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70조원의 ‘착한 투자’가 수익률도 좋다

    입력 : 2016.07.16 07:35

    [Weekly BIZ: 석유 재벌 존 록펠러의 5세손 '저스틴 록펠러']
     

    지난 2014년 9월, 록펠러 가문은 뜻밖의 선언을 한다. 록펠러 후손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석유 기업들의 지분을 모두 처분해 석유 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록펠러 가문을 일으킨 존 록펠러는 미국 내 석유 생산을 독점하며 막대한 재산을 모았던 인물이다. 록펠러 가문이 처분하기로 한 엑손모빌 주식은 보유 지분이 0.01%에 불과했지만, 록펠러가 세웠던 석유 회사 ‘스탠더드 오일’이 엑손모빌의 전신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임팩트 투자란
    사회·환경에 긍정적 영향 미치는
    사업이나 기업에 돈 넣고
    성과에 따라 수익 챙기는 투자

    투자 시 고려해야 할 핵심 요소
    환경 친화적인가
    사회에 긍정적 영향 주나
    기업 지배구조가 투명한가

    “록펠러 재단이 석유 기업 지분을 매각한 것은 단순히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이것 역시 투자입니다.”

    기업 기부 문화의 틀을 만든 석유 재벌 존 록펠러의 5세손(世孫) 저스틴 록펠러(Rockefeller·37·사진)는 록펠러 가문이 석유 산업과 결별한 이유를 묻자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ment)’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임팩트 투자는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임팩트)을 미치는 사업이나 기업에 돈을 투자하는 ‘착한 투자’를 의미하는 단어다.

    사회적, 환경적 임팩트를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기업·펀드에 투자하면서 성과에 따라 금융 수익도 가져간다는 점에서 단순 기부와는 다르다. 석유 산업이 온난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 때문에 발을 빼고 친환경적인 임팩트 투자에 나섰다는 취지다. 그는 “임팩트 투자는 수익 측면에서도 분명 도움이 된다”며 “저성장 시대의 돌파구로 임팩트 투자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강조했다.

    저스틴 록펠러는 존 록펠러의 5세손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해온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2년 전 정계를 은퇴한 제이 록펠러(존 록펠러 4세) 전 미국 상원의원, 할아버지는 석유왕 존 록펠러의 손자인 존 록펠러 3세다. 현재는 사회적 기업을 선정해 투자하는 비정부기구(NGO) ‘디 임팩트’의 공동 창업자이면서 동시에 벤처캐피털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주최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하늘색 셔츠에 남색 재킷을 걸친 모습으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인터뷰 내내 신중한 태도였지만 대부분의 질문에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그는 임팩트 투자에서 고려해야 할 핵심 요소로 ‘ESG’를 꼽았다. 환경(environment) 친화적인지, 사회(society)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기업 지배구조(governance)가 투명한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록펠러 가문이 최근 석유 산업에서 손을 뗐습니다. 석유로 부를 일군 가문이 석유 기업에 더 이상 투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저스틴 록펠러 임팩트 창업자. /조선일보 DB

    “록펠러 가문이 석유를 포함한 화석 연료에 투자한 자산을 정리한다는 것은 커다란 상징성이 있습니다. 록펠러 가문은 거대 석유 기업들이 대체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그동안 꾸준히 요구했습니다. 엑손모빌을 대상으로 소액 주주 운동을 펼쳤던 것도 그 일환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고, 결국 실천으로 옮긴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가문의 사람들은 록펠러라는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징성이 투자업계의 흐름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석유 회사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비단 록펠러 재단만이 아닙니다. 세계 최대의 민간 자선재단으로 꼽히는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2014년 이래 보유 중이던 화석 연료 관련 회사 주식을 꾸준히 매각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엑손모빌 주식 800만주를 매각했고, 앞으로도 영국 석유 회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 석유 기업 주식을 모두 정리할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대의를 위해 경제적 이익을 포기한 것처럼 들립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석유 회사 지분을 정리한 것은 단순히 기부를 위한 것도 아니고 사회 공헌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저는 이것을 임팩트 투자라고 부릅니다. 록펠러 재단을 비롯해 록펠러 가문 구성원들이 출자한 펀드들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이와 관련된 기업들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록펠러 재단이나 록펠러 가문 사람들이 투자한 펀드가 화석연료와 관련된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 매우 위선적인 행위라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암 투병을 지원하는 재단을 만들었는데, 재단이 담배 회사 주식을 보유해 배당금을 받고 시세 차익을 올린다면 얼마나 모순적일까요. 물론 재단은 돈을 벌겠지만, 재단의 원칙이나 설립 목적은 훼손하게 됩니다.

