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사업 망하고… 뉴욕서 부동산 중개로 우뚝 '시칠리아産 오뚝이'

    입력 : 2016.01.16 09:14 | 수정 : 2016.01.16 13:29

    [맨해튼서 3년 연속 '파워브로커賞' 수상, 피디 프로퍼터스 대표 토니 박]
     

    토니 박(40)의 고향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이다. 20년 전 스무 살에 맨몸으로 미국에 간 토니는 식당, 아이스크림 사업, 현금자동출금기(ATM) 사업을 하며 쓴맛 단맛을 골고루 봤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 경제 중심인 뉴욕 맨해튼에서 주목받는 부동산 중개인이 됐다. 맨해튼 부동산 중개인은 흔히 떠올리는 '복덕방 주인'이 아니다. 빌딩 매매뿐 아니라 사무실 입점·분양과 관리 업무를 망라한 부동산 종합서비스를 제공한다. 맨해튼에만 부동산 중개인이 3만명이 있다. 미국 최대 부동산 정보업체인 코스타그룹은 이들의 실적을 바탕으로 뉴욕시에서 해마다 20명을 뽑아 '파워브로커 톱 20' 상을 준다. 대부분 유대인이 차지하는 이 상을 토니는 최근 3년 연속 수상했다.

    토니 박의 한국 이름은 박재형이다. 부모가 한국인이지만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미국 맨해튼에서 사업하는 그에겐 국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국적이 '한국인가요', 미국인가요', '이탈리아인가요'를 묻는 기자가 오히려 어색해졌다. 세상의 모든 땅을 사고팔고 싶다고 밝힌 그는 미국·이탈리아 시민권을 가진 글로벌 사업가였다. 한국에 온 그가 서울 강남의 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삼성동 한국무역협회 빌딩을 찾았다. /이태경 기자

    두 달 전 맨해튼 50번가 최고급 호텔인 '롯데 뉴욕 팰리스 호텔'에선 불꽃 튀는 입찰 경쟁이 있었다. 호텔롯데가 인수한 이 호텔에 매장을 입점시키는 부동산 중개업체를 뽑는 자리였다. 직원만 수천명에 달하는 커시맨(Cushman), CBRE, 소어 에쿼티(Thor Equity) 등 미국 내 쟁쟁한 부동산 종합서비스업체들이 경쟁에 참여했으나, 최종 승자는 토니가 대표로 있는 피디 프로퍼티스(PD Properties)였다. 토니는 이 호텔에 페라가모 박물관, 이벤트홀, 예술품 경매장 등을 유치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해 후한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일 전 세계 최대의 사무실 공유 서비스기업 '위워크(WeWork)'는 서울 명동 대신증권 빌딩 10개층을 임대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한국 진출을 본격 선언했다. 그 위워크 측 임대 대행업자도 토니였다.

    이번 거래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그를 서울 삼성동 한 호텔에서 지난 8일과 11일 두 차례 만났다. 그는 "실패 뒤엔 꼭 성공이 있었기에 실패도 즐기려고 한다"며 "사막에서 모래를 팔더라도 이익이 남는다는 판단이 서면 곧바로 거래를 추진한다"고 했다. 중학생 시절 한국에 잠시 살았던 토니는 우리말이 유창했다. 숨겨진 가족사를 캐묻는 기자에게 가끔 눈살을 찌푸렸다.

    토니 박은 미국 최대 부동산 정보업체인 코스타그룹이 선정하는 뉴욕시 '파워브로커상'을 3년 연속 수상했다. /토니 박 제공

    마피아에게 아버지를 잃고 한국행,
    국내에서 적응 못해 다시 외국으로

    시칠리아 마피아와의 악연

    ―어떻게 이탈리아에 살게 됐나요.

    "1960년대 이탈리아에 정착한 아버지가 시칠리아에서 한방 병원을 운영했습니다. 섬에서 이름이 제법 알려진 의사였지요. 당시 국립무용단원이었던 어머니가 유럽 순회공연 차 이탈리아에 왔는데, 아버지가 첫눈에 반해 버렸답니다."

    ―소설에 나오는 사랑 같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간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매달 선물을 보냈다고 합니다. 끈질긴 구애 끝에 외할머니 승낙을 받은 어머니와 1974년 결혼을 해 시칠리아에 정착했지요. 거기에서 저하고 형이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지금 이탈리아에 계십니까.

    "제가 열한살 때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환자 중에 마피아 두목의 가족이 있었나 봐요. 병을 낫게 해준 인연으로 마피아 두목과 아버지가 아주 가깝게 지냈다고 합니다. 두목은 정치인이었대요. 그런데 그 두목이 다른 마피아한테 피살당했어요. 보통 마피아들은 두목을 제거하면 가까운 사람들까지 모조리 죽인다고 합니다. 아버지도 병원 앞에서 총에 맞았어요. 당시 아버지 외에도 스무명 가까이 피살됐다고 들었습니다."

