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인간正讀

"기업이 적자 내는 건 죄에요, 죄"

    입력 : 2016.04.23 07:54

    [가구 인생 40년 손동창 퍼시스 회장(上)]
     

    가구 회사 퍼시스의 회장실은 7층 한구석에 있다. '한구석'이란 표현이 과장은 아닌 것이, 자유로운 복장의 평사원들이 가득한 사무실 한쪽, 다른 회사 같으면 상무실이 있을 법한 곳에 회장실이 있었다. 지난 20일 서울 오금동 퍼시스 본사에서 만난 손동창(68)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 친구들 내가 출근할 때 쳐다보지도 않아요."

    정작 이 회사에서 가장 좋은 공간은 4층이었다. 4층 전체의 4분의 3가량을 테라스로 만들고 나머지 공간 역시 주방과 휴게실로 채운 휴식 공간이었다. 이 회사 오너의 경영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공간 배치였다.

    손 회장은 지난 3월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명문 경복중학교를 나와 일반고에 가지 않고 경기공업고등전문학교에 진학, 가구 일을 배우다가 35세이던 1983년 퍼시스를 창업한 그는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좋은 기업을 만들어보고 싶었고 그런 기업을 만들려다 보니 돈이 따라왔다"고 말했다. 퍼시스는 은행 빚이 단 한 푼도 없는 회사, 어음을 발행하지 않는 회사로 유명하다.

    맨손으로 회사를 일궈 부자가 된 손동창 회장은 회사 구석구석을 꿰뚫고 있다. 그는 회사 앞뜰에 잔디가 그늘 때문에 잘 자라지 않자 맥문동으로 바꿔 심었다. 회사 로비와 복도, 쇼룸에 걸 그림 한 점도 모두 직접 갤러리를 방문해 고른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 데다 직원들에게 맡기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직원과 임원이 수평관계,
    잃는 것도 있지만
    얻는 것도 있어

    직원 사무실 한쪽에 회장실

    ―회장님이 옆에 있으면 직원들이 불편해하지 않습니까.

    "직원들이나 나나 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인데 대등한 입장이죠. 우리 회사에는 회장이라고 뭐 특별하고 그런 마인드가 전혀 없습니다. 잃는 게 있다면 얻는 것도 있겠죠. 자주 얼굴 보다 보면 대화할 기회도 많고 그만큼 배울 기회도 있을 테니까요. 우리 직원들 입사 면접을 굉장히 엄격하게 해서, 다들 아주 착합니다."

    ―면접을 어떻게 합니까.

    "정기 채용 때 6000~8000명 정도 원서를 내는데 늘 '30명쯤 뽑자'고 해놓고 면접해보면 열댓 명 정도밖에 못 뽑아요. 최종 면접에 나 포함 네 명이 들어가는데 네 명 모두 '똥글뱅이(동그라미)'를 쳐야 합격합니다. 간혹 한 명이 삼각형 줘도 뽑히긴 하지만 엑스표가 하나라도 있으면 떨어집니다. 그러다 보니까 몇천 명에서 서른 명 뽑기가 쉽지 않습니다."

    ―면접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인성을 집중적으로 봅니다. 젊었을 때부터 면접을 많이 봐서 대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은 나이 들면서 다들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걸 보니까 이제 면접관도 은퇴할 때가 된 것 같긴 하지만요. 하하하." 퍼시스는 최종 면접에 올라온 응시자들에게 고교생활기록부를 제출하게 해서 꼼꼼하게 보는 회사다.

    ―어떻게 해야 퍼시스 최종 면접을 통과할 수 있습니까.

    "이력서에 있는 가족 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묻는데 이때 저는 인성을 집중적으로 봅니다. 가족 관계에 이른바 스펙이 좋으면 별로 묻지 않습니다. 스펙이 별로 안 좋으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묻는데, 부모 형제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보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 직업이 세상 잣대로 별로 좋지 않다고 해도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시켜줬으면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데, 대개는 잘 대답 못하고 감추려고 합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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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회장이 수첩에 써놓은 문구들. "까마귀 노는 곳에 가지 말자" "부자가 되혀면 부자될 짓을 하가" 같은 글이 보인다. /한현우 기자

    어떠한 결과를 얻더라도
    기본적으로 겸손해야

    1948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손 회장은 한 살 때 부친이 작고한 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6·25전쟁 후 서울 돈암동에 삶터를 꾸린 그의 모친은 삯바느질로 생활비를 벌어 삼형제를 키웠다. 둘째 형을 병환으로 일찍 여읜 막내아들 손 회장은 일곱 살 위 큰형으로부터도 많은 것을 배웠다. 광복 후 혼란기에 태어나 전쟁이 끝난 잿더미 위 편모슬하에서 자란 그는 "충남 천안공원묘지에 계신 어머니께 지금도 큰 변화나 고민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서 보고 드리고 또 기도도 올리곤 한다"고 말했다. 그 자신 스펙이라곤 없는 어린 시절을 겪고 자라났으나, 그 가족과 형제들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한 것처럼 보였다.

