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에 떠난 동주에게 바치는 '靑春의 순간'

    입력 : 2016.02.05 06:04 | 수정 : 2016.02.05 06:05

    [영화 '동주' 이준익 감독]
     

    한 청년은 시를 사랑했고, 다른 청년은 세상을 사랑했다. 시대와 불화를 겪었던 청년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을 사랑했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18일 개봉)는 스물여덟, 청년인 채 삶을 마감한 시인 윤동주(강하늘)와 그의 사촌 송몽규(박정민) 이야기다. 소박하지만 가볍지 않고, 조용하지만 울림이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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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익 감독은“저예산 영화를 또 찍을 수도 있다, 확신이 생기는 작품만 만난다면. 확신이 의심으로 변하는 영화는 망한다. 원래 인생은 확신과 의심 사이의 줄타기 같은 거니까”라고 했다. /이진한 기자

    윤동주와 사촌 송몽규 이야기
    72년前 사진 느낌 살린 흑백 영화
    "허구 인물과 로맨스 담았지만
    멋대로 과대포장하진 않아
    그것이 윤동주에 대한 예의"

    지난 3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대뜸 "윤동주의 시 좋아해요?"라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한국인은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지만, 그의 삶과 죽음은 잘 모른다"고 했다. 이준익 감독은 4년 전 영화제 참석차 교토에 갔다. 그는 도시샤(同志社)대학에 들러 윤동주 시비를 보고 정지용 시에 등장하는 압천(鴨川)을 걸었다. 일본에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준익 감독은 이때 윤동주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러시안 소설' '프랑스 소설처럼'을 연출한 신연식 감독이 각본과 제작을 맡았다. 영화는 흑백으로 만들었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가 250년 전 이야기, 왕의 남자는 500년 전 이야기다. 그땐 사진이 없으니까 컬러로 찍으면 그 시대 사람을 현재로 데려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72년 전 윤동주의 흑백사진을 봤다. 그걸 컬러로 살려내면 오히려 사실성이 떨어질 것 같았다"고 했다. 영화 제작비는 5억원. 그는 "이렇게 제작비가 적은 영화는 난생처음이다"고 했다. 전작(前作) 사도(2015)의 총제작비는 약 95억원이었다. "상업적 부담감이 없다는 게 어찌나 어마어마한 장점이 되던지. 자유분방했고, 본질에 몰입할 수 있었죠.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면 성공과 실패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큰데요. 그래서 '평양성' 망했을 때 은퇴 선언까지 안 했습니까, 하하!"

    이 영화는 윤동주의 전기라기보다는 비극적인 시대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 윤동주, 송몽규 두 청년을 그렸다. 3개월 차이로 만주 명동촌의 같은 집에서 태어난 두 사람은 사촌 형제이자 친구, 라이벌로 자랐다. 영화에서 윤동주에게 '그림자'란 표현을 썼듯이 그는 언제나 송몽규보다 한발 뒤처졌다. 송몽규는 19세에 신춘문예에 당선이 됐고, 10대에 이미 독립운동단체에 가입했다. 윤동주는 송몽규를 따라 연희전문학교와 교토제국대학 시험을 봤지만, 교토제국대학 입시에는 낙방했다. 윤동주가 '남의 나라 육첩방'에서 시인의 천명(天命)을 다하고 있을 때, 송몽규는 유학생들을 규합해 혁명(革命)을 도모했다. 두 사람은 한 달 차이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

    어두운 시대, 가볍지 않은 삶을 다루면서도 '동주'는 투명할 정도로 말갛다. 감정이나 사건이 고조될 때마다 그 상황에 어울리는 윤동주의 시가 내레이션으로 삽입된다. 시를 읊는 강하늘의 단정한 목소리가 영화 밖으로 흘러넘칠 뻔한 감정을 주워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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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주’의 한 장면. 왼쪽이 윤동주 역의 강하늘.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모든 인간에겐 열등감이 있습니다. 윤동주는 그런 감정을 과대 포장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거고. 그런 시인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는 감독이 영화에 멋대로 의미 부여를 하고 감정 과잉을 하면 그건 (영화) 끝장나는 거예요. 윤동주를 영화적 도구로 사용해서 과도한 신파나 주의(主義)를 강조하지 않으려고 했죠. 그것이 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이준익 감독은 "영화 30%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극 중에서 윤동주가 호감을 갖는 '여진'이란 여학생도 허구의 인물이다. 스물여덟에 죽은 윤동주가 연애를 했거나 여자를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윤동주가 소풍 가서 찍은 사진을 봤어요. 두 명의 여자 사이에 윤동주가 있는 걸 보고 거기에 상상의 여지를 넣었죠. 그가 여진을 이화학당의 기숙사에 데려다 주는 길에 묘한 감정이 싹트는 정도까지만 그렸어요. 스물여덟에 세상을 떠난 그에게, 그런 삶의 순간, 청춘의 순간을 선물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로 윤동주와 송몽규의 젊음은 거기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영화 '동주' 예고편. /미디어로그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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