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주제로 브로드웨이 무대 도전장 내민 25세 청년

브로드웨이. 뉴욕 타임스스퀘어를 중심으로 하는 이 거리는 뮤지컬 연출가와 배우에게 꿈의 무대로 불린다. 브로드웨이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낸 스물다섯 살 한국인 청년이 있다. 2015년 오프브로드웨이에 국내 최초로 데뷔한 창작 뮤지컬 <컴포트우먼 (COMFORT WOMEN: A New Musical)>의 연출가 김현준씨다. 현재 ‘디모킴 뮤지컬 공장’의 대표인 그는 지난해 11월 한국인 최초로 미국 연출가 및 안무가협회에 가입허가를 받았다.

    입력 : 2016.01.01 07:03

    [Top Class:창작 뮤지컬 '컴포트우먼' 선보인 김현준 연출가]
     

    <컴포트우먼>은 2015년 3월 6일 브로드웨이 최고의 디너쇼 공연장으로 잘 알려진 ‘54 below’에서 첫 시사회 후 7월부터 오프브로드웨이 최대 규모인 ‘세인트 클레멘트’에서 공연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총 18회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고, 10월에는 다시 한 번 ‘54below’에서 특별 앙코르 공연을 하기도 했다. 미국 관객 대부분은 “처음 접한 <컴포트우먼>의 스토리에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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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준 연출가.

    뮤지컬 '캣츠'보고 연출가 꿈꿔,
    열정만 가지고 뉴욕으로 떠나

    <컴포트우먼>은 ‘위안부’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1941년 일본군에게 잡혀간 오빠를 둔 소녀는 오빠를 되찾기 위해 높은 임금을 주는 직장에 취업시켜주겠다는 일본군의 말에 속아 도쿄로 향한다. 그러나 그는 인도네시아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또 다른 위안부들과 탈출을 계획한다. 처절했던 시기에 조국애, 가족애, 우정을 담아냈다.

    “관객들이 너무 많이 울어서 놀랐습니다. 한국의 이야기를 마치 우리가 외국 오페라나 뮤지컬을 보고 감동하듯이 받아들인다는 게 뿌듯했어요. 일본인 관객들도 많은 걸 느끼고 간다고 해줘서 뜻깊었습니다.”

    뮤지컬 <캣츠>에 반한 어린 소년

    김현준 연출가가 뮤지컬 연출의 꿈을 꾸게 된 것은 다섯 살 때 엄마 손을 잡고 봤던 뮤지컬 <캣츠>였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춤추던 고양이들은 지금도 지울 수 없는 이미지입니다. 보통 남자아이들이 공룡 꿈을 꿀 때 저는 <캣츠>에 나오는 고양이 꿈을 자주 꾸곤 했습니다(웃음).” 어느 어린이날에는 부모님께 <캣츠> DVD를 선물받고는 몇 백 번씩 돌려보았다.

    “하도 많이 보니 모든 가사와 동작이 외워지더라고요. 그러면서 관객 입장이 아닌 연출가의 입장에서 보게 되었어요. 어린 나이지만 어떤 장면은 멋있고 어떤 장면은 부족하다는 걸 안 거죠. 자연스럽게 내가 직접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美 업계의 편견으로 냉대받지만
    열정적인 노력으로 주위 시선 돌려놔

    뮤지컬 연출가라는 꿈을 가진 이후 그는 국내에서 개막하는 모든 뮤지컬을 보러 다녔다. 뮤지컬을 보면 볼수록 ‘우리말로 된 우리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라이선스 뮤지컬이 대우받는 한국 시장에서 어린 그가 연출한 창작 뮤지컬이 성공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꼭 뮤지컬 본고장 뉴욕에 가서 창작 뮤지컬을 성공시켜 한국으로 가지고 오겠다’고 다짐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주변 친구들과 함께 소규모 뮤지컬을 준비해 구민회관 같은 작은 극장에 올리며 ‘뮤지컬 연출가’라는 꿈에 차근차근 다가갔다. 주변 친구들이 수능준비를 할 때도 그는 흔들리지 않고 꿈을 좇았다. 혼자 유학을 알아보며 각 대학 교수님을 무작정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작고한 전 성균관대 연극영화과 김용태 교수가 그의 열정을 보고 뉴욕시립대에 추천을 해주었다.

