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통일 후 열릴 한국 현대사의 판도라 상자

  • 강규형 명지대 교수

    입력 : 2016.08.01 05:54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한반도는 냉전 체제의 마지막 장소로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공산전체주의 시대의 종언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무거운 의무를 지고 있다. 정치계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는 총체적으로 자유통일시대에 대한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냉전시대, 즉 분단 체제의 정리와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업과는 거꾸로 가는 일이 많다. 여러 번 지적했듯이 한국 사학계도 이런 역행의 무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문제의 근본에는 한국의 좌파와 운동권에서 NL(민족해방)계가 압도적 지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NL계에서는 북한 체제와 연계를 갖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분위기조차 있었다. 자연스럽게 직간접적인 연계와 협조, 심한 경우는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의 길로 갔던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중에는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 훨씬 더 많다. 충격적인 사례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NL의 컨트롤타워인 북한 체제가 오래전부터 흔들리고 있다. NL이라는 문화 진지는 견고히 구축돼 일반인의 의식 속에 아직도 강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북한 체제의 영속성을 믿는 집단은 아마도 NL 운동권과 일부 정치권 정도일 것이다. 이제 기댈 곳이 사라지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가야만 한다는 것을 그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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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9월 4일, 월요 평화기도회를 마친 뒤 처음으로 라이프치히 성니콜라이교회 밖 광장으로 나선 시민들과 위협하기 위해 출동한 동독 슈타지의 모습을 담은 현장사진. 동독정권의 붕괴를 부른 시민혁명의 시작을 알린 날이었다. /조선일보 DB

    통일 후 드러날 엄청난 증거들은
    현대사 다시 써야 할 충격 줄수도
    북한 공산통치 시기에 대한 정리
    체계적으로 지금부터 준비해서
    인류 최악의 전체주의에 기생한
    남한 일부 인사 민낯도 기록해야

    소련과 동구권 공산 체제가 무너지고 중국의 개방 이후 쏟아져 나온 엄청난 양의 문서와 증거를 통해 인류는 큰 교훈을 얻었다. 일례로 동독의 슈타지(비밀경찰) 문서를 통해 얼마나 많은 반인륜 범죄가 동독에서 행해졌고, 많은 서독 인사가 공산전체주의 체제에 부역했는지가 드러났다. 소련 및 동구 문서들의 공개와 미국의 대(對)소련 방첩 문서인 '베노나 프로젝트'의 공개 등으로 세계 현대사는 완전히 다시 쓰이고 있다. 미 국무부의 고위 관료였던 앨저 히스는 '양심적 지식인'임에도 억울하게 단죄됐다는 그동안의 주장이 무력화되고, 그가 실제로 소련의 일급 스파이였음이 확실해진 것은 이러한 문서들의 공개 덕이었다. 이런 흐름과 새로운 사실을 한국 사회에 열심히 알리면서 잘못 기술된 역사의 교정을 주장한 인사가 당시 중앙대 교수였던 이상돈 의원이었다. 문득 한국사 교과서의 현대사 부분이 그동안 제대로 기술됐는지에 대한 이 의원의 의견이 듣고 싶어진다.

    훗날 북한이 '개방'될 때 나올 엄청난 증거들은 한국 현대사를 완전히 다시 써야 할 정도의 충격을 줄 것이다. 우리가 사실이라 여겨온 여러 사건도 전혀 다른, 또는 추악한 진실을 보여줄 것이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북한의 공산 통치 시기에 대한 체계적 정리의 준비 과정이다. 인류 최악의 전체주의 체제에 기생했던 남한 내 일부 인사의 민낯도 제대로 조사되고 기록돼야 할 것이다. 보복이나 단죄의 목적보다는 어두웠던 한 시대를 정리하고 교훈을 얻기 위함이다. 일단 북한인권법에 따라 북한인권기록센터와 보존소가 설치될 예정이다. 서독이 사민당 브란트 정권 시절 잘츠기터에 동독인권기록보존소를 세워 참혹한 인권 실태를 조사·기록한 것을 좋은 선례로 삼아야 한다. 동독 관료들이 여기에 본인들 이름이 기재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예방 효과가 생겨났고, 실제로 이 기록에 근거해 통일 후 많은 동독 인사가 기소됐다.
    지난 1월18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대학성당에서 엄수된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에서 운구행렬이 지나고 있다. /성형주 기자
    독일에선 1990년대에 동독공산당(사회주의통일당) 독재청산연방재단이 세워져 소련 점령 시기(1945~49년) 및 동독 체제 독재의 원인·역사·결과를 정리하고, 독일 통일 과정을 추적하고, 독재 청산 작업을 지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대중에게 공산전체주의의 실상을 알리고 1989년 평화적 체제 전환(베를린 장벽 붕괴)의 역사적 의미를 일깨우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가 통일 후 할 작업을 미리 보여주기에 이 기관을 필히 참고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사이, 중요한 문서가 발굴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월남전 당시 사이공이 함락되자 교민을 구출하려다 월맹 측에 억류됐던 이대용 공사 등 한국 외교관 3명을 구출하기 위한 비밀 협상이 1970년대 말에 진행됐다. 북한은 우리 정부와 1대70의 조건으로 우리 외교관과 남한에 수감된 북측 인사들의 교환을 요구하다가 나중에는 1대7, 즉 3명 대 21명 교환으로 의견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중국·베트남 분쟁과 북한의 친중 노선에 분노한 베트남이 세 외교관을 그냥 한국에 보내면서 이 교섭은 무산됐다. 이때 북한이 '인도'를 요구한 인사 명단이 있는 공식 문서에 통일혁명당 사건의 주역으로 무기징역형을 살던 신영복 교수의 이름이 기재돼 있다. 북한이 왜 그의 인도를 요구했는지, 그 명단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역사의 진실은 의외로 빨리 모습을 드러낼 때도 있다. 통일 후 우리는 더 완연한 모습으로 그 실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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