    1986년 말 국내 한 일간지에는 '마피아에 짓밟힌 환향(還鄕)의 10년 꿈'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다. 토니의 아버지 박춘웅(당시 43세)씨의 피살 사건을 다룬 기사로 사건 당시 토니의 어머니 양영숙씨는 잠시 한국에 간 상태였고, 토니와 토니의 형은 병원 아닌 다른 곳에 있어 화를 입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사건으로 토니는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온다.

    ―한국 생활은 어땠나요.

    "청와대 근처에 있는 중앙중학교를 잠시 다녔습니다. 그런데 적응이 너무 어려웠어요. 한국말을 잘 못하니까 친구들이 놀려서 매일 싸우고 맞고 다녔습니다. 제가 영어를 선생님보다 잘하니까 영어선생님도 저를 미워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선생님 귀를 물어뜯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요.

    "당연히 퇴학당했지요. 이후 깡패들하고 어울리다 경찰서 잡혀가고 문제아가 됐지요. 저렇게 놔두면 깡패밖에 안 된다고 판단한 가족들이 저와 형을 이탈리아로 다시 보내기로 했답니다."

    ―대학도 이탈리아에서 나왔던데.

    "시칠리아 IPSAR대학에서 호텔경영과 요리를 배웠습니다. 학비가 무료인 대학이었어요. 형은 이탈리아에 온 지 1년 만에 다시 미국 유학을 떠나버려 저 혼자 이탈리아에서 생활했지요."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했습니까.

    "식당에서 일하면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열다섯 살쯤 됐는데 너무 어려 취업이 안 된다고 해서 매일 아침 식당 주인 집에 찾아가서 마당을 쓸었어요. 일주일 그렇게 했더니 주인이 기특하다면서 일자리를 줬습니다."

    토니 박. /이태경 기자

    ―미국엔 언제 가게 됐나요.

    "스무살 때 친형이 있는 필라델피아로 갔습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형이 샌프란시스코 디자인 회사에 취업해버리는 바람에 다시 혼자 살았지요."

    ―어떻게 먹고살았습니까.

    "그리스 사람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일했어요. 주방과 카운터를 맡았습니다. 잘 안 되던 식당이 제가 간 후에 잘되기 시작해서 사장이 엄청 좋아했지요. 사장이 그 식당을 100만달러(약 12억원)에 팔면서, 큰 식당 차려 동업하자고 제안하더라고요. 지분도 20%를 주겠다면서요."

    ―동업을 했습니까.

    "당연히 오케이했지요. 펜실베이니아 인적 드문 골프장 부근에 500석 규모 식당을 차렸는데 아주 잘됐습니다. 그런데 큰 사고가 났어요."

    ―사고라니요?

    "불이 나서 식당이 홀랑 타 버린 겁니다. 다행히 보험을 들어서 사장은 손해 보지 않았지만 제가 식당을 실질적으로 관리했으니 미안하게 됐지요. 사장한테 지분 포기할 테니 식당에 있던 현금출납기(ATM)를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작은 화물차에 ATM 한 대 싣고 뉴욕으로 가게 됐습니다. 대학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더라고요."

    ―ATM은 왜 달라고 했습니까.

    "당시 법이 바뀌어서 은행뿐 아니라 개인도 ATM 관리 사업을 할 수 있었어요. 당시 기계 한 대에 2만5000달러(3000만원) 정도 했습니다. 편의점이나 식당 같은데 설치하고 업소 주인과 ATM관리자가 수수료 수입을 나눠 먹는 구조였지요."

    ―돈이 벌어지던가요.

    "맨해튼 한인 수퍼마켓에 설치했더니 한 달에 1000달러가 생기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대수를 늘려볼까 궁리하다가 학자금 대출받은 2만6000달러로 ATM을 사는 게 아니라 빌리기로 했습니다. 당시 기계를 샀다면 1대밖에 못 샀지만 리스했더니 20대가 생기더라고요."

    ―수입이 꽤 됐겠습니다.

    "20대에서 매달 2만달러가 넘는 수입이 생겼고, 돈 생길 때마다 ATM 대수를 늘려나갔지요. 그래서 5, 6년 만에 6000대까지 늘어난 거예요."

    ATM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토니는 2005년과 2006년 세계 30여 개 국가, 100여 개 도시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혁신적인 성과를 이끌어낸 기업인에게 주는 '언스트 앤드 영(Ernst & Young) 기업가상' 후보에 뉴저지주 대표로 2년 연속 올랐다. 비록 본상을 수상하진 못했지만 뉴저지주에서 가장 촉망받는 기업인이란 의미여서 한인 사회에선 꽤 화제가 됐다. 하지만 토니는 다시 좌절을 맛봐야 했다.

