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인간正讀

누가 시킨건 아니지만… 난 대한민국 국가대표

    입력 : 2016.04.23 07:53

    [가구 인생 40년 손동창 퍼시스 회장(下)]
     

    <上편에서 계속>

    가구 대신 환경을 팔겠다

    ―퍼시스는 직접 지은 이름입니까.

    "퍼니처(furniture)와 시스템(system)을 합친 뒤 줄인 말입니다. 창업하던 시절부터 우리는 '사무 가구가 아니라 사무 환경을 팔겠다'고 했었거든요.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고 판다는 뜻입니다."

    ―보통 직장인이 1년 6개월 만에 이사 승진을 했다면 그 회사에 남아 있을 텐데요.

    "어렸을 때부터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고 사람 모인 곳에서 제 뜻대로만 할 수도 없었지요. 하여튼 그때 직장 생활은 제가 하려던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습니까.

    "대개 돈 벌려고 기업을 한다고 생각하잖습니까. 운동선수나 예술가들은 돈 벌려고 하지는 않죠. 그게 좋아서 열심히 하다 보니까 잘할 수 있게 돼서 돈을 버는 겁니다. 기업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아니라 어떤 기업을 만들고 싶어서 기업을 할 수도 있어요. 저는 돈 좇아서 기업 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기업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돈이 따라왔습니다."

    손동창 퍼시스 회장. /이태경 기자

    노사문제가 없는 회사,
    만들고 싶어

    정상보단 1류가 되고 싶어

    ―그것을 '기업가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젊었을 때 읽은 스위스 철학자 칼 힐티 책에서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라는 문장이 뇌리에 콱 박혔어요. 그 이후 '내가 기업인이 돼서 노사문제 없는 회사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창업 후 내가 직원들에게 '좋은 기업을 만드는 것이 내 비전'이라고 말하니까 '좋은 기업'이 무슨 비전이냐고 웃더군요. 저는 1등이란 말을 절대 쓰지 않습니다. '정상(頂上)'이란 말도 쓰지 않습니다. 대신 일류가 되자고 합니다."

    ―그건 한샘이 국내 가구 업계 1위이기 때문입니까.

    "저희가 사무 가구 회사로는 압도적인 1등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1등 해봐야 아무 의미 없습니다. 일류가 뭐냐, 학교에서 1등 하는 놈도 일류지만, 3등, 5등 하는 놈도 일류란 말이지요. 그 그룹에만 있으면 되는 겁니다. 세계 일류 기업이 되는 것이, 일류 그룹에 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퍼시스는 가구를 직접 제조하는 회사로는 국내 1위다. 손 회장은 중국을 비롯한 하도급 업체에서 제작한 가구를 국내 유통하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직접 모든 가구를 제조하는 가구 회사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실제 가구 회사 중 퍼시스는 '제조업'으로 분류돼 있으나 다른 회사들은 '유통업'이나 '도매업'으로 분류돼 있는 경우가 많다.

    퍼시스에는 노조가 없다. 2007년부터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네 차례 국무총리 또는 노동부 장관상을 받았다. 손 회장은 1993년 창립 10주년 때 10년 근속 사원들과 우수 대리점주에게 당시 '국민차'였던 티코를 한 대씩 선물해줬다. 당시 티코 가격은 한 대당 270만원이었다. "몇 년 주다 보니까 더 이상 티코를 좋아하지 않기에 현금 300만원을 대신 선물하는 것으로 바꿨다"고 손 회장은 말했다.

    손 회장은 "노사문제가 없는 기업을 내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창업했다고 말했다. 퍼시스 창업 초기 직원들과 함께 집에서 식사하는 손 회장(맨 왼쪽). /퍼시스 제공

    95년 부채상환 後
    회사에서 은행대출은 없어

    100년 이상 가려는 회사엔
    규모 확장은 우선순위 아냐

    ―은행 돈은 왜 안 씁니까.

    "초창기에야 썼지요. 은행 지점장 만나려고 1시간씩 기다리고…. 할 일이 태산인데 사장이 은행에서 아쉬운 소리 하고, 그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빚을 점점 줄이다 보니 1995년인가 빚이 '0원'이 됐습니다. 그 이후로는 우리 회사에 대출금이라고는 10원도 없습니다. 은행하고 친해져봐야 좋을 것 없습니다. 옛날 노래 식으로 '돈 없으면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하는 식인 거죠. 하하하."

