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4.27 05:47
인터넷 공간에서 사진 한 장이 화제에 오르고 있다. 아베 일본 총리가 구마모토 지진 대피소를 찾아간 장면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바닥에 대고 허리 굽혀 이재민과 대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역사 문제로 한국에서 후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아베 총리이지만 이번엔 평이 좋았다. 낮은 자세가 피해자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듯하다고들 말한다. '우리 대통령도 저렇게 재난 피해자를 대하면 어떨까'라는 제안도 있었다.
▶재작년 74명이 숨진 히로시마 산사태때도 아베 총리는 같은 자세로 피해자들을 만났다. 무릎을 꿇고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린 모습이 죄인처럼 보였다. 세월호 침몰 넉 달 뒤 일이라 그때도 한국에서 여러 의견이 있었다. 물론 일본에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5년 전 동일본 대지진 현장에선 일왕 부부도 무릎을 꿇고 이재민을 위로했다. 기자들도 재해 현장 취재 땐 같은 자세로 피해자를 대한다고 한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부분이 있다. 위로받는 사람들도 위로하는 쪽처럼 무릎을 꿇고 대한다는 것이다. 일왕이 대피소로 들어오자 일제히 그 방향을 향해 무릎 꿇고 고쳐 앉는 모습을 보면 이게 가족과 재산을 잃은 원통한 사람들 맞나 싶다. 위로하는 쪽, 위로받는 쪽 구분 없이 서로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감동을 준다.
▶정좌(正坐)는 몸을 바르게 하고 앉는 것을 뜻한다. 일본에선 무릎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꿇어앉는 '굴슬좌법(屈膝座法)'을 정좌로 본다. 다다미방에서 통 좁은 옷차림으로 사는 일본 생활 문화에서 나온 습관이다. 꿇어앉는 행위가 딱히 사죄나 굴복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땅에 엎드려 조아리는 '도게자(土下座)'와는 다르다. 우리가 인사할 때 손을 모으듯 '굴슬'은 그들 나름대로 지키는 예법이다. 일본인에게 물어보니 "피해자들이 서 있었다면 일왕과 총리도 서서 그들을 대했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일부러 그런 모습을 따라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중요한 건 앉고 서고가 아니라 눈높이라고 했다. 일본인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길을 금기로 여긴다. 자기 눈을 상대 눈높이에 맞추려다 보니 앉게 된 것이고, 앉게 되니 정좌로 에티켓을 지켰다는 얘기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앉은 피해자를 단상에서 위로해선 안 된다. 무릎을 꿇고 "아이를 살려달라"고 할 땐 함께 무릎을 꿇고 손을 만지며 상대방과 눈을 맞춰주는 게 위로의 시작이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백마디 말에 앞서 역시 눈높이가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