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한국이 고립된 나라도 아니고… 책임 있는 사람조차 알려고 안 해"

    입력 : 2015.12.21 05:59

    ['이회창 동생' 이회성 IPCC 의장이 말하는 '파리기후협약'의 실체]
     

    "한국이 세계에서 고립된 나라도 아니고…, 솔직히 나도 궁금하다. 왜 우리는 관심이 없는지. 알아야 될 위치의 사람들조차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회성(70)씨는 처음 봤지만 낯익었다. 바로 위의 형 이회창 전(前) 한나라당 총재와 닮았다. 그는 에너지 분야 전문가다. 두 달 전 선출된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 의장 자격으로 파리 기후 총회에 보름간 가 있었다.

    "석유·석탄·천연가스 같은 화석(化石) 기반의 에너지 체계를 비(非)화석으로 바꾸자고 195개국이 박수 치며 합의했다. 이는 경제의 지각변동이다. 마치 석기시대에서 청동기를 뛰어넘어 철기시대로 간 것과 같은 패러다임 전환이다. 외신에서는 연일 톱뉴스였지만 국내에 돌아와 보니 아무도 얘기하지 않더라."

    이회성 교수 '정부 간 기후변화 협의체' 의장에 선출
    이회성씨는“파리 기후 협약은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우리에게 굿 뉴스”라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化石 자원 가진 나라들도
    오래 못가 사장시킬 판에
    海外 나가 그걸 개발해
    대체 어디서 쓸 것인가"

    ― 국내에서는 정치 뉴스가 톱기사였다. 기후 협약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일반 대중은 관심을 안 가져도 책임 있는 위치에 있으면 알아봐야 한다. 나라의 장래가 걸렸는데 그 심각성을 왜 알려고 하지 않나."

    ― 우리 정부의 관심은 어떤가? 이번 파리 총회에서 환경부 장관은 일찍 귀국하고, 장관이 해야 할 고위급 세션(session) 연설을 나경원 의원이 대신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외국 참석자들이 '이상하다'고 얘기하더라."

    ― 파리 기후 협약으로 '한겨울 이빨 빠진 호랑이'로 비유되는 우리 경제가 더 코너로 몰리게 되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굿(good) 뉴스'가 될 수 있다."

    ― '굿 뉴스'라는 게 무슨 뜻인가?

    "파리 협약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화석(化石) 연료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매장돼 있는 석유·천연가스 등이 5조달러쯤 된다. 앞으로는 이런 자원을 그냥 묻어놓고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치 은행에 맡겨놓은 자기 현금을 쓰지 못하는 것과 같다. 화석 자원을 많이 갖고 있는 중국·미국·캐나다·호주·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죽을 맛이다. 자원 부국으로서는 이번에 통 큰 합의를 해준 것이다. 반면에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잃을 게 없다. 이제부터 세계 각국이 완전히 다른 에너지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 지구온난화에 대처한다는데, 지구가 얼마나 따뜻해졌나?

    "산업혁명 시기와 비교해 0.8도 상승했다. 이대로 가면 2100년 지구의 평균기온은 4~6도 오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 지구 기온이 4~6도 상승하는 게 큰 문제가 되는가?

    "문제는 온도가 바뀌는 속도다. 지구의 기온은 5만~10만 년에 걸쳐 서서히 오르거나 내려갔다. 지금처럼 80년 뒤에 지구 온도가 4도 더 올라가는 경우는 없다. 지구 생태계가 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멸망할 수 있다."

    ― 이번 파리 총회에서 '2100년 지구 기온의 상승폭을 2도보다 훨씬 낮게 유지하고 될 수 있다면 1.5도까지 제한하도록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지켜질 수 없다고 하는데?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험에 처한 통가 등 남태평양 섬나라들을 달래기 위한 협상용 긴급처방이었다. 1.5도 선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기술로는 도달할 수 없다. 회원국마다 이번에 제출한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를 모두 실현해도 지구 기온은 2.7도 이상 오른다."

    ― 그렇다면 파리 협약 내용은 단지 희망사항인가?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 표명이 담긴 것이다."

    ― 우리나라는 2030년 이산화탄소 총배출량의 37% 감축 계획을 제출했는데.

    "파리 총회 전에 이미 187개국이 그런 행동 계획을 제출했다. 자발적으로 내놓은 것은 역사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다."

    ― 우리는 세계 7위의 이산화탄소 배출 국가이다. 37% 감축 목표는 과도한가, 미흡한가?

    "이를 놓고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게 무의미한 거다. 2030년의 이산화탄소 총배출량 전망치(8억5100만t)는 국내총생산이 매년 3% 성장하고 제조업 비중이 얼마를 유지한다는 전제하에서 나온 것이다. 과연 매년 3%씩 성장이라는 전제가 옳을까. 총배출량 전망치가 틀릴 수도 있는데 '37% 감축의 많고 적음'부터 따지는 게 무슨 소용있겠나."

    ― 감축 계획 이행에 대해 국제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들었는데.

    "불이행에 대해 실질적인 제재는 없어도, 성적표를 공개하면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당하는 거다. 감축 이행 상황을 5년마다 검증받는다."

    ― 누가 어떤 식으로 검증을 하게 되나?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검증하고, IPCC에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통계 분석 틀을 제공한다."

    ― 1988년 IPCC가 설립된 뒤로 비(非)서구인으로는 처음 의장에 선출된 걸로 알고 있다. 임기가 '6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가 완성될 때까지인 5~7년이라고 들었다. 이런 불확정한 임기도 있나?