    ―경영학 이론과는 다른 말씀입니다만.

    "대출 이자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게 경영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건 돈 없는 사람들 이야기이고 내 회사에 돈이 있는데 왜 빌리겠어요. 나도 큰 회사 M&A하려면 돈 빌려야겠지요. 그걸 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걸 하지 않는 이유가….

    "아까 '좋은 기업' 이야기를 했는데, 기업이란 게 종업원들의 직장 아닙니까. 이게 없어지거나 적자가 나면 안 됩니다. 기업이 적자 내는 것은 사회에 큰 죄악을 범하는 거예요. 기업이 100년, 200년 가려면 탄탄하게 토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서울에 우성아파트·장미아파트·한신아파트 많잖아요. 그 회사들 80년대에 돈 엄청나게 벌었죠. 그런데 다 망해서 없어졌습니다. 끊임없이 확장정책 하다가 그렇게 됐죠. 100년 이상 가려는 회사에 규모를 키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퍼시스는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조차 빚이 한 푼도 없었다. 오히려 외국에서 달러로 받은 대금을 환율 피크 때 팔아 40억원가량의 시세차익을 냈다. 당시 내수가 크게 줄어 수익이 30억원으로 줄었으나 이 달러 차익 덕분에 총 수익은 70억원을 기록했다.

    퍼즐시리즈(리뉴얼). /퍼시스그룹 제공

    남다른 경제관

    할부는 절대 안써
    저축의 중요성 강조

    IMF 때도 빚 한 푼 없던 회사

    ―요즘 세대들은 은행 빚 내서 집을 장만하잖습니까.

    "나는 못마땅합니다. 늘 직원들에게 저축하라고 합니다. 공장 직원들에게도 '봉급 전부 아이들 학비에 쏟아부으면 정년퇴직 후에 어딜 가느냐. 정부에서 주는 것 먹고 살 거냐. 아이가 공부 잘하면 모르지만 아니면 빨리 기술 배워서 전문직으로 보내라'고 합니다. 저는 그런 얘기할 때 떳떳합니다. 내가 전문학교 출신이니까요. 내가 학력 짧아서 사업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잘하면 경기공전이 유명해지는 것이죠. 나는 신용카드도 뒤늦게 썼습니다. 카드라는 게 다 25일짜리 빚입니다. 우리 집에는 할부라는 게 없습니다. 우리 집사람 딱 한 번 백화점에서 할부로 뭐 샀다가 난리 났습니다."

    ―환불하라고 했나요.

    "아니죠. '당장 가서 카드 취소하고 현금으로 사라'고 했지요. 내가 늘 하는 말이 '제일 돈 아끼는 방법은 사지 않는 것'이라는 겁니다. 싸게 사려고 인터넷 뒤지지 말고 정말 싸게 사고 싶으면 사지 말라는 거죠. 그거 없다고 뭐 죽습니까. 하하하.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야죠." 그는 휴일이면 아내 장미자(61)씨와 함께 서울 근교 산에 자주 가는데, 산 밑에서 헤어져 각자 속도대로 산에 오른 뒤 다시 산 밑에서 만나 집에 돌아온다고 했다. 그는 "산에 오를 때 정신을 집중할 수 있어 회사 전략을 산에 오르면서 구상하곤 했다"고 말했다. 아들 손씨가 어머니에게 "같이 가서 혼자 산에 오르는 아버지가 서운하지 않으냐"고 묻자 장씨는 "아버지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방해할 수 없지 않으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손 회장 집무실의 모든 가구는 퍼시스 제품이었는데 큰 책상 하나와 높낮이가 조절되는 작은 책상, 긴 회의 테이블이 전부였다. 높낮이 책상에는 컴퓨터와 전화기, 작은 탁상시계가 놓여 있었다. 회의 테이블은 폭이 110㎝로 좁은 편이었다. 책상 밑에는 낡은 슬리퍼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30년 넘게 신은 손 회장의 슬리퍼. /한현우 기자

    오래된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이유
    "아직 쓸만해서"

