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내가 밀려나고 있다는 위기감… 내려오니 또 다른 길이 보여"

    입력 : 2016.01.04 05:52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이 된 '뮤직비디오 감독' 차은택]
     

    뿔테 안경에 힙합모자 차림의 차은택(47) 감독은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사실은 2000~2007년까지 뮤직비디오와 CF 감독에서 1등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왔어요. 해마다 대상(大賞)을 받았지요. 그러다 보니 오만했지요. 남의 얘기를 듣기보다 내 말만 하기를 좋아했어요."

    그는 이승환, 이효리, 싸이, 빅뱅, 2NE1, 티아라 등 200여 편의 뮤직비디오와 한·일 월드컵 때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이 나오는 SK텔레콤 '붉은 악마'시리즈 등 800여 편의 CF를 찍었다. 그가 국내외에서 받은 상(賞)을 나열하려면 한참 걸릴 것이다.

    "나름대로 최고라고 자신했는데, 어느 순간 직감이랄까, 내가 밀려나고 있는 게 아닌가 위기감을 느꼈어요. 내가 내려오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순간 너무 불안했어요."

    차은택 감독은“이효리는‘섹시 아이콘’이지만 학습형에 자기주장이 세다”라고 말했다. /고운호 객원기자

    "싸이는 사소한 회의에도
    안 빠지고 아이디어 내
    자신이 원하는 작품 위해
    타협이란 게 없어"

    ― 어떤 징후가 있었나요?

    "고객들이 저를 찾는 횟수가 줄어들고 내 작품에 대해 식상하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겁이 덜컥 났어요. 움츠리게 됐어요. 일주일 내내 퇴근하지 않고 내 사무실에서 TV 예능프로만 봤어요. 멍하게. 안에서 밥을 시켜 먹고, 화장실에 갈 때만 움직였을 뿐이죠. 그런데 TV 화면에서 지리산이 나왔어요. 그 장면을 보고 벌떡 일어나 지리산으로 갔어요."

    ― 왜 지리산을?

    "무슨 생각인지 모르나 그때는 제 자신에게 벌을 주고 싶었어요. 지리산 입구 등산용품점에서 바지와 스틱, 랜턴을 샀어요. 그때까지 등산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산에 올라가면 산장에서 두부김치와 산채비빔밥을 팔 줄 알았어요. 초코바를 씹어 먹으며 종주를 했어요. 반쯤 죽을 뻔했지요. 그 경험이 제 삶의 전환점이 됐어요."

    ― 지리산에서 무슨 답(答)을 얻고 왔기에?

    "산속에서 신발 끝만 보고 올라갔어요. 그러다 보니 위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어요. 어쩌면 저도 제 분야에서 바로 앞만 보고 계속 걸어왔던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정상까지 올라가 있었던 거죠. 하지만 정상에 섰으면 가차 없이 내려올 수밖에 없어요. 올라가면 내려오는 것, 그게 자연스러운 건데 극도로 불안해했던 거지요."

    ― 계속 1등 할 수는 없는 거죠. 그런데 내려온 뒤에는 무얼 합니까?

    "내려와서 같은 봉우리로 다시 올라가든, 아니면 다른 산으로 가든지…. 내려와 보니 올라갈 다른 산들도 있었어요. 한쪽에만 갇혀 있으니 집착하게 되고 다른 세상을 못 본 거죠."

    그 뒤 그는 여수엑스포 한국관 연출(2012년), 인천아시안게임 영상감독(2014년), 밀라노엑스포 한국관 총연출(2015년) 등으로 참여했다.

    그는 신년부터 서울 청계천로에 있는 '문화창조벤처단지'로 매일 출근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이라며 개소식에 참석했던 곳이다. 문화 콘텐츠와 첨단 기술을 융합해 사업화하려는 93개 벤처들이 입주해 있다. 여기서 그의 직책은 이 벤처들을 총괄 지원하는 '문화창조융합본부장', 무급(無給)이다.

