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인간 正讀

나는 무지개 찾아 헤맸던 아이

혜성처럼 나타나 70年代 한국 가요계를 휩쓸고 돌연 은퇴를 선언했던 그녀 정미조,
유럽에서 어렵게 苦學한 생활이 녹아든 신곡 '귀로'와 함께 돌아왔다.
가수에서 화가로 또다시 가수로 복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입력 : 2016.03.26 08:16

    [37년 만에 새 앨범 발표… 가수로 돌아온 정미조(上)]
     

    1969년 5월 31일 이화여대 '메이데이 축제' 무대에 서양화과 2학년이던 스무살 정미조양이 올라왔다. 1학년 때부터 이미 기숙사에서 '노래 잘하는 학생'으로 소문이 자자했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팝송 '왓 나우 마이 러브(What Now My Love)'와 위키리의 '종이배'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초대가수 패티김이 그를 불러 세웠다. "너 노래 정말 잘하는구나. 내 쇼에 나오지 않을래? 매주 게스트로 출연시켜 줄게."

    정미조는 당대 최고의 여가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화여대 학칙에 '외부활동 금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학 중 결혼 금지, 미스코리아대회 참가 금지와 함께 이대의 오랜 전통이었다. 1972년 4월, 대학을 졸업한 정미조는 TBC TV '쇼쇼쇼'로 드디어 데뷔했다. '마이 웨이'를 불렀다. 음악계에서는 곧장 '패티김을 잇는 대형 가수'의 탄생에 환호했다. 이후 그녀는 '개여울' '휘파람을 부세요' '불꽃' 같은 노래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개여울'은 김소월 시에 곡을 붙인 것이고, '휘파람을 부세요'는 이장희, '불꽃'은 송창식 작품으로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노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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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전성기 시절 TV 10대 가수 가요제에 출연해 노래하던 정미조. /정미조 제공

    패티김의 귀를 자극한 女大生,
    70년대 音樂賞을 쓸어 담았지만
    돌연 은퇴하고 37년만에 돌아와

    이화여대 2학년때 이미 '스타'

    키 170㎝에 서구적 외모와 드레스, 시원한 성악풍 발성은 1970년대 정미조를 빅스타 자리에 올려놓은 비결이었다. 데뷔 첫해 KBS 신인무대 8주 연속 우승, MBC와 TBC 신인가수상, 연말 10대 가수상, 1978년 동경국제가요제 최우수가창상…. 그렇게 성공 가도를 달리던 정미조는 1979년 9월 말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프랑스 파리로 미술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언제 그런 가수가 있었느냐는 듯 사라졌다.

    정미조(67)가 최근 37년 만의 새 앨범 '37'을 내놓고 가수로 돌아왔다. 파리 유학 13년과 수원대 미대 교수 22년을 마친 뒤였다. 노래와 미술과 무용에 두루 재주가 많던 김포 갑부집 딸의 인생유전을 들으려고 지난 22일 그의 서초동 작업실을 찾았다. 아파트 한 채를 화실로 개조한 그의 작업실에는 3년째 그리고 있다는 100호짜리 유화 '서울야경'이 미완성 상태로 놓여 있었다. 각 방과 옷장에도 캔버스들이 그득그득했다. 그는 요즘 이곳에서 4월 10일 LG아트센터 공연을 앞두고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44년 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TV에 출연해 부른 노래 '마미 웨이' 한 곡으로 '패티김을 이을 대형가수' 라는 찬사를 들었던 정미조는 7년 반의 가수 생활을 접고 돌연 미술 유학을 떠났다. 유학 13년과 교수 생활 22년을 보낸 그는 37년 만에 새 음반을 내고 생애 첫 콘서트를 준비 중이다. 그의 서울 서초동 작업실에는 3년째 그리고 있는 유화 '서울야경'과 예전에 냈던 음반들이 함께 보관돼 있다. /이진한 기자

    ―이곳에 주로 머뭅니까.

    "집이 여기서 가까워요. 한창 그릴 때는 하루 종일 작업실에 있기도 하는데, 최근엔 음반 녹음하느라 자주 못 왔어요. 저 그림(서울야경)은 재작년에 시작한 건데 아직도 한참 더 그려야 해요."

