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왜 게임만 '색안경' 끼고 보는가… 게임은 장난이 아닌 현실"

    입력 : 2016.03.28 06:03

    [전 국민 3분의 2가 게임 중…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장(上)]
     

    '원영군 암매장 사건'이 드러난 뒤, 피의자인 계모가 게임 중독자로 보도됐다. 한 모바일 게임에 빠져 여섯 달간 4000만원쯤 썼다는 것이다. 요즘 범죄 사건에는 가끔 '게임'이 연루될 때가 있다. 여명숙(51) 게임물관리위원장을 만난 것은 이 때문이다.

    ―원영군 계모가 했던 그 게임은 도박성이 있는 불법 게임인가?

    "'12세 이용가'로 등급 분류된 합법 게임이다."

    ―게임이 문제인가, 사용자가 문제인가?

    "어떤 범죄자가 게임에 빠져 있다고 해서 특정 게임을 '마녀사냥'하고 끝내는 건 옳지 않다. 이는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원영군 사건의 경우는 부모의 비(非)인간성이 문제인 것이다."

    ―게임에 빠지면 현실감각이 떨어지거나 사회 부적응이 되는 건 분명하지 않은가?

    "사랑에 빠지거나 학문에 빠져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나. 왜 게임만 색안경을 끼고 보는가. 다른 욕망은 괜찮고 게임에 대한 것은 부당한가. 불법 게임이 아닌 한, 성인들이 게임 아이템을 사기 위해 몇천만원씩 쓰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책임이다."
    여명숙 위원장은“게임 수출액은 한류(韓流) 영상물을 다 합친 것의 70배”라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게임은 중독과 사행성의 꽃이 아냐
    한류 수출 1등은 K팝 아닌 게임,
    한 해 52만개씩 출시돼

    ―게임 아이템을 사기 위해 그런 돈을 쓰는 것이 개인의 책임 있는 선택으로 보는가?

    "현실의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가상 세계에서는 자신의 우월감을 갖고 싶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가상 세계도 현실만큼 중요하다. 나름대로의 존재 증명 방식임을 인정해줘야 한다."

    ―게임이라면 중독과 사행성부터 떠올리게 되는 내가 문제인가?

    "왜 극단적 관점만 부각시키는지 모르겠다. 게임의 영역은 넓고 다양하다. 좋든 싫든 우리는 '게임'과 함께 살고 있고, 게임이 우리 삶의 한 형태가 됐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게임은 우리나라가 먹고살아갈 양식이다. IT 융합의 꽃이 게임이다. 작년 게임 시장 규모는 10조5788억원이었다. 한류(韓流) 문화 콘텐츠 수출의 55%가 게임이다. 액수로는 약 27억달러쯤 된다."

    ―드라마나 K팝이 한류 수출 1등이 아니고?

    "게임 수출액은 영상물을 다 합친 것보다 70배쯤 된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가 세계 최고의 '게임 왕국'이었다. 지금은 정부의 막대한 투자에도 중국에 밀리는 추세다."

    ―왜 게임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됐나?

    "모바일로 넘어가는 게임 추세에 적응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기술 집약형이 아닌, 거의 실시간 콘텐츠를 바꾸고 반응해야 하는 노동 집약형으로 게임 산업이 변했다. 이로 인해 중국 게임 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졌다. 기술 부문마저 이미 한국을 따라잡았다."
    여명숙 위원장에 대한 인물·인맥 검색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장. /박상훈 기자

    ―국내 게임 인구는 얼마나 되나?

    "2900만으로 추산된다. 대략 전 국민의 3분의 2가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작년에 닷새간 열린 국제게임쇼인 '부산 지스타(G-STAR)'에는 22만명이 몰렸다. 이는 매스컴에서 떠들썩하게 소개되는 열흘간의 '부산국제영화제'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인파다. 제품 판매 및 고용 창출 등 경제 유발 효과 면에서도 다섯 배나 높았다."

    ―한 해 출시되는 게임 제품의 숫자는?

    "모바일, 온라인, 비디오, 아케이드 게임을 다 합치면 한 해에 52만개나 쏟아진다."

    ―52만개? 그러면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역할은 뭔가?

    "게임판의 '물관리'를 한다. 게임물 등급 분류와 단속이 주업무다. 게임업체·사용자 등과 맨살을 대고 있는 셈이다."

    ―어떤 기준으로 몇 가지 등급을 매기나?

    "폭력, 선정, 약물, 범죄, 언어, 사행 등의 기준이 있다. 전체이용가, 12세, 15세, 19세 이상 등 등급이 있다. 유통이 불가능할 정도의 내용이면 '등급 거부 판정'을 내린다."

    ―한 달에 몇 사람이 어떻게 얼마나 게임물을 심의하나?

    "대부분 등급은 업체에서 자율 심의로 정한다. 우리가 심의를 맡는 것은 19세 이상 게임과 아케이드(오락실) 게임이다. 매달 100건쯤 심의하는 셈이다. 사실 우리 직원 70여명으로는 게임물 관리를 다 할 수가 없다. 불법 및 복제 게임 업체는 고도의 기술로 된 신형 무기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낡은 소총으로 방어한다. 지금처럼 사람 위주의 원시적인 관리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게임물 관리를 위한 연구 개발비는 0원이다." <下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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