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학도인을 만나 비서(秘書)를 넘겨 받은 남사고

    입력 : 2016.03.21 10:06

    [문갑식 기자의 기인이사(奇人異士)(44):남사고와 격암유록과 십승지(中)]
     

    <上편에서 계속>

    격암 남사고 선생의 고향은 경북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입니다. 증조부 남호 선생은 울릉도를 토벌할 때 공을 세운 무장이었으나 할아버지 남구주(南九疇)는 정4품 의정부 사인(舍人), 아버지 남희백(南希伯)은 이조좌랑을 지낸 문인 가정이었습니다. 남사고 선생의 호 격암에서의 ‘격’은 대학(大學)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격자를 따온 것입니다. 어렸을 적 그의 집안이 가난해 서당이나 서원을 다니지 못하고 선생님없이 오로지 독학으로 책을 읽고 오묘한 학문의 경지를 터득했다고 합니다.

    남사고 선생을 기려 만든 자동서원의 현판이다.

    장성하여 주천대와 남수산 기슭에서 초가를 짓고 살았지만 남세영-주경안-주세창-황응청-황여일-기자헌-양사언 등 명사와 교분을 쌓았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시험에 여러 번 응시하고도 실패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자 천거를 통한 등용을 꾀했습니다. 대표적인게 강원도관찰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거기 ‘연래치소 문전지(年來恥掃 門前地-요즘은 문 앞을 쓸기가 부끄럽기도 하거니와) 항리하무 걸화인(巷里何無 乞火人-내 심정 헤아려 주는 사람도 어찌 이다지도 없습니까)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걸화인이라는 말은 중국 고사에 나오는 ‘걸화녀(乞火女)’를 빗댄 것입니다. 옛날에 한 시어머니가 부엌에 걸어둔 고기가 없어지자 며느리가 훔쳐 먹었다고 의심해 쫒아냈지요. 며느리는 길을 가다 아는 이에게 하소연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젯밤 우리집 개가 고기를 물고오자 서로 먹으려고 싸워 두 마리 모두 죽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나서야 시어머니는 며느리에 대한 오해를 풀고 며느리를 도로 집안으로 불러들였다는 것입니다.

    남사고 선생의 생가터에 있는 돌비석이다.

    하소연이 통했는지 선생은 55세 때인 명종대에 9품 사직참봉을 시작으로 선조 때 관상감의 천문교수(6품)에 임명됐습니다. 그는 평소 역학을 연구했는지 천문교수로 일할 때 완역도(玩易圖)같은 천체의 도식을 직접 그려 벽에 붙여놓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울진 주변에서는 남사고 선생이 득도한 과정에 대해 여러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중 몇가지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날 남사고 선생이 울진의 명승인 불영계곡의 불영사(佛影寺)로 가는 중에 스님 한분과 동행하게 됐습니다. 스님은 돌연 “장기를 둘 줄 알거든 나와 내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두사람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참 장기를 두는데 갑자기 기합소리와 함께 스님이 사라졌습니다. 한참 있자니 없어졌던 스님이 땅속에서 서서히 고개를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남사고가 태연히 앉아있자 오히려 스님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선생이 “무엇이 무섭느냐”고 되묻자 스님은 “내가 많은 사람을 시험해 보았지만 모두 놀라 기절하였는데 너만 이렇게 대담하였다”고 말했다고 하지요.

    남사고 선생의 자동서원 안에서 밖을 바라본 장면이다.
    그의 수제자인 남세영(南世英)의 기록에 의하면 “나(남세영)의 어머님이 선생과 인척인 관계로 가끔 나의 편에 안부를 전하면 반드시 절하고 받으며 혹시 무슨 일을 나의 편으로 묻기라도 하면 꼭 엎드려서 아뢰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만큼 존경했다는거지요. 또다른 설화에는 남사고가 젊었을 때 풍악산(楓岳山·금강산)에 놀러갔다가 신승(神僧)을 만나 석실(石室)로 인도되어 세권의 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승이 바로 정희량(鄭希良)이며 세권의 책이 비서(秘書)라고 여겼습니다. 정희량(1469~?)은 연산군에게 경연에 충실히 임하라고 간했다가 미움을 받은 인물로 갑자사화가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음양학에 밝은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는 어머니의 묘를 지키다 홀연히 사라져 당대 사람들에겐 미스터리한 인물로 기억되고있었습니다.
    남사고 선생의 자동서원 바로 옆에 있는 사당이다.

    심지어 중종 시절 송도(松都) 출신의 도인(道人) 전우치(田禹治)와 얽힌 전설도 전해집니다. 대사성을 지내던 낙봉 신광한이 전우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기묘사화 당시 자신이 조광조파로 몰려 삼척부사로 좌천됐을 때를 회상하지요. 신광한이 울진 불영사를 관람하고 잠시 풍광좋은 주천대(酒泉臺)에서 땀을 식히고 있을 때 지나가던 준수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가 바로 남사고였는데 남사고가 앞날을 걱정하는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더라는거지요. ‘이구후사장(二九後師長)!’ 이것은 18년 후 신광한이 대사성으로 중용될 것을 예언했다는 겁니다. 이야기를 듣던 전우치는 빙그레 웃으며 남사고가 소년이었을 때 만난 적이 있다며 그가 천자의 주성(主星)인 자미성의 기운을 받은 기재(奇才)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화담(花潭·서경덕·1489~1546)이나 북창선생(정렴·1509~1546)과 비교해달라고하자 전우치는 “화담은 현인이며 북창선생은 이인(異人)이요 남사고는 도인이 될 그릇”이라 한 뒤 “속명만 버리면 신선이 될 재목”이라고 합니다.

    아홉개의 구슬이 있다는 구주령 정상에서 본 태백산맥이다.

    그런가하면 남사고가 열다섯살 때 불영계곡에서 높은 바위절벽 위에 앉아있는 운학도인(雲鶴道人)을 만났는데 운학도인이 그를 보고 “삼원명경(三元明鏡)의 점괘대로 과연 동방의 기재가 여기 있었구나”라고 감탄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남사고는 운학도인에게서 낡은 두권의 책을 받았는데 그것이 바로 복서(卜筮·점괘)와 상법(相法·관상)에 관한 책과 천문과 역학을 기록한 비서였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주면서 운학도인은 다음과 같은 무서운 단서를 달았다고 합니다.

    “이 비서를 받기에 앞서 반드시 마음에 새겨둬야할 할 것이 있다. 책에 적혀있는 내용들은 모두 천기(天氣)에 관계된 내용들이어서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아무에게나 발설하게 되면 집안의 대가 끊기는 화를 입는데 그래도 비서를 받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남사고는 주저하다 비서를 받아 수년에 걸쳐 공부했습니다. 상법을 익혀 관상으로 사람들의 앞날을 점치고 복서를 터득해 길흉화복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풍수지리에 도통해 간룡(看龍) 장풍(藏風) 득수(得水) 정혈(定血)의 묘를 깨치지요. <下편에 계속>

    Photo by 이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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