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곰 세 마리’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다. 북한에 빵 공장을 짓고 결식아동을 돕는 일을 하다가 그가 나누어주는 ‘곰보빵’과 닮았다고,
‘곰 아저씨’라 불리게 된 아빠 곰 김정호 대표, 엄마이자 경영인의 마음으로 발달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일터를 설계하는 엄마 곰 이진희 대표,
그리고 매일매일 같은 업무를 우직하게 감당하는 아기 곰들.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은 ‘베어베터(Bear. Better.)’, 발달장애인의 일터다.

    입력 : 2016.02.24 08:31

    [발달장애인의 일터 베어베터 이진희 대표]
     

    발달장애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모아 이르는 말이다. 지적장애인은 발달이 더뎌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의 지능을 유지한다. 자폐성장애는 한 분야에 몰두해 다른 분야와 교류하는 데 서툴다. 사회성을 갖기 어렵다는 이유로 발달장애인은 장애인 중에서도 고용률이 가장 낮다. ‘베어베터’는 이들을 위한 고용을 설계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 ‘할 수 있는 형태로’ 설계한다. 과정을 단순화해 직무를 순환 배치 하는 식이다. 현재 베어베터에서 다루는 품목은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명함, 커피, 쿠키, 화환 등이다.

    “발달장애인의 일터는 일반 노동자들의 일터와 다른 모습이어야 해요. 보통의 회사라면 일이 있고, 여기에 맞춰 사람을 뽑죠. 저희는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의 특성에 맞춰 일을 설계합니다. 회사의 목적이 발달장애인의 고용이니까요. 물론 혼자 출퇴근을 할 수 있고, 업무 수행이 가능하고,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인재들을 채용해요.”

    김정호 대표와 이진희 대표는 NHN의 인사팀에서 함께 근무했다. 네이버 창업 멤버이기도 한 김정호 대표는 이진희 대표의 상사였다. 2010년 이진희 대표는 임원직을 그만두고 2년간 자폐를 가진 둘째 아이를 돌보며 ‘한국자폐인사랑협회’의 활동을 이어갔다. 여기서 발달장애인의 교육과 훈련만큼이나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베어베터' 원장. /김선아

    선의나 동정심이 아닌 품질로 승부

    “김정호 대표는 ‘착한 척하다가 착해졌다’는 말을 많이 하세요. 본인은 장애인의 가족이 아니지만, 주변에 저처럼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이 있었대요. 관심을 갖고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더라고요. ‘장학 사업’을 생각하기에, 그보다 필요한 건 ‘일자리’라고 말씀드렸죠.”

    이진희 대표 역시 협회 활동을 하면서 장애인 고용 실상에 눈뜨게 됐다. 2012년 일단 사업을 시작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연계고용 제도’를 알게 됐다. 장애인고용촉진법에 따르면 50인 이상이 근무하는 기업은 장애인 직원을 2.7% 채용해야 한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매년 고용부담금을 낸다. 일종의 벌금이다. 이때,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기 어려운 기업이 장애인표준사업장이나 자립작업장에 생산품 판매를 전담하거나 도급을 준 경우, 장애인을 고용한 것으로 간주해 부담금을 감면해준다. 베어베터에는 이렇게 연계고용 협약을 맺은 기업이 150곳이 넘는다.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의 IT 기업부터 커피빈, 아티제 등의 카페, 에르메스나 루이비통 같은 명품 업체도 있다. 일하고 싶은 장애인과 장애인을 고용해야 하는 기업의 가려움을 베어베터가 시원하게 긁어준 셈이다.

    “연계고용 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어야 하니 처음에는 명함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가장 좋은 기계를 사서 직원들이 다치지 않고 숙련될 수 있도록 교육했죠. 업체가 많아지면서 커피, 제과・제빵, 화환 등으로 사업 영역이 확대되었습니다.”

    베어베터에서 만든 베터쿠키와 머핀. /김선아

    기업간 거래에
    동정심이 아닌
    품질로 승부해야

    먼저 클라이언트의 필요에 맞춰 사업을 다각화하고, 직원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업무를 설계했다. 기업이 베어베터와 거래하는 이유가 선의나 동정심이 아니라 ‘품질’ 때문이어야 한다는 목표로 품질 향상에 박차를 가했다.

