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근-괴질을 피할 수 있는 10곳 십승지(十勝地)

    입력 : 2016.03.21 10:05

    [문갑식 기자의 기인이사(奇人異士)(44):남사고와 격암유록과 십승지(上)]
     

    인공지능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인간 바둑 최고수와 자웅을 겨루는 시대지만 세상은 여전히 불가사의합니다. 최첨단 시대에도 사람들을 사로잡는 고서(古書)가 많은데 한국인들에게는 그게 정감록(鄭鑑錄)이 아닌가합니다. 이 예언서는 정체불명입니다. 저자도, 집필연도도 알 수 없으며 정본(正本)이 뭔지, 어느게 이본(異本)인지도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부정확합니다. 흔히 정감록의 저자로는 도선(道詵)국사 혹은 중국 촉(蜀)나라의 도인 정감(鄭鑑), 조선초 정도전(鄭道傳)이 꼽히지만 확증이 없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촉의 도인 정감이 완산백의 둘째아들 이심(李沁), 셋째아들 이연(李淵)과 함께 조선 산하를 둘러본 뒤 조선의 국운과 미래를 예언하고 문답을 나눈 것을 기록한 것이 정감록이라고 하지요. 이때의 조선은 고조선을 말하는 듯 합니다.

    정감록은 감결, 삼한산림비기, 화악노정기, 구궁변수법, 동국역대본궁음양결, 무학비결, 도선비결, 남사고비결, 징비기, 토정가장비결, 경주이선생가장결, 삼도봉시, 옥룡자기 등이 망라된 것입니다. 이 이름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도선비결이나 옥룡자비결은 도선국사를 말함이요, 둘째 무학비결은 무학대사를 지칭하는 것이요, 셋째 삼도봉은 정도전의 호 삼봉에서 온 것이 아닌가 여겨지며, 넷째 남사고비결은 격암 남사고를 말하고, 다섯째 토정은 이지함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격암 남사고 선생의 생가터다. 오른쪽에 보이는 한옥이 생가다.

    이로 미뤄보면 우리가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로서 정감록에 수록된 비결을 쓴 이는 도선, 무학, 정도전, 남사고, 이지함으로, 이들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기인이사(奇人異士)라는 거지요. 또 한가지, 이 책은 쓰여진 시기에 대해서도 대체로 추정이 가능합니다.

    전문가들은 정감록이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완성됐다고 봅니다. 정감록에 등장하는 지명(地名)이 조선 중기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성혁명을 예언한 정감록은 세조-성종 때 분서목(焚書目), 즉 불태운 책 명단에 나와야하는데 정감록은 등재돼있지않습니다.

    남사고 선생의 생가터를 발굴해 새로 지어놓은 한옥이다.

    그렇다면 정감록의 예언은 뭘까요. 잘 아시다시피 앞으로 들어설 왕조에 대한 것이지요. 정감록에서 정감과 완산백의 아들들이 나눈 대화는 “곤륜산으로부터 맥이 백두산에 이르고 원기가 평양에 이르렀지만 1000년 운이 지나갔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것은 평양을 기반으로 한 고조선-고구려를 말하는 듯 합니다. 또 “운이 송악(松岳·개성)에 옮겨가 500년 도읍이 되나 요승과 궁녀가 장난하여 땅의 기운이 쇠하고 하늘의 운수가 막혀 운이 한양으로 옮겨갈 것”이라 예언하는데 관심을 끄는 것은 그 이후입니다.

    “백두산의 맥이 금강산~태백산~소백산에 이르러 계룡산으로 들어갔으니 정씨의 800년 도읍지요, 뒤에 가야산에 들어갔으니 조씨의 1000년 도읍지다. 전주는 범씨의 600년 도읍지이고, 다시 송악은 왕씨가 부흥할 땅이나 그 뒤는 상고할 수 없다”는 거지요.
    이래서인지 조선 선조 때 정여립(鄭汝立)의 난 이후 ‘정씨’만 등장하면 사람들은 정감록을 떠올리지요. 한때 정주영(鄭周永) 고 현대그룹 창업주나 그의 아들인 정몽준(鄭夢準) 전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여지없이 나타났습니다.

    풍기 금계리 옆은 무릉리다. 무릉도원과 한자가 똑같다.

    그런데 정감록이 재미있는 것은 왕조 예언뿐 아니라 사람들이 삼재(三災), 즉 전쟁이나 기근이나 괴질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十勝地)를 거론했다는 것입니다. 십승지는 몇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같이 북쪽은 없고 남쪽에 위치해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사람의 씨를 구하려면 양백지간(兩白之間)이어야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를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정감록에 수록된 ‘도선비기’에 다음과 같은 무시무시한 말도 등장합니다. “정축년에 평안도와 함경도는 오랑캐의 땅이 되고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일 것이다.” 그러면서 “곡식 종자를 구하려면 삼풍지간(三豊之間)이어야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풍기-무풍-연풍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정감록엔 두리뭉실한 표현이 많지요.

    그런데 정감록에 등장한 여러 십승지가운데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이가 있습니다. 격암(格巖) 남사고(南師古·1509~1571) 선생입니다. 특이하게도 남사고 선생은 인류 최대의 예언가라는 프랑스의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와 생몰연대가 매우 비슷합니다.

    남사고 선생이 태어난 울진은 지금도 오지다.구주령 위에서 보면 태백산맥의 실루엣이 겹겹이 보인다.

    그렇다면 남사고 선생이 말한 십승지는 어디일까요.

    첫째 경북 영주 풍기의 소백산 아래 금계촌이다.
    둘째 경북 봉화 화산 소령의 소라국 옛터로 태백산 아래 춘양면에 있다.
    셋째 경북 예천 금당동 북쪽 금당실마을이다.
    넷째 경남 합천 가야산 아래 만수동 주위 이백리다.
    다섯째 충북 보은 속리산 중항 근처다.
    여섯째 충남 공주시 유구-마곡 두 물길사이 백리다.
    일곱째 전남 남원 운봉 두류산(지리산) 아래 동점촌 백리안이다.
    여덟째 전북 무주 무풍 북쪽 덕유산 근처다.
    아홉째 전북 부안 호암아래 변산의 동쪽이다.
    열째 강원도 영월 정동쪽 상류다.

    이것을 보면 경북이 세곳, 전북이 두곳, 경남-충북-충남-전남-강원도가 각각 한곳이며 각각 태백산-소백산-속리산-지리산-변산-태화산이라는 명산을 끼고 있습니다. 또한 놀랍게도 남사고 선생이 꼽은 십승지는 지금도 여전히 개발되지 않은 채 남아있습니다. <中편에 계속>

    Photo by 이서현

     
    [문갑식 기자의 기인이사(奇人異士)] 전체 기사 보기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