    게다가 석유 회사 주식을 매각한 것은 재무적인 관점에서도 정말 바람직한 결정이었습니다. 저희가 결정을 내릴 때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가 넘었는데, 지금 유가는 30~40달러 선입니다. 고유가로 석유 회사가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체적으로 석유 회사의 가치가 고평가됐다는 판단도 있었습니다. 석유 매장량을 고려해서 석유 회사의 가치가 여전히 높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실제로 지구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를 다 캘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평가는 옳지 않다고 봤습니다. 투자 가치가 낮은 산업이라고 본 것이죠.”

    ―록펠러 재단과 록펠러 가문이 만든 펀드는 기후변화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록펠러 가문은 석유 사업 지분을 처분해 얻은 돈을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정책과 기술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화석 연료에서 철수하는 대신 태양열,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투자에 나서는 것입니다. 저의 고조할아버지인 존 록펠러는 기업가로서 사회 공헌 활동의 새로운 장을 연 분입니다. 그리고 사업적으로도 아주 큰 성공을 거둔 분이셨죠. 저는 임팩트 투자가 자본주의와 사회 공헌의 교차점에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욕 록펠러센터. /조선일보 DB

    수익률 높거나 비슷
    1998~2001년 설정된 펀드 수익률
    일반 펀드가 연 6%일 때
    임팩트 펀드는 연 16%

    2002~2004년 수치는 0.1%p 차이

    선진국보다 신흥국 투자가
    수익률 높아

    ―실제로 임팩트 투자의 수익률이 높은가요. 투자에 제한이 있을 경우 수익률은 높아지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만.

    “많은 투자자들은 임팩트 투자가 재무적 수익률의 희생을 가져온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투자 컨설팅 업체인 케임브리지 어소시에이츠와 임팩트 투자 진흥기관인 글로벌임팩트(GIIN)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임팩트 투자를 하는 사모펀드(PEF)와 벤처캐피털펀드의 수익률은 일반 사모펀드·벤처캐피털펀드와 크게 차이 나지 않거나, 오히려 더 높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실제로 1998~2001년 설정된 임팩트 펀드의 연평균 수익률은 15.6%였습니다. 같은 기간 설정된 일반 펀드는 5.5%였습니다. 2002~2004년에 설정된 임팩트 펀드의 수익률은 7.6%로 일반 펀드(7.7%)와 비슷했습니다.

    임팩트 투자 자금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JP모건과 글로벌임팩트 투자네트워크(GIIN) 분석 결과 전 세계에서 금융기관과 재단, 펀드매니저들이 운용 중인 임팩트 투자 자금은 지난 2014년 460억달러(약 53조)에서 2015년 600억달러(약 70조)로 늘었습니다. 재밌는 점은 같은 임팩트 투자라도 선진국보다 신흥국에 투자하는 경우 수익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신흥국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임팩트 투자 시 어떤 점을 고려해서 투자 결정을 내리십니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인지, 그리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판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기업 지배구조와 문화도 봅니다. 직원들에게 올바른 처우를 하고 지배구조가 명확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런 회사가 오랫동안 살아남아 장기적으로 꾸준한 수익률을 꾸준히 올린다는 것은 이미 여러 사례로 증명됐습니다..”

    ―개인적으로 벤처캐피털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개인 투자에도 임팩트 투자의 원칙을 적용하시나요.

    “물론입니다. 제가 투자한 회사 중에 모던 미도(Modern Meadow)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바이오패브리케이션(biofabrication) 기술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합니다. 실험실에서 동물의 세포조직을 배양한 후 3D 프린터를 이용해 스테이크 맛이 나는 칩을 만들거나 유사 소 가죽을 만드는 기술이죠. 소를 죽이지 않고도 진짜 가죽을 만들고, 소고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기업이 성공을 거두면, 소를 많이 키울 필요성이 줄어들고, 가축 사육으로 인한 환경오염도 줄어들게 됩니다.”

