관광지 유기동물보호소는 바캉스 시즌이면 유기 동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10일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50% 이상 안락사 처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기 동물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유기견이었다가 새로운 주인을 만나 ‘인생역전’한 개가 있다. 포메라니안 ‘달리’다. 페이스북(@run darly) 팔로어 15만9000여명, 인스타그램(@run_darly) 팔로어 14만6000명, 게시물당 ‘좋아요’ 8000~1만개는 기본인 SNS 스타견 달리는 웬만한 연예인 부럽지 않다.

    달리는 사고 후 오른쪽 앞발이 절단된 상태가 되면서 주인이 포기한 개였지만, 2013년 2월‘달리 언니’ 이지은씨에게 입양되며 새 삶을 찾았다.

    달리의 일상이 하루아침에 바뀐 건, 2014년 11월에 이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달리의 사진 한 장 때문이다. “그즈음 혼자 보기 아까운 달리의 일상을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개무룩(개+시무룩) 사진’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달리의 별명이 ‘개무룩 강아지’가 됐지요.”

    부침개를 바라보며 기대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가 얻어먹지 못하자 점차 시무룩한 표정이 되는 달리의 개무룩 사진은 20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고, 여러 포털 사이트 메인에 소개됐다.

    이후 대만 신문에 소개돼 대만 팬까지 끌어들이며 ‘개 한류’를 이끌고 있다. 이씨는 “달리의 인기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다치고 주인에게 버려졌다는 아픔을 극복하고 서서히 밝아지는 모습을 함께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참 고맙다”고 했다.

    해변가에서 바캉스를 즐기고 있는 달리의 모습. /달리 인스타그램

    이지은씨는 자기 역시 달리를 만나기 전에는 유기견 입양에 아주 회의적이었다고 고백했다. “병들고 나이 든 개를 입양하는 건 희생 유전자가 있는 착한 사람들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달리를 키우며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죠. 처음에 눈치 보고,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소심하고 겁 많던 달리가 지금은 완전히 변했어요.”

    이씨는 달리가 영향력 있는 반려견이 되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길 바란다고 했다. “올해 달리 입양기념일에 맞춰 동물자유연대에 달리 이름으로 300만원의 기부금을 전달했어요. 그걸 보고 자기 반려동물 생일에 다른 동물을 위해 기부금을 전달했다거나 유기견을 입양했다는 분들의 메시지를 받으면 뿌듯합니다.”

    전용 아웃도어 상품부터 TV프로그램까지, 돈 되는 반려동물산업
    반려동물에게 사료가 아닌 음식을 먹이는 사람 증가
    [편집자 레터] ‘다른 삶’에 대한 존중과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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