    손 회장의 아들 손태희(36) 퍼시스 경영기획실장은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물류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니다가 2010년 퍼시스에 입사한 그는 아버지와 언쟁을 벌였던 일화를 들려줬다. "언젠가 아버지와 대화를 하다가 언쟁이 됐는데 제가 '그래도 저는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도 가지 않았습니까?'했다가 크게 혼났습니다. 아버지께서 '서울대 간 게 네가 잘나서 간 줄 아느냐. 네가 서울대 갈 만큼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니까 간 것이다. 부모는 물론이고 이 사회가, 네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았다면 네가 서울대에 갔겠느냐'고 야단치셨지요."

    ―무서운 아버지이시군요.

    "기본적으로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지만, 내 주변에서 나를 도와주는 것들에 늘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죠. 저 혼자 잘나서 되는 일이라는 건 없습니다. 저는 가정교육으로 인성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인터뷰 전에 따로 만난 손태희 실장은 "아버지는 무서운 분이고 재미없는 분인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나이 먹을수록 그런 아버지를 더욱 깊게 존경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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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동창 회장 집무실에는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책상 '모션 데스크'가 있다. 그는 이 책상 앞에 30년 넘게 신은 슬리퍼를 신고 서서 컴퓨터로 일을 한다. /이태경 기자

    명문 중학교를 나왔지만
    공업디자인 분야를 선택해

    자존심 때문에 택한 전문대

    ―1976년 한샘에 입사했으니 올해 가구 인생 40주년이군요.

    "그전에 이미 가구를 시작했습니다. 경기공업고등전문학교가 당시 5년제였는데 5학년 때 서울 신촌에 있는 가구 공장에 6개월간 실습생으로 나갔습니다. 졸업 후에도 6개월쯤 더 다녔는데 그때 이미 일 잘한다고 '공장장 직무대리'를 시켜줬지요. 허허."

    ―경복중을 나와 왜 전문학교를 갔습니까.

    "저희 형님들 모두 경복고를 다니셨는데 저는 첫해 시험에서 경복고에 떨어졌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프라이드가 아주 강해서 '재수해서 후배들과 경복고에 다닐 순 없다'며 다른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때 경기공전은 꽤 인기 있는 국책학교였습니다."

    ―거기서 전공을 공예로 택한 겁니까.

    "요즘 말로 공업디자인입니다. 저희 큰 형님이 당시 금성사(LG전자의 전신)에 다녔는데 그때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막 나올 때였어요. 앞으로 이쪽 분야가 유망할 것이라고 해서 기계·건축·토목·공예 중에서 공예를 택했지요. 제가 또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아서 초등학교 때 이미 어머니가 재봉틀 고장 났다고 하면 재봉틀을 뜯어서 고치고 다시 조립하고 할 정도였어요." 경기공전은 이후 2년제 전문대로 바뀌었다가 서울산업대를 거쳐 현재 서울과학기술대가 됐다. 손 회장은 군을 제대한 뒤 전자부품 사업을 시작한 맏형 일을 돕다가 28세에 한샘에 입사했다.

    ―한샘에서 오래 일하지는 않았죠.

    "1년 6개월 있었습니다. 그전에 가구 공장에서 일을 했고 또 형님 공장 세팅을 제가 다 했기 때문에 경력 직원으로 면접을 봤습니다. 그런데 애초 생산과 주임으로 뽑으려고 하다가 면접이 끝나니까 생산과장을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1년 반 뒤에 나올 때는 이사였습니다."

    ―한샘을 나올 때 조창걸 한샘 회장과 '한샘은 주방 가구, 퍼시스는 사무 가구를 만들어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던데요.

    "그런 약속은 없었습니다. 그때 한샘에서 주방 가구 스테인리스 부품을 납품해달라고 해서 한동안 '한샘공업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스테인리스 일을 했고 또 퍼시스 창업할 때 사명을 '한샘 퍼시스'라고 지었더니 생긴 오해예요. 한샘 영업사원들이 밖에 나가서 '퍼시스는 한샘 계열사'라고 하기도 했죠." 퍼시스는 1995년 사명에서 '한샘'을 떼어냈다. <下편에 계속>

    퍼시스 기업 소개. /FursysGY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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