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9급 변호사'

    입력 : 2016.07.13 07:08

    4년 전 국민권익위원회가 변호사를 6급으로 뽑으려 하자 사법연수원생들이 발끈했다. 그 전까지 정부와 지자체는 변호사를 5급 사무관으로 채용했다. 5급은 변호사 '몸값'에 대한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다. 거기서 한 급 '강등'되자 사법연수원생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사시 출신을 행시 출신 사무관 밑에 두는 건 공개적 모욕"이라고 했다. 몇몇은 국민권익위를 찾아가 항의했다. 그런 분위기에 눌려 권익위에 합격한 셋 중 둘이 임용을 포기했다. 시끄럽던 6급 대우도 그나마 얼마 안 가 무너졌다.

    ▶이듬해 부산시가 변호사를 7급으로 채용하겠다고 했다. 로스쿨생 인터넷 카페가 험악한 글로 도배됐다. '썩은 떡밥을 무는 지원자는 신상을 털어야 한다' '부산시 공채를 보이콧하자'…. 부산시는 변호사 한 명을 선발하고도 신원을 비밀에 부쳤다. 그러다 지난해 중앙선관위가 변호사를 7급으로 뽑으면서 '변호사 6~7급 대우'는 대세가 됐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애초에 직급이 없다. 행시 출신보다 높은 직급을 받아야 할 법적 근거도 없다. 지난 5월 통계에서 변호사가 2만1394명이다. 10년 전보다 두 배 반 늘었다. 2012년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처음 나오면서 급증했다. 반면 서울 변호사 월평균 수임 사건은 지난해 1.9건으로 10년 전의 절반이 됐다. 공급은 느는데 수요가 줄어드니 몸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변호사들이 대우에 민감한 건 한번 밀리면 '날개 없는 추락'을 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시장 가격에 민감한 기업에선 '법조인 프리미엄'이 없어진 지 꽤 됐다. 김상헌 네이버 대표는 판사 3년 차이던 1996년 LG그룹으로 가면서 상무 대우를 받았다. 30대 초반 때였다. 판검사 경력이 없어도 변호사 출신은 2005년까지만 해도 과장으로 대기업에 들어갔다. 그러다 5~6년 전부터 죽죽 밀려 요즘은 잘해야 대리급 대우를 받는다.

    ▶로스쿨을 나온 40대 후반 변호사가 얼마 전 광주광역시 일반 행정 9급 필기시험에 응시했다. 작년 7급 시험에 떨어지자 9급으로 낮춰 도전했다고 한다. 변호사 업계는 또 술렁이고 있다. 세태를 인정하기보다는 "황당하다"거나 "사회적 낭비"라는 비난이 훨씬 많다. 같은 직업인끼리 '담합(談合) 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그 변호사가 무슨 사정으로 9급 시험에 응시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광주광역시도 그의 이름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9급이라는 직위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성실히 일하고 그 일에서 만족을 얻느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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