    ―저 슬리퍼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저것 1980년대 초에 성수동 시장에서 산 겁니다. 저런 슬리퍼도 30년 이상 신을 수 있습니다." 슬리퍼 한짝 바닥이 갈라져 있었으나 실내 전용이라 물 샐 일은 없어 보였다. 옆에 있던 이종태 퍼시스 사장이 "회장님 골프 퍼터도 20년 전 것을 아직도 쓰신다"고 말하니, 손 회장은 "20년 됐지만 성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손 회장은 중학생 시절 서울 국립의료원에 갔다가 그곳 북유럽 가구를 보고 가구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국립의료원은 북유럽 국가들의 원조 물자로 채운 곳이어서 멋진 디자인의 의자와 책상들이 많았다. 그것이 1960년대 초였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12년 퍼시스는 미국 가구 회사에 디자인을 수출하고 13년간 최소 650만달러를 받는 로열티 계약을 맺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가구 회사와도 디자인 수출 계약이 마무리 단계다.

    "누가 날 뽑아주진 않았지만 저 스스로 국가대표라고 생각합니다. 내 개인적인 자존심도 있고 회사의 자존심도 있고 국가의 자존심도 있지요. 우리 회사를 반드시 세계 일류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대표선수 정신'이 있습니다. 내 세대에 되지 않으면 내 다음 세대에라도 꼭 글로벌 리딩 컴퍼니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바느질로 한복 만들 자신 있다"

    ―어머니는 무엇을 가르쳐 주셨습니까.

    "사회가 주는 것을 받아먹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프라이드가 된 것 같아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서 바느질 일을 했습니다. 지금도 한복 치마저고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예쁘게 만들기는 힘들겠지만요. 그렇게 자립심을 심어주신 분이 저희 어머니셨습니다."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오래된 가전제품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던데요.

    "우리 집에 30년 넘은 금성사 선풍기가 있습니다. 아직 잘 돌아갑니다. 집 서재에 있는 의자는 30년 전에 우리 회사에서 만든 것을 아들한테 물려줬다가 아들이 결혼하면서 두고 간 걸 아직도 쓰고 있지요. 저는 사치나 허영이나 권위적인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아드님은 자립심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요즘 말로 금수저인데, 제가 회사에 들어오겠다는 것을 여러 번 말렸습니다. 기업 한다는 것이 영광의 길이 아니라 정말 힘든 길이다, 아버지가 석축 1m 쌓아놓은 위에 1m 더 쌓으려면 얼마나 힘들 줄 아느냐고요. 그래도 꼭 해보겠다고 해서 받아줬습니다."

    2016년 4월 20일 퍼시스 손동창 회장이 서울 오금동 퍼시스 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가급적 작은 회사에서
    많이 배워 창업해야,

    큰 회사에선 부분만 배워

    ―일을 시켜보니 어떻습니까. 최종 면접에서 동그라미 받겠습니까.

    "나는 삼각형 치겠습니다. 나머지 세 사람이야 동그라미 치겠지요. 하하하."

    ―일자리 없다고 아우성인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가급적이면 중소기업으로 가고 가급적이면 남들 안 하는 일을 하라는 겁니다. 그게 창업하기 좋습니다. 큰 회사 가면 작은 부분밖에 못 배웁니다. 작은 회사 가면 그 업(業) 전체를 이해하게 되니 창업할 수 있습니다. 다들 조금이라도 더 좋은 회사 가려고 하는데, 저는 조금이라도 더 낮춘 뒤 골라서 가라고 하고 싶습니다. 작은 회사를 키워서 임원이 되고 사장도 되면 좋지, 봉급 조금 더 준다고 왜 그렇게 큰 회사만 가려는지 모르겠어요."

    ―큰 회사가 안정적이지 않습니까.

    "중매하는 분들이 하는 말 중에 '그 청년 직장도 튼튼하고…'하는 말이 있는데 그 말에 절대로 속으면 안 됩니다. 세상에 튼튼한 직장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만든 회사라면 모를까, 남 밑에 있는데 내가 일을 잘하면 튼튼한 것이고 못하면 언제든 쫓겨나는 거죠. 학교 선생님 튼튼한 직장이라고 다들 몰리는데 직장 튼튼하다고 다들 선생이 되면 교육은 뭐가 됩니까. 애들 가르치는 게 우선 보람 있고 월급도 주니까 먹고산다, 이런 정신으로 해야죠." 그가 말하는 "내가 원했던 기업을 만들다 보니 돈이 따라왔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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