    “저희가 매출을 늘리는 이유는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예요. 이익이 나는 만큼 고용을 늘릴 수 있으니까요. 2014년에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그 이후로는 흑자를 기록했어요. 그만큼 고용도 늘어났고요. 연말에는 직원들에게 성과급도 줄 수 있었습니다. 직원들에게 그 돈으로 뭘 했느냐고 물으니 부모님 속옷을 사드린 이도 있고 용돈을 드린 사람도 있더라고요.”

    다섯 명으로 시작한 베어베터에는 현재 140여 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그중 80%가 장애인이다. 2014년에는 25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면서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2014년, 2015년 연속 재계약률 100%를 기록하기도 했다. 직원들의 부모는 아침에 이들이 회사로 출근하는 모습만 보아도 마음이 뭉클하다고 한다.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얻는 것, 자신이 번 돈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공통된 소원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웠기 때문에 부모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는 면이 있겠죠. 그럼에도 더 중요한 건 어떻게 일을 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예요. 계약을 맺은 기업들은 엄연히 사업 파트너인 만큼 당당하게 품질로 경쟁해야 해요. 장애인 한 사람이 근무할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정도예요. 생산성이 떨어지니 가격으로는 시장에서 경쟁하기가 어려워요. 그렇다면 품질은 좋아야죠. 이 부분이 장애 사원들이 해내야 하는 일이고요.”

    매트 깔고 자는 名品 가방 회장님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발달장애인 고용정책 되레 후퇴하나
    스티커 부착 작업 중인 베어베터 직원들. /김선아

    장기적 목표는
    장애 직원과 일하며
    정년 퇴직하는 조직

    최저임금을 지급하지만
    장애인 평균보다 높아

    80%가 장애 사원인 회사가 흑자를 낸 비결

    베어베터에서는 수시로 채용이 이루어진다. 일반 기업에서 수습 과정을 거치듯 장애 사원들도 처음에는 적응 기간을 가진다. 이진희 대표는 이 시간을 3주 정도로 잡는다. 업무를 익히고 익숙해지는 시간 동안 업무뿐 아니라 사회와 조직에 적응하는 법을 배운다.

    “장기적으로는 직원들이 일하기 원하고 일할 능력이 있을 때까지 일하게 해주고 싶어요. 회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직원들이 정년퇴직을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거니까요.”

    협력 업체 입장에서도 베어베터의 존재 가치는 크다. 장애 직원과 함께 어울리고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법을 배우는 건 일반인에게도 필요한 훈련이다. 실제로 베어베터에서는 직원들이 직접 물품을 배송한다. 협력 업체에 찾아가 문을 두드리면서 큰 소리로 “배달 왔습니다”라고 외치고 밝게 웃으며 다가가는 이들 덕분에 ‘삭막한 사무실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하는 업체도 있다. 150여 개의 업체가 베어베터와 거래하면서 발달장애인과 이들의 업무 능력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또 하나의 수확이다.

    이진희 대표와 베어베터에 근무 중인 직원들. /김선아

    “드라마나 영화 속의 자폐를 가진 인물들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경우가 많아요. 그런 부분이 부각되어 자폐를 가진 이들에게 기대를 하거나 실망을 하기도 하고요.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드물어요. 저희 직원 중에서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한 명이 될까 말까예요. 또 그런 능력이 있어도 그 능력으로 사회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도 않아요.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해요.”

    베어베터의 직원들은 약속을 잘 지킨다. 단순한 업무를 불평 없이 수행한다. 한쪽에서는 봉지 안에 빵을 넣고, 다음 사람은 그 위에 스티커를 붙인다. 다음 사람은 도장을 찍고 포장지에 찍힌 유통기한 표시가 다 마르기를 가만히 기다린다. 고소한 빵 냄새가 풍기는 작업장은 청결하고, 모두가 맡은 임무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기분 좋은 긴장감이 흐른다.

    “저희 직원들은 최저임금을 받아요. 그럼에도 일반 장애인의 평균 월급보다 높아요. 그동안 이들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거죠.”

    지금껏 발달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노동은 전단지 접기나 구멍 뚫기 등 가내수공업에 국한돼 있었다. 한 달 수입은 10만 원 남짓. 이마저도 쉽지 않아 자폐를 가진 성인의 경우 취업률이 0.7%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베어베터의 목표는 오늘도 고용, 내일도 고용이다. 아직 문밖으로 나오지 못한 99%의 이들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베어베터는 Bear Makes the World Better의 약자다).

    베어베터 소개 영상. /베어베터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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