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인간正讀

웰다잉시대,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 달라져야

    입력 : 2016.02.13 08:46 | 수정 : 2016.02.13 11:42

    [한국 호스피스 개척자 '샘물 호스피스병원' 원주희 목사(下)]
     

    <上편에서 계속>

    "사 자 직업만 네 개"

    ― 호스피스와 요양원은 어떻게 다릅니까.

    "우리 인생 무대가 웰빙(well-being) 무대, 웰에이징(well-aging) 무대, 웰다잉(well-dying) 무대로 나뉩니다. 요양병원은 웰에이징이고 호스피스는 웰다잉이에요. 그런데 일부 요양병원은 사명감이 아니라 장삿속으로 해요. 조폭들이 환자 데려다 주고 돈 받고 하는 일이 생기잖아요. 미국 요양병원들이 호스피스까지 하면서 그렇게 됐어요. 환자 쟁탈전이 벌어진 거죠. 호스피스는 길어야 6개월 머무르다 갑니다. 요양병원은 3년, 5년까지 있거든요. 호스피스는 단기적으로 죽음을 돌봐주는 곳입니다."

    중환자실에 있다가 샘물호스피스로 온 말기암 환자들은 더 이상 물리·화학적 치료를 하지 않고 통증 조절만 만다. 눈데 띄게 좋아져서 임종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안아주는 것이 원주희 목사의 일이다. /용인=이태경 기자

    호스피스 간다는 말은
    죽으러 간다는 말이 아닌
    통증조절 하러간다는 말

    ― 그래서 호스피스에 간다면 '죽으러 간다'고 하는 건가요.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무의미한 치료행위를 하지 않는 거죠. 통증 조절만 해 줍니다. 통증 조절이 되면 아무것도 못 먹던 사람이 죽을 먹어요. 하루를 살다 가도 제대로 살다 가야지 죽을 날만 기다리는 건 안 됩니다."

    ― 혹시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소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경우는 없어요. 말기 진단을 받으면 병원 치료가 더 빨리 문제를 일으킵니다. 저항력을 떨어뜨리거든요. 저희 큰누님이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셨어요. 제가 가서 보니까 임종 단계예요. 그런데도 투석하고 혈액을 돌려요. 그래서 제가 의사에게 '이거 할 필요 없지 않으냐' 했더니 중환자실에서는 안 할 수 없대요. 안 하면 위에서 지적한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심폐소생술을 해요. 40분씩 세 번을 합니다. 그래도 안 깨어나면 사망선고를 내려요. 이미 죽은 사람한테 투석하고 심폐소생술 하는 거예요."

    ― 왜 그렇게 하는 겁니까.

    "우리나라 의학이 치료 중심 의학이기 때문이에요. 치료가 안 되는 환자에 대한 케어(care) 중심 의학을 배우지 못한 거죠. 'Medical care of dying process'라고, 죽어가는 과정에서의 의학적 케어는 달라요. 죽어가는 사람에게 피가 부족하면 우리 의학으로는 무조건 피를 더 넣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은 부종이 생기고 숨이 차고 더 고통스러워요. 남의 피가 들어가니까요. 그럴 때 의사가 '이 환자는 더 이상 수혈하면 안 됩니다'라고 해줘야 하거든요."

    ― 그렇게 하면 환자 가족들이 반발하지 않을까요.

    "그렇겠죠. 그래도 의사가 설득해야 합니다. 선택은 본인들이 하지만 정보는 줘야 해요. '수술 안 하면 죽습니다' 하지 말고 수술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장단점을 각각 설명해야 하는 거죠."

    ― 임종 직전 환자를 상대로 병원이 장사를 한다는 겁니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가족들이 반발하니까 설득할 자신이 없는 거죠. 예전에 국립암센터에 국회의원 부인이 말기암으로 입원했는데 의사가 '몇 개월 만에 떠나실 겁니다' 했더니 국회의원이 의사 멱살을 잡고 때린 일도 있었어요."

    ― 의사들만의 잘못은 아니군요.

    "그렇죠.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과 환경이 그래요. 죽으면 끝이다, 절대로 죽으면 안 된다 그런 의식 말이죠. 죽으면 끝이고 개가 되거나 소가 될 수도 있다고 가르치잖아요. 그런 것보다는 수학자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천국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확률적으로 좋죠. 가봐서 천국이 없으면 손해볼 것 없고 있으면 좋고. 그렇지 않나요? 우리 사회가 이렇게 험하고 악한 것이, 죽으면 끝이라는 관념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원주희 샘물호스피스 선교회장이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고 있다. /용인=이태경 기자

    죽음에 대해 아는 것

    누구나 죽고
    혼자 죽고
    죽는 순서 없어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것

    언제 죽을까
    어디서 죽을까
    어떻게 죽을까

    기독교적 죽음을 한국 교회가 막고 있다

    원 목사는 저서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에서 "그런 기독교적 죽음관을 갖는 것을 한국 교회가 방해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교회들이 웰빙 목회만 해요. 기도만 하면 산다고 하죠. 기복주의, 현세주의적으로 기독교가 변질됐어요. 여기 와서도 꼭 자기 교회 가서 예배드리겠다는 분이 있어요. 어떤 교회, 어떤 목사, 어떤 의식을 해야만 살 수 있다고 믿는 건 미신입니다. 기독교가 그렇게 미신화, 무당화돼 있다는 겁니다."