    지난 2012년 차은택 본부장이 제작을 맡은 2012 런던올림픽(London Olympic) 응원가 KOREA(코리아) 뮤직비디오. /국립국악원 유튜브 채널

    ― 고교 시절에는 '문제아'였다고요?

    "아버지는 찬송가 작곡을 하고 합창단을 지휘했어요. 기독교 집안이었지요. 저는 교회를 잘 안 나갔고 그림에 재능이 있었어요. 공부 잘하는 공학도인 동생과 비교하면 부모 속을 썩였던 셈이지요. 고 3 때 어머니는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정문 건너편에 서 계셨어요. 제가 친구들과 다른 곳으로 새지 못하도록. 그래서 정문으로 안 나오고 뒷문으로 빠져나오기도 했어요."

    ―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겠네요.

    "어머니는 건너편에서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봤어요. 아마 안 그랬으면 그때 탈선했을지 모릅니다. 어머니가 보고 계시니까 아무래도 부담이 됐어요."

    그는 동국대 시각디자인과에 진학했다. 특별한 게 없었다. 군 제대한 뒤 복학할 때까지 영상 프로덕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그의 진로를 바꿔놓았다.

    "처음으로 내가 재미있어 하는 일을 찾은 겁니다. 밤늦게 남아 영상 자료들을 갖고 혼자서 편집을 해봤어요. 순전히 내가 좋아서 스스로 편집 일을 배웠던 셈이지요."

    ― 그렇게 해서 직업이 된 겁니까?

    "대학을 졸업한 뒤 가장 불안했던 시기였지요. 사회에 무얼로 뛰어들 것인가. 아르바이트 경험이 강렬했지만, 한편으로는 고생길이라는 걸 알았기에 주저했어요. 1년간 직장을 구했어요. 인테리어 기사 자격증 시험도 치고 그래픽디자인 회사에서 인턴도 했어요. 그러다가 결국 프로덕션으로 되돌아왔어요. 그 뒤 다른 쪽으로는 고개를 돌려본 적이 없었어요."

    ― 독립 프로덕션에서 대우는 썩 좋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 들릴지 모르나 저는 돈을 벌려고 한 적이 없었어요. 당시 큰돈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고. 월급이 얼마든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게 좋았어요."

    ― 이 분야에서 본인의 능력에 확신이 있었습니까?

    "누구보다도 이 일을 좋아한다는 확신은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 바닥에서는 본인이 어떤 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에 따라 수명이 결정되니까요. 노력과 재능이 없으면 수명이 짧죠. 당장 다음 달부터 일을 할 수가 없어지죠."

    ― 어떻게 살아남았습니까?

    "조연출 시절 일은 불규칙하고 몸은 바빴어요. 쏟아붓기만 하고 축적되는 게 없었어요. 그러다 한계가 오면 그만둬야 하는 거죠. 살아남으려면 내 스스로 가진 게 많아야 합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운전하는 동안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들었고, 책은 몇 페이지씩 복사해 갖고 다니며 봤어요. 신문 스크랩을 하고 새로운 영상 자료들은 장르별로 분류해서 모아놓았어요."

    ― 직업상 새로운 감각을 늘 쫓아가야 하는군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감에 늘 쫓깁니다. 제가 살아온 시절만 해도 컬러TV, 인터넷, 스마트폰 등으로 변해오는 걸 체감했지요. 갈수록 그 기술 속도는 빨라지고 있지요.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내려면 이 속도를 따라가지 않고는 불가능하지요."

    ― 한 개인이 빠르게 바뀌는 기술을 언제까지 쫓아갈 수 있을까요? 후배 세대에게 맡겨 넘기면 되는 것이고.

    "힘들어도 제 일은 미디어 기술을 이용해야 하니까요. 대부분은 스마트TV의 리모컨을 갖고도 그 기능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죠. 이것도 문맹(文盲)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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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은택 본부장의 인물·인맥 정보

    ― 차 감독 앞에 앉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웃음) 저도 다 사용을 못합니다. 이번에 고교 졸업생이 제안한 문화와 기술융합 프로젝트를 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어린 친구들로 인해 계속 자극을 받고 잠을 못 이룹니다. 솔직히 언제까지 제가 습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 뮤직비디오 얘기를 해볼까요. 어떤 계기로 찍게 됐습니까?