    ―대개 30주년, 40주년에 맞춰서 음반을 내잖아요.

    "저는 좀 다르죠. 기계로 치면 창고 속에 넣어뒀다가 오랜만에 꺼내서 먼지를 털고 다시 돌려본다고 할까요."

    7080 가수로 가요계의 정점에서 그림으로 인생방향을 바꾸어 30년간 화가로 활동하던 정미조씨가 37년만에 다시 가수로 대중앞에 모습을 보인 가운데 콘서트를 앞두고 21일 강남의 작업실에서 가수로서의 계획을 밝혔다. /이진한 기자

    ―언제부터 음반을 준비했습니까.

    "3년 전에 가수 최백호씨와 우연히 점심을 먹게 됐어요. 그때 최백호씨가 대뜸 '목소리가 좋은데 왜 노래를 안 하느냐'고 해요. 그때부터 준비를 시작한 거죠."

    최백호는 정미조에게 음반 제작자 이주엽을 소개했고, 재즈 음반을 주로 내온 이주엽은 색소포니스트 손성제를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내세워 음반을 만들었다. 이주엽은 "한국에서 멋진 어른의 음악을 만들고 싶었던 게 나의 오랜 꿈이었다"며 "그렇게 품격 있는 음악을 주류 시장에 복권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백호씨와는 교류한 지 오래됐습니까.

    "제가 1979년 마지막 고별쇼를 할 때 최백호씨를 게스트로 모시면서 처음 만났어요. 그때 그 분 노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가 한창 인기 있었거든요. 그런데 유학 마치고 돌아와 보니까 최백호씨도 그림을 그리는 분이었더라고요. 그때부터 연락을 하고 지냈지요. 최백호씨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가 노래도 불렀고요."

    ―파리 유학 후 돌아와서도 방송은 가끔 나갔습니까.

    "가끔이요. 유학 마치고 돌아왔는데 교통방송에서 나와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 음악은 모두 LP로밖에 없어서 제가 그걸 CD로 만들어서 가져갔었어요. 그때 내 노래를 모아 정식으로 CD를 내야겠다 생각했고, 2000년쯤 그런 음반이 하나 나왔죠. 그리고 2006년인가 TV '콘서트 7080'에서 나와 달라고 했는데 그때 '나 혼자 한 시간을 하게 해주면 나가겠다' 했더니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그때 게스트는 이광조, 이정선씨였어요. 두 분 다 미대 나온 가수였죠."

    가수 정미조에 대한 인물·인맥 검색
    가수 정미조가 녹음실에서 새앨범곡들을 부르는 모습. /정미조 제공

    1~2곡이 新曲인 대부분의 앨범,
    1~2곡이 舊曲인 정미조의 앨범.

    새 음반에 신곡 11곡 담아

    다음 달 열릴 정미조 콘서트는 사실상 그의 첫 공연이다. 전성기 때 그녀는 방송 활동밖에 하지 않았고 2010년 대학로 소극장에서 그림 전시와 작은 공연을 합친 기획공연을 한 적이 있지만, 음악으로만 채우는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음반 내고 공연하자는 제안이 없었나요.

    "없었어요. 제가 재작년까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학생들 가르치고 주말에는 내 그림 그리는 생활을 줄곧 했기 때문에 그럴 여유도 없었지요." 정미조는 작년 2월 만 22년간의 수원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했다.

    ―오랜만에 음반을 내면 대개 히트곡 재녹음에 신곡 1~2곡을 넣잖아요.

    "제 새 음반에는 옛날 곡이 '개여울' '휘파람을 부세요' 두 곡뿐이에요. 나머지 11곡이 신곡이죠. 그게 정말 즐거웠어요. 사실은 스튜디오 들어갈 때 힘들긴 했어요. 옛날에도 녹음 날짜만 되면 아프거나 감기몸살에 걸렸거든요. 녹음을 망칠까 봐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아요. 이번에도 녹음 한 달 반 전부터 감기에 걸려서 잘 안 되면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히 잘됐어요." <下편에 계속>

    정미조 새로운 앨범의 티저 영상. /joeyjnh(JNH Music)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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