    ― 주류 기독교에서 목사님을 싫어하겠는데요.

    "상관없어요. 무당 종교처럼 그렇게 사람 끌어모으고 하는 게 잘못이라는데 싫어하겠죠. 나야 여기 산골짜기에 있으니까 상관없어요."

    원 목사는 "우리는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게 세 가지, 아는 게 세 가지"라고 설파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 모르는 것 세 가지이다. 아는 것 세 가지는 "누구나 죽고, 혼자 죽고, 죽는 순서가 없다"는 것이다.

    "빈손으로 죽는다는 것도 우리가 죽음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의(壽衣)에 주머니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수의에다 복주머니를 달고 돈을 넣죠. 그러면 화장장에서 인부들이 슬쩍 빼요. 장의차 몰고 다닐 때 그런 사람들과 많이 싸웠어요. 그런데 유족들은 안 싸워요. 돌아가신 분이 귀신이 돼서 화를 미칠까봐 그런대요. 우리가 그만큼 죽음의 노예입니다. 제 책도 '죽음, 알면 이긴다'라는 제목으로 내놨더니 하나도 안 팔려요.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했더니 팔리더라고요. 하하하."

    ― 아툴 가완디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어제도 여기서 한 분이 돌아가셨어요. 제가 보니까 딱 임종 앞둔 호흡이에요. 그래서 가족에게 '이제 곧 돌아가십니다. 준비하세요' 했더니 놀라서 '언제요?' 합니다. '곧 떠납니다. 하고 싶은 말씀 다 하세요. 다 알아듣습니다' 했죠. 그리고 두 시간 뒤에 떠나셨어요. 그 아드님이 와서 '이렇게 마지막까지 준비를 잘하게 해 줘서 정말 고맙다'며 50만원을 기부했어요. 임종하실 분을 중환자실에 가둬놓는 게 과연 좋은 일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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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희 선교회장이 지갑속에 넣고 다니는 유서 요약본. /용인=이태경 기자

    어릴때부터
    죽음 인식 필요해
    '천국에서 만나'

    유언은
    남겨진 자에게
    큰 힘이 돼

    어렸을 때부터 죽음 가르쳐야

    ― 죽음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바꿔야 합니까.

    "어렸을 때부터 해야 돼요. 우리 손자 손녀들 이제 열 살 안팎인데 저는 벌써 가르쳐요. '아빠 따라 미국 가면 할아버지 못 만날 수 있어. 그럼 천국에서 만나' 이런 식으로 가르치죠. 저는 호스피스 시작하면서 유언장을 써서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놓고 이렇게 지갑에 요약본을 갖고 다녀요.(그는 지갑에서 비닐봉투에 밀봉된 유언장 요약본을 꺼냈다.) 비닐봉투에 담은 이유는 물에 빠져 죽을까봐. 하하하. 우리 딸들도 중학교 때부터 유언장 썼어요. '제가 떠나가면 장난감은 누구 주고' 식으로 썼는데 지금도 잘 살죠. 죽음은 그렇게 정면돌파해야 돼요."

    원 목사의 큰딸(38)은 15년 전쯤 큰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원 목사는 "자동차가 크게 부서졌고 사람은 실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 딸이 먼저 가는구나' 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병원에 갔다. 그런데 병원에서 딸이 "아빠!" 하고 반겼다. 원 목사는 '내가 딸의 죽음을 너무 많이 준비했구나' 생각했다며 웃었다고 책에 썼다.

    "유언을 남기고 가면 남은 분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어떤 분이 여기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고맙다, 애썼다, 사랑한다' 딱 세 마디만 남기고 갔는데도 그 부인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런 말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외국 묘지에 가면 라틴어로 '호디에 미히, 크라스 티비(Hodie Mihi, Cras Tibi)'라고 써 있습니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뜻이죠. 누구나 부정하고 싶겠지만 내 차례가 오고야 마는 겁니다. 그래서 내일의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겁니다."

    그와 헤어지며 유언장을 쓰기로 결심했다. 오랫동안 모아온 책과 음반들을 누구에게 물려줄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베풀지 않았는데 베푼 것 같은 포만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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