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아키히토 일왕

    입력 : 2016.07.15 07:27

    일왕의 계보는 기원전 660년에 시작한다. 하지만 신화로 각색된 초기 기록이 많아 학계에선 서기 270년 왕위에 오른 15대 오진(應神) 일왕부터 실제 역사로 간주한다. 그동안 110명이 왕위를 이었다. 평균 15.8년. 지금 일왕은 28년째다. 아버지 쇼와(昭和) 일왕이 세운 최장 재위 기록 62년엔 어림없지만 역대 평균치는 넘어섰다.

    ▶일본 왕실은 양위(讓位)를 즐겼다. 일단 '천황(天皇)'에서 물러나 '상황(上皇)'에 앉는다. 그러다 상황도 물려주고 불교에 귀의해 '법황(法皇)'이 된다. 물론 권력은 놓지 않는다. '종교의 왕' 법황까지 더해 권위를 강화하는 일종의 '왕위 인플레이션'이다. 12세기 고시라카와(後白河) 일왕은 3년 만에 물러났지만 이후 아들·손자 다섯 명에게 왕위를 잇게 하고 막후에서 30년이나 나라를 주물렀다. '황' 자 달린 분을 두셋 모셔야 했으니 백성 처지가 오죽했을까. 이러다 사무라이에게 권력을 빼앗겨 일왕은 허수아비가 됐다.
    아키히토 일왕. /조선일보 DB
    ▶막부(幕府) 시대는 700년 이어졌다. 많은 백성이 일왕의 존재를 몰랐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재위 기간은 이때 늘어났다. 무슨 대단한 권력이라고 층층이 나누는지. 무엇보다 재정난 탓에 두세 왕실을 유지할 수 없었다. 돈이 없어 일왕 장례까지 못 치른 때도 있다. 16세기 고쓰치미카도(後土御門) 일왕이 숨졌을 때 왕실은 시신을 44일 동안 방치했다.

    ▶지금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는 헤이세이(平成)다. 1989년이 원년(元年)이다. 그해 일본의 국력이 최고에 달했다. 동시에 거품 경제도 최절정에 이르렀다. 거품이 무너지면서 일본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많은 일본인은 '헤이세이' 뒤에 떠오르는 말로 '불황'을 꼽는다. 시대는 침체했지만 일왕 이미지는 반대로 나아졌다. 부친이 남긴 어두운 유산을 정리해 갔기 때문이다. 전쟁을 벌인 중국을 방문했고 격전지 사이판에선 한국인 전몰자 위령비를 참배했다.

    ▶아키히토 일왕이 양위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 여든셋 고령에 겹친 지병 탓일까. 아니면 정치 환경의 변화 탓일까. 얼마 전 선거로 국회를 장악한 개헌 세력은 일왕을 '국민 통합의 상징'에서 '국가원수'로 다시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지금 일왕이라면 '원수' 칭호를 불편해할 듯하다. 일본 외교가에선 그가 역사 화해를 향한 마지막 여정으로 한국 방문을 원한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흘러다닌다. 일왕 신분으로 실현할 수 없다면 퇴임 후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면 어떨까. 따뜻한 마음으로 그를 맞아줄 한국인이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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