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등장인물들을 자세히 살펴봐야하는 이유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 편집=최원철

    입력 : 2016.04.10 13:01

    [문갑식 기자의 기인이사(奇人異士)(45):벌교 홍교와 조정래의 태백산맥(下)]
     

    <中에서 계속>

    벌교에는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곳들을 알리는 표지판이 곳곳에 서있습니다. 제일 먼저 제가 가본 홍교 맞은편은 김범우의 집이고 김범우의 집 건너편, 홍교 뒷편은 염상구 일당이 활동하던 청년단 자리로, 야트막한 언덕입니다.

    김범우의 집 정면이다. 아랫채에 누군가 살고있다고한다.

    벌교 중심부의 공공기관과 자애병원, 여관 같은 곳들이 산재해있으며 앞서 말씀드린 태백산맥 문학관 주변에도 지금은 어린이 집으로 바뀐 옛 교회터와 조정래가 살았던 집이 있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있어 대문엔 아무 표지도 없었습니다.

    소설 태백산맥 문학관 바로 앞은 소화의 집인데 소화는 어머니 때부터 무당이었지요. 그는 양조장집 아들로 좌익이 되는 정하섭을 사랑하며 그를 위해 헌신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소작인의 생존권에는 눈을 뜬 인물입니다.

    그런 소화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가 미혼모로 소화를 낳은 어머니지요. 정참봉과의 사랑으로 낳은 딸 소화도 자신과 같은 운명이 되지않을까 노심초사하지만 소화 역시 어머니처럼 미혼모가 됩니다.

    만일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를 전부 답사해보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조정래의 말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그는 전남과 지리산 일대의 거의 모든 현장을 답사한 뒤 소설을 썼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지명까지도 밝혔습니다.

    벌교읍 제석산 아래 마련된 소설 태백산맥 문학관.

    “소설 ‘태백산맥’의 1차 무대는 보성군 벌교읍입니다. 2차가 순천-화순-광주 쪽이고요. 3차가 지리산입니다. 1차 무대는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취재가 필요없었습니다. 2차 무대부터 취재를 했습니다. 화순 백암산, 장흥 유치 등이 전부 빨치산 지구입니다. 지리산은 아흔아홉 골짜기라고 합니다. 평생 여기서 심마니를 한 사람도 골짜기를 다 모른다고 할 정도로 큰산이에요. 전남 경남 전북도의 가운데 떡 버티고 앉아 있는 산입니다. 전북도당 경남도당 전남도당이 맡았던 골짜기가 모두 다릅니다.”

    소설 ‘태백산맥’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몇 명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빨치산 소년전사로 노비 태생인 조원제는 진보 경제학자인 고(故)박현채를 모델로 했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조정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위대한 전사 ‘조원제’가 바로 박현채 선생입니다. 빨치산 투쟁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다가 박 선생을 만났습니다. 이 분은 저의 광주서중학교 선배입니다.”

    박현채는 광주서중학교(지금의 광주일고) 3학년 때 남로당 서중학교 총책이었다고 합니다. 광주서중은 전남지방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들어가는 학교였는데 천재 소리를 듣던 박씨는 조숙해 어린 나이에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깊이 빠졌다고하지요.

    벌교천의 녹슨 철교에는 아직도 기차가 다닌다. 천변에 갈대가 무성하다.

    “박 선생은 종전 직전에 화순에 보급투쟁을 하러 내려왔다가 체포됐습니다. 다행히 학생이라서 징역을 살지 않고 특별사면 조치를 받았습니다. 기억력이 비상해 지리산 빨치산 시절을 샅샅이 기억했습니다. 정말 놀라워요. 대개 빨치산 투쟁을 한 사람들은 자기가 활동한 분야밖에 몰라요. 그러나 박선생은 지리산 빨치산을 총체적으로 다 알아요. 전투부보다 상위인 문화부 중대장을 맡아 그렇습니다. 문화부는 작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부 중대장이 ‘안된다’고 하면 전투 중대장은 전투를 못하게 돼 있습니다. 박선생이 문화부 중대장을 17∼18세 때에 했습니다. 똑똑하고 강인한 체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현상(李鉉相·1905~1953)은 빨치산 출신 이태가 쓴 소설 ‘남부군’에도 나오는 지리산 유격사령부 사령관입니다. 박현채 선생이 조원제로 나오는 것과 달리 그는 실명(實名)으로 등장합니다.

    지금의 충남 금산(과거엔 전북 금산)에서 부농(富農)의 아들로 태어난 이현상은 중앙고 재학중 사회주의에 경도됐으며 1928년 보성전문(지금의 고려대)에 입학한 뒤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좌익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인물입니다.

    남로당의 중심인물이 된 이현상은 1948년 남북협상 당시 월북했다가 회의가 끝난 후 남하 하지않고 북한에 머물며 강동정치학원에 다니며 유격전술을 익혔습니다. 교육을 마친 후 그는 이주하와 함께 월남해 지하활동을 시작했습니다.

    6·25막바지 지리산을 일대로 빨치산 활동을 전개하던 이현상은 1953년 9월18일 지리산 빗점골 부근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한 채 발견됐습니다. 김일성은 그를 1968년 조성된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가장 먼저 묻었으며 1호 애국열사로 지정했습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