    2016년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하고 있는 저스틴 록펠러 임팩트 창업자. /조선일보 DB

    ―유망 IT 스타트업에도 여럿 투자했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한 인터넷 광고 회사 에이퀀티브(aQuantive),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인 세일즈 포스에 투자했습니다. 현재는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이 투자한 금융소프트웨어 회사 아데파의 글로벌 디렉터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굴뚝 산업은 이제 경제의 중심이 아닙니다. 새로운 기술을 갖고 산업의 흐름을 바꾸는 기업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록펠러 가문의 후손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록펠러라는 이름에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는 ‘록펠러’라는 이름이 좋은 일을 하는 데 활용됐으면 합니다. 제가 ‘디 임팩트’를 설립하고 부유한 사람들에게 임팩트 투자를 권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제 목표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가문에 유력 정치인이 많았습니다. 정계에 진출할 계획은 있나요.

    “당장은 아닙니다. 현 시점에서 사회에 필요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정치가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종 정치에 매료될 때가 있기는 합니다.”

    석유 재벌 존 록펠러,
    평생 현재 가치로 145조원 기부


    지난 2007년 미국 경제지(誌) 포천은 미국 역대 최고 갑부로 19세기 석유 재벌 존 록펠러를 선정했다.

    저스틴 록펠러 임팩트 창업자. /조선일보 DB

    미국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개인 자산의 비율을 시대별로 산출한 결과, 록펠러는 사망 당시인 1937년 GDP의 1.54%에 해당하는 14억달러를 보유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현재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 재산의 3배가 넘는 돈을 벌었다고 한다.

    존 록펠러는 1870년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을 공동 창업, 10여년 만에 미국 석유 산업의 95%를 독점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는 철도 수송망을 장악, 경쟁 기업에 차별적 운송 요금을 적용하면서 경쟁 업체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거나 합병·제휴하는 등의 방법으로 미국 내 석유 산업을 장악했다.

    저가 공세로 경쟁사를 차례차례 무너뜨리는 등 온갖 편법과 불법을 서슴지 않아 그의 재산에는 항상 ‘더러운 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원한을 산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는 항상 침대 곁에 총을 두고 잤다고 전해진다. 결국 미국 정부는 1911년 독점금지법(Anti-trust act)을 만들어 ‘스탠더드 오일’을 34개사로 쪼갰다. 그 결과 지금의 엑손모빌, 셰브런 같은 굴지의 석유 기업이 생겨났다.

    하지만 현재 존 록펠러는 ‘악덕 기업가’보다는 ‘위대한 자선사업가’로 회자된다. 막대한 기부를 하면서 무자비한 자본가라는 오명(汚名)을 씻었다. 그가 살아서 기부한 돈은 5억3000만달러로, 미국 GDP에서 록펠러 재산이 차지했던 비중을 감안하면 현재 가치로 1280억달러(약145조원)에 달한다.

    1913년 당시 5000만달러를 기부하여 세계 최대 재단인 록펠러 재단(The Rockefeller Foundation)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록펠러 의학연구소, 시카고 대학, 록펠러 센터 등에 자신의 엄청난 재산을 쏟아부었다. 뉴욕 중심가 알짜배기 땅의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링컨센터 역시 록펠러 가문의 후원으로 세워졌고, 유엔본부 땅도 록펠러 가문이 기증했다.

    뉴욕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허드슨 강변에 위치한 록펠러 가문의 대저택 키쿠이트. 뉴욕 주지사를 지낸 3대 넬슨 록펠러가 1979년 사망하며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부해 오늘날 관광지로 개방되어 있다. /히스토릭 허드슨밸리 제공

    록펠러 가문 사람들은 막대한 부(富)를 기반으로 다른 명문가와 혼맥을 형성하면서 정계에도 진출했다. 존 록펠러 주니어의 둘째 아들 넬슨 록펠러는 공화당 출신으로 41대 부통령을 지냈다. 넬슨 록펠러는 수차례 대권에 도전했지만, 리처드 닉슨 등 공화당 유력 후보에게 밀려 대선 후보에서 낙마했다. 부통령이 된 후에는 록펠러 가문의 막대한 재산이 부각되면서, 오히려 정치적 입지가 약화됐으며 1977년 결국 정계에서 은퇴했다.

    넬슨 록펠러의 동생인 윈스롭 록펠러는 아칸소 주지사를 지냈다. 록펠러 가문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지만 존 록펠러 3세의 아들인 제이 록펠러는 민주당 출신으로 미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제이 록펠러는 2년 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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