    뉴욕시의 한 여인이 ATM기기를 이용하는 모습. /조선일보 DB

    카드복제사건으로 제휴사 끊어져,
    외식사업도 금융위기로 실패해

    ATM으로 흥하고 망하다


    ―이번엔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러시아 사람들이 저희 기계 스무대를 사갔는데, 이들이 우리망에 들어와 고객 정보를 빼내서 위조 카드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미국에서 큰 문제가 됐습니다. 러시아 마피아 카드 해킹 사건이라고 불렸지요."


    ―그래서요.


    "FBI와 금융당국 등 4개 기관이 우리 회사를 1년 넘게 조사했어요. 우리를 러시아 마피아와 한패로 의심한 것이지요. 이렇게 무차별 조사를 받다보니 카드 회사들도 저희 ATM 서비스를 중단하더군요. 결국 러시아 마피아와 무관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저희 사업은 쫄딱 망하고 난 뒤였습니다. "


    ―마음고생이 심했겠습니다.


    "나중엔 제가 이탈리아 마피아 출신이라는 소문까지 돌더라고요. 오히려 저희 가족은 마피아 피해자인데도요. 매우 힘들었던 때였습니다."


    ―그다음엔 무슨 사업을 했습니까.


    "동업자들과 은행에서 돈 빌려 맨해튼에서 레스토랑 등을 인수했고 아이스크림 제조업도 했지요. 점포가 25개까지 늘어났습니다. 일종의 외식 사업을 한 거예요. 이때 부동산 중개인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많은 점포가 필요하다 보니 제가 자격증을 갖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외식사업은 성공했나요.


    "2007년 말 리먼브러더스 사건이 터지면서 금융위기가 왔잖아요. 사람들이 밖에서 뭘 사 먹질 않는 겁니다. 결국 이 사업도 실패했지요.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한동안 집에 전기도 안 들어왔을 정도였습니다."

    롯데호텔은 지난해 미국 뉴욕 맨해튼 최고급 호텔인 뉴욕 팰리스 호텔을 매입했다. 롯데 측은 호텔 빈 공간에 새로 입점할 업체를 유치하는 부동산 중개업체로 토니 박이 대표로 있는 피디 프로퍼티스를 선정했다. /조선일보 DB

    과거 경험으로 부동산 중개업 시작해
    위워크의 한국진출 연결고리 역할도…

    ―부동산 중개업은 언제부터 했습니까.


    "전 잠시라도 쉬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곧바로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했습니다.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사업 아이템이잖아요."


    ―맨해튼이 주요 사업 무대인데.


    "미국에서 상권이 가장 좋은 지역입니다. ATM 사업할 때도 보면 맨해튼에 있는 기계 1대 수익이 다른 지역보다 10배 많더라고요."


    ―맨해튼 빌딩 주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유대인 계열이 60~70% 정도 됩니다. 최근 중국 자금이 많이 들어온다고 하지만 유대인에 비교할 정도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 계열도 마찬가지구요. 맨해튼은 유대인 땅이라고 보면 됩니다. 건물 파는 사람도 유대인, 사는 사람도 유대인, 거래 중개자도 유대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저희 회사에도 유대인 직원들이 절반 됩니다."


    ―한국 고객도 많은가요.


    "많진 않습니다. 이번에 인연 맺은 호텔롯데를 비롯해 파리바게뜨, 젠틀몬스터 등이 있어요. 유대인·중국인·대만인 등 모두 100여 명의 고객이 있습니다."


    토니는 맨해튼 티파니 매장에 근무하는 대만 출신 아내 사이에 네 살배기 아들(안토니오 박)과 세 살배기 딸(안젤리나 박)을 두고 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자유의 여신상처럼 팔 수 없는 물건을 파는 세일즈맨이 되길 원한다고 했다.


    ―자신을 타고난 세일즈맨으로 생각하나요.


    "당연합니다. 장사꾼 체질이 느껴져요. 사막에서 모래 장사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내 모래가 가장 좋다고 설명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 수 있다고 봐요."


    ―사업 원칙이 있을 거 같은데.


    "지극히 단순합니다. 손님은 왕이라는 거지요. 고객이 뭘 원하는지 빨리 파악해서 바로 제공하도록 노력합니다. 지금 당장 손해나더라도 미래 투자 가치가 있다고 보면 바로 거래를 추진합니다."


    ―눈치가 빠른 모양입니다


    "맞아요, 아이큐가 좋지도 않고… 스트리트스마트(street―smart)하다고 할까요? 눈칫밥 많이 먹고 하도 거리에서 굴러먹다 보니, 고객이 지금 뭘 원하는지 동물적으로 파악하는 재주가 있는 거 같아요."


    일주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토니는 매우 바빴다. 두 차례 나눠 진행된 인터뷰는 그의 호텔 방에서 매번 밤 11시에 시작해 새벽 1시에 끝났다. 그의 굴곡진 과거를 듣다보니 부동산 중개 사업도 언젠간 실패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망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잖아요." 참 낙천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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