    “뉴욕으로 떠나기 위해 6개월간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다 했어요. 공장 막노동, 맥도날드 햄버거와 중국 음식 배달, 과외, 포장마차에서 호텔 서빙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뉴욕에서 자력으로 생활비를 벌 것과 향후 5년간 등록금 및 추가로 드는 생활비를 갚기로 부모님과 약속하고 2010년 8월 17일, 그는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뉴욕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이 타임스퀘어였습니다. 바로 <Avenue Q>라는 뮤지컬을 예매해서 보았지요. 신세계였어요. 가사와 음악이 딱딱 맞았습니다. 미국 뮤지컬이라 작품성이 높은 게 아니라 본인들의 이야기를 그 트렌드에 맞게 다뤘기 때문이었습니다.”

    뮤지컬 '컴포트우먼' 포스터.

    美 시장에 통하는 작품 만들기 위해
    애국주의를 배제한 우리이야기로…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을 넘어

    패기 있게 뉴욕으로 왔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시아인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었다. 하지만 소심해지는 대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에 임했다. 지도교수가 외부 공연을 할 때마다 조연출을 자청해서 길거리 극장부터 오프브로드웨이까지 따라다녔다. 그 결과 연극영화과 회장을 맡기도 했고, 2014년에는 학생 대표로 첫 연출 데뷔를 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극작가, 작곡가, 안무가, 배우, 프로듀서 등 뉴욕 내 다양한 연극인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시아인이 뭘 알겠어’라는 편견이었습니다.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더 많이 일하고 제 열정을 더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파티, 연극 독회를 찾아다녔고, 조연출 자리가 있다고 하면 누구보다 먼저 지원했습니다.”

    때때로 쏟아지는 무시에 가슴이 아렸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함께 일하는 연출가가 “저녁 약속이 있다”고 하면 같이 데려가달라고 졸랐고, ‘유명한 사람이 온다’고 하면 명함을 들고 가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3년 동안 오프브로드웨이부터 브로드웨이까지 따라다니다 보니 김현준 연출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제가 미국에 와서 느낀 것은, 미국인들이 남의 나라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 미국시장에서 통하는 뮤지컬을 만들려면 우선 인류가 공감할 만한 소재를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이야기를 최대한 애국주의를 배제하고 풀어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직접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한국전쟁, 미국 내 이민자 문제, 위안부, IMF 외환위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프로젝트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여러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먼저 관심을 받은 주제가 ‘위안부’였다. 당시 일본 정치인들이 ‘위안부’ 관련 망언을 쏟아내고 있었고, 미국 내에서도 뉴욕타임스, CNN에 소개되고 있던 시점이라 더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완성된 위안부 대본을 가지고 여러 프로듀서, 극장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많은 미국인이‘위안부’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요. 극장주와 프로듀서에게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와 성범죄를 자세히 설명하고 그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도 알려주었습니다. 모두 처음 듣는 소재였기에 더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후 극장주들은 리허설 공간을 마련하거나 대관료를 줄여주는 등 호의적으로 변했다. <컴포트우먼>의 오디션은 2014년 11월에 열렸다. 오디션에는 146명의 한국인, 165명의 중국인, 134명의 일본인과 그 외 아시아 국가 출신 배우 총 668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관련기사]
    "위안부, 외국 배우조차 눈물 흘리는 아픔의 역사"
    COMFORT WOMEN: A New Musical "There You Go". /김현준 연출가 유튜브 채널

    “처음 진행한 오디션인데 지원자가 너무 많이 몰렸습니다. 저 혼자 이메일로 지원신청을 받았는데 2주 동안 쉴 새 없이 답장하느라 바빴습니다(웃음).”

    수많은 아시아 배우 중 단연 흥미로운 오디션은 일본계 배우들의 오디션이었다. 위안부 모집책 ‘고미노’ 역으로 뽑힌 에드워드 이게구치는 오디션에서 “잘못된 역사를 숨기는 것 자체가 우리 정부의 잘못된 선택이다. 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이 기회에 내가 도움된다면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해 감동을 주었다. <컴포트우먼>은 올해 브로드웨이 진출을 확정했다.

    김 연출가는 그뿐만 아니라 4개의 차기작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한국인 이민자가 미국에서 위장결혼하면서 겪는 일을 코미디물로 만든 <그린카드>(2016년 오프브로드웨이에 진출할 예정), 한국전쟁을 시간 여행으로 풀어낸 <시나브로>, 이상의 날개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품과 1990년대 뉴욕에서 한국과 중국 갱의 영역 다툼내용을 다룬 뮤지컬 <플러싱>이다.

    “뉴욕에 와서 보니 아시아인 배우들이 역할이 부족해서 고생하고 있어요. 전체 배역 중 아시아인은 2%도 안 되거든요. 우리 이야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을 계속 만들어서 라이선스에 잠식당해 있는 한국 뮤지컬 시장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아시아인들이 출연하는 작품을 많이 올려서 아시아인을 대표하는 연출가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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