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간 잘못된 국적… 그는 '韓國人 손기정'

    입력 : 2016.08.06 00:06

    - 故 손기정 금메달 획득 80주년
    기념재단, IOC에 국적 회복 촉구
    국내외서 '마라톤 영웅' 재조명… 독일 공영 TV는 다큐로 방송해
    "그 작은 저항이 한국인 집단기억"

    1936년 8월 9일 독일 베를린올림픽 메인스타디움. 마라톤 시상대에 오른 금메달리스트(손기정)와 동메달리스트(남승룡)는 우울해 보였다. 일본 국가가 연주됐다. 두 선수는 고개를 숙여 게양대에 오르는 일본 국기를 외면했다. 훗날 동메달리스트는 "금메달을 딴 동료가 부러웠다"며 "우승자는 기념품으로 받은 월계수 묘목을 들고 있어 가슴팍에 붙인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故) 손기정(1912~2002)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 80주년을 맞아 이 '마라톤 영웅'이 국내외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독일 공영 ZDF TV는 지난 2일(현지 시각) '잘못된 기(旗) 아래 승리'라는 제목으로 손기정 스토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손기정의 우승 장면을 중계한 독일 캐스터는 그를 "일본 대표이자 한국 대학생"이라고 소개했다. 이 다큐는 손기정이 남긴 말이라며 화면에 이렇게 옮겼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부문 시상식.
    1936년 8월 9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부문 시상식. 금메달리스트 손기정(가운데)은 우승 기념으로 받은 월계수 묘목으로 일장기를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왼쪽은 동메달리스트 남승룡, 오른쪽은 은메달리스트인 영국의 어니스트 하퍼. /손기정기념재단
    "인간의 육체란 의지와 정신에 따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한다."

    손기정은 시상식에서 손에 든 묘목으로 일장기를 더러 가리는 모습을 보였고 기자들이 사인을 요청할 때는 국적을 '한국'으로 소개했다. ZDF TV 다큐는 한국인 손기정이 올림픽 첫 금메달을 조국에 안겼지만 당시 한국은 일제 식민지였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의 영웅이 된 그의 작은 저항은 집단적 기억의 핵심"이라고도 했다. 손기정은 1992년 본지 인터뷰에서도 "나라 없는 죄로 이름까지 '기테이 손'이었지만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한국인임을 알리고 싶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오는 9일은 그가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지 꼭 80년이 되는 날이다. 국립대전현충원은 손기정을 이달의 현충인물로 선정했다. 손기정의 외손자인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은 5일 전화 통화에서 "9일 대전현충원에서 열리는 증서 전달식에 유족과 함께 참여한다"며 "손기정평화마라톤대회도 오는 11월 큰 규모로 치러질 것"이라고 했다.

    손기정이 우승 기념으로 받은 그리스 청동 투구는 보물 제904호로 지정돼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하지만 베를린올림픽 메인스타디움에 있는 마라톤 우승자 기록물에는 지금도 그의 국적이 '일본'으로 표기돼 있다. 손기정기념재단 대표이사장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한국의 손기정'이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올림픽 출전 당시 등록된 이름과 국적을 바꾸는 것은 역사를 훼손할 수 있다'며 일장기와 일본 이름을 지우지 않고 있다"고 '고 손기정 선수 국적 회복을 위한 특별결의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 내전 등으로 고국을 등진 난민들도 참가하듯이, IOC가 이제라도 '대한민국 마라토너 손기정'으로 불러줘야 한다는 것이다.

    손기정은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구멍가게와 행상을 하던 부모의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육상 특기생으로 양정고보에 입학한 그는 1935년 11월 열린 명치신궁대회에서 2시간26분42초의 비공인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하며 베를린올림픽 티켓을 거머쥐었다. 올림픽에서는 2시간29분19초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은퇴 후에는 1947년 서윤복, 1950년 함기용이 보스턴마라톤을 제패할 때 감독을 맡았고 대학체육회 부회장, 대한육상연맹 회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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