    "프로덕션에서 조연출로 일하면서 밤마다 다른 감독들이 만들어놓은 영상물을 갖고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붙여봤어요. 취미로 한 작업인데 100여편이 됐어요. 그게 소문이 나서 연예기획사에서 제안이 들어왔어요."

    ― 데뷔작이 이민규의 뮤직비디오 '아가씨'(1997년)라는데, 나는 이 분야를 잘 몰라서.

    "당시 뮤직비디오 차트에서 1위를 했어요. 그때 뮤직비디오는 가수들을 갈대밭 같은 데서 폼나게 담으려고만 했어요. 저는 가수를 망가뜨리거나 동네 아줌마 등 다양한 캐릭터를 등장시켰어요. 그게 새로웠던 모양이에요. 가수 이승환씨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의 뮤직비디오 '당부'(1999년)로 음악채널에서 대상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이 바닥에서 알려졌지요."

    ― 뮤직비디오 콘티는 어떻게 짭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음악을 들으면서 스토리를 떠올립니다. 촬영 약속한 날까지 스토리가 안 나오면 촬영을 취소했어요. 그래서 가수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어요."

    차은택 본부장이 작업한 이효리의 '미스코리아' 뮤직비디오. /CJ 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채널

    "어떤 作品을 만드느냐
    그걸로 수명이 결정돼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내가 가진 게 많아야"

    ― 가장 기억에 남는 가수는?

    "이효리씨죠. 10년간 함께 일했어요. '섹시 아이콘'이지만 대단한 학습형이에요. 작품을 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어떨 때는 '감독님 이런 걸 봤느냐'고 책 수십 권과 영상 자료를 제게 가져와요. 자기 주장이 세요. 소품 하나까지 까다로워요. 이런 효리씨 모습이 좋았어요."

    ― 우리는 단돈 10만원을 받아도 최선을 다 하는데, 수십억원을 버는 연예인이라면 그렇게 해야지요.

    "연예기획사에서 만든 아이돌 가수들은 사전에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요. 촬영장에서 처음 만날 때도 있어요. 상당 기간 정상에 선 가수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싸이도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 아주 사소한 회의도 빠지지 않고 나와 아이디어를 내요. 모든 촬영 장면에 관여하지요. 직접 영상 편집을 해와서 제안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타협이란 게 없어요."

    ― 자기주장이 강한 이런 가수들과 이견이 있을 때는?

    "작품이 흔들릴 정도면 제 고집을 세우지만, 대부분 가수 의견을 수용해요. 이들이 부를 노래이니까요. 이들은 어떤 연출자보다 예민한 귀와 감성을 가졌어요."

    ― '강남스타일' 전까지는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쭉 연출해왔다고요?

    "같은 동네 살았고 쭉 함께 했어요. '강남스타일' 제안이 왔을 때는 제가 싸이의 다른 작품인 런던올림픽 응원가 '코리아'를 하고 있었어요. 아깝기는 하지만(웃음). 제가 '강남스타일'을 했으면 안 터졌을지도 몰라요. 싸이가 다른 연출자를 만나 다른 에너지를 냈을 거예요. 정말 재능이 있는 친구예요."

    ― '강남스타일' 다다음 작품인 '행 오버'를 만들었지요. 부담이 적지 않았을 텐데?

    "그 부담은 싸이 본인이 가장 많이 느끼겠지요. 싸이는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해요. 카메라를 들이대면 대부분은 멋있게 보이려고 하는데 그는 망가지려고 해요. 자신의 특장(特長)에 대해 가장 연구를 많이 한 겁니다. 아이돌 가수가 늘어나면서 요구하는 게 거의 같아졌어요. 남자 아이돌은 꽃미남처럼, 여자 아이돌은 아주 예쁘게 보이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많아요. 그때부터 저도 뮤직비디오를 찍지 않았어요."

    그렇게 해서 힙합모자를 쓴 그는 지리산을 한 번 등반하고, 이제 문화창조벤처단지에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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