    "일을 위주로 만들어진 국제기구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평가보고서는 5~7년마다 나왔다. "

    "이승만은 원자력을 시작,
    박정희는 정유산업 일으켜
    전두환은 액화천연가스를…
    에너지정책은 대통령 결정"

    ―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라는 게 뭔가?

    "5~7년마다 기후변화에 관한 진전된 연구 결과들을 분석해 종합 평가하는 것이다."

    ― 종합 평가한다는 것은?

    "기후변화에 대해 현재 알고 있는 사안이 무엇이고, 알고 있지만 분명하지 않은 사안이 무엇이며,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를 판단해준다. 세계 각국의 기후 정책을 세우는 과학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

    ― 한때는 지구가 과연 뜨거워지고 있느냐 논쟁이 있었고, 지구온난화는 이산화탄소(온실가스) 배출과 직접 관계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1990년에 나온 1차 기후변화 보고서에서는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 인간에 의한 것인지 자연의 변동 때문인지 알 수 없다. 과학적으로 분명히 알려면 1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보고서로 1992년 '유엔 기후변화 협약'(온실가스 감축 노력과 관련 정보 공개)이 채택됐다."

    ― '2차 보고서'는 어떤 결론을 내렸나?

    "2차 보고서는 '지구가 계속 더워지고 있고 그 원인이 인간에 의한 것임을 상당히 알 수 있을 것 같다(discernable)'고 했다. 그 뒤 1997년 '교토 의정서'(선진국들 간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했으나 미국이 중간에 탈퇴)가 채택됐다. 그때만 해도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활동에 기인한 것이라는 과학적 확실성은 빈약했다."

    ― 과학적으로 완전히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이산화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나?

    "사전예방 원칙(precautionary princi ple)이 적용된 것이다. 그 뒤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을 위해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 관리)' 개념을 내놓았다. 소위 보험을 드는 것과 같다. 확실하지는 않아도 너무 큰 위험이 예상되면 사전 대응책을 마련하듯이 말이다."
    이회성 IPCC 의장에 대한 인물·인맥 정보
    이회성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의장. /조선일보 DB

    ― 과학적으로 확실히 입증된 것은 언제였나?

    "3차 보고서에는 '확실히 더워지고 있고 인간에 의한 가능성이 매우 높다', 4차와 5차 보고서에는 '인간에 의한 것임이 명백하다'고 못박았다. 4차 보고서(2007년)를 낸 그해 IPCC는 지구온난화와 인간 활동의 인과관계를 규명해온 공로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 이 선생이 IPCC 의장으로서 책임지게 될 '6차 보고서'에서는 어떤 메시지가 담기는가?

    "기후 협약에 따른 이산화탄소 감축 행동은 부담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열게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를 입증해줄 연구 결과들을 종합 평가할 것이다."

    ― 대기업은 연구·설비 투자를 해서 재생 에너지(태양광·풍력·바이오 등 고갈되지 않고 지속 이용 가능한 에너지) 체제로 갈 수 있지만, 그런 능력이 없는 중소기업 등은 타격을 보지 않겠나?

    "재생 에너지나 에너지 저장 기술에 많이 투자한 기업들은 앞으로 큰 시장을 만날 것이다. 기관투자자들은 보유한 화석 에너지 관련 주식을 내다 팔고 있다. 지금 국내에서 화석 연료로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가 67%다. '지구 온도 상승폭 2도'라는 기후 협약에 맞추려면 이런 발전소들은 15년 안에 없어져야 한다.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관성에 의해 화석 에너지에 집착하면 바보짓이다. 해외 가스 유전을 사들이거나 개발에 나서는 것은 거꾸로 가는 짓이나 다름없다."

    ―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의 막대한 손실을 놓고 논쟁이 있었는데, 그때 투자 자체가 시대 흐름을 잘못 읽었다는 것인가?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을 내세우면서 동시에 석유·천연가스 등 해외 자원 개발을 추진했다. 모순되는 정책이었다."

    ― 우리는 자원빈국이니까 해외 자원 개발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분명히 말하지만 그건 틀렸다. 각국마다 이산화탄소 배출의 상한선이 있다. 이런 마당에 화석 에너지 자원을 확보해야겠다고? 그런 자원을 갖고 있는 나라들도 오래 못가 모두 사장시켜야 하는 판에. 그걸 개발해서 어디서 쓸 것인가."

    ― 이명박 정부 때 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나?

    "내부적으로 몇 번 의견을 전달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해외 자원 개발에 나서는 것부터 시대착오적이었다. 이는 정부가 나서서 다른 석유 공급원을 확보하려던 '1차 오일쇼크'(1973년) 때 방식이 모델이었다. 요즘 세상에 그게 대박이 날 것 같았으면 대형 정유업체들이 벌써 뛰어들었을 것이다."

    ― 지금 정부의 할 일은 뭔가?

    "이승만은 원자력을 시작했다. 박정희는 원자력을 이어받으면서 정유산업을 일으켰다. 전두환은 액화천연가스를 산업화했다. 이 대통령들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인프라를 바꿔놓았다. 국가의 에너지 정책은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태양광과 에너지 저장 기술 등에서 기반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럴 경우 파리 기후 협약은 축복의 뉴스가 될 수 있다."

    ☞이회성 IPCC 의장은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미국 뉴저지대 경제학 박사. 다국적 석유회사 엑손 근무, KDI 연구원. 초대 에너지경제연구원장.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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