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아닌 고기'에 투자하는 실리콘 밸리 갑부들

식물로 만든 햄버거 패티
그런데 맛도 냄새도 씹는 느낌도…

    입력 : 2015.12.05 07:58

    지난 7월 미국 실리콘밸리는 구글이 창업 4년 차 작은 벤처 기업 하나를 인수하려다 퇴짜를 맞았다는 소식에 술렁였다, 실제로 판매하는 제품조차 없는 이 회사는 구글이 제안한 인수 가격 2억~3억달러(약 2300억~3400억원)가 너무 낮다며 매각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콧대 높은 기업은 ‘임파서블 푸즈(Impossible Foods)’. 식품 벤처기업이다. 임파서블 푸즈는 소로 만든 ‘진짜 고기’가 아닌 식물로 만든 ‘모조 고기(fake meat·페이크 미트)’를 넣은 햄버거를 개발하는 회사다. 미래 신성장 산업 중 하나로 농업을 지목한 구글은 관련 기술을 가진 벤처 회사를 물색하던 중 이 회사를 사려 했는데 회사 측은 자기들의 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빌 게이츠·리카싱 회장 등 갑부들도 '채식 산업' 투자

     최근 실리콘 밸리의 핵심 키워드로 ‘음식 산업’이 떠오르고 있다. 음식료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기술력을 갖춘 음식 벤처, 특히 육류, 달걀, 치즈 등 동물에서 얻던 음식을 식물로 똑같이 만드는 회사가 대세다.

    임파서블 푸즈, 비욘드 미트, 햄프턴 크릭에 투자한 빌게이츠

    미국의 ‘국민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햄버거를 식물로 만든 고기 패티와 치즈를 넣어 만드는 회사나, 달걀노른자 대신 식물 재료를 넣어 마요네즈를 만드는 벤처 회사에 거물 투자자들과 벤처캐피털이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임파서블 푸즈는 작년 10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홍콩 최고 부자인 리카싱(李嘉誠)의 투자사 호라이즌스 벤처스, 구글 벤처스, 코슬라 벤처스 등에서 7500만달러(약 860억원) 투자를 유치했다. 이어 올해 10월 기존 투자자를 비롯해 넥슨 창업자 김정주 NXC 대표, UBS, 바이킹 글로벌 인베스터스 등으로부터 1억800만달러(약 1200억원)를 추가 유치했다.

    스탠퍼드대 생화학과 교수 출신인 패트릭 브라운 임파서블 푸즈 최고경영자(CEO)는 대학 근처 레드우드시티에서 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30년 넘은 채식주의자다. 그러나 그는 실험실에서 식물을 원료로 개발 중인 햄버거 패티는 채식주의자를 겨냥한 음식이 아니라고 말한다. 육식을 하는 사람이 고기 대신 먹고 만족할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채식주의자들이 먹는 콩으로 만든 고기는 퍽퍽하고 고기 맛이 나지도 않아요. 한눈에 봐도 진짜 고기가 아니라는 티가 나죠. 우리가 만드는 식물 고기는 육식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빠져들 만큼 맛이나 생긴 모양, 향 등이 진짜 고기와 거의 같습니다. 육식의 문제점은 건강에도 안 좋고 환경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육식을 포기하지 않고도 건강과 환경에 좋은 고기를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먹는 고기를 동물에게서만 얻어야 할까?’ 식물성 모조 고기 개발에 뛰어든 창업자가 하나같이 품었던 의문이다. 작년 5월 미국 유기농 수퍼마켓 체인 홀푸드는 매장에서 판매하던 치킨 샐러드 제품 두 종류를 리콜해야 했다. 하나는 진짜 닭고기, 또 하나는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만든 닭고기 대체품이었는데, 이를 구분하지 않고 판매한 게 문제가 됐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드디어 진짜 닭고기 맛이 나는 모조 고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제품을 산 소비자 누구도 진짜와 모조 닭고기의 차이를 알아채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비욘드 미트에 투자한 트위터 공동 창업자 에반 윌리엄스(왼쪽)와 임파서블 푸즈, 햄프턴 크릭에 투자한 코슬라 벤처스 창업자 비노드 코슬라

    이 ‘가짜’ 닭고기를 만든 곳은 이선 브라운이 2009년 창업한 ‘비욘드 미트(Beyond Meat)’란 회사다. 완두콩과 시금치, 브로콜리 등을 넣어 만든 햄버거도 판다. 이 회사는 빌 게이츠와, 코카콜라에 팔린 유기농 차(茶) 브랜드 어니스트 티 창업자 세스 골드먼, 벤처캐피털 클라이너 퍼킨스 등에게서 투자를 받았다.

    비욘드 미트가 만든 닭고기 대체품. 식물에서 추추란 단백질로 만들었는데 진짜 닭고기 맛이 난다.

    올해 10월에는 트위터 공동 창업자인 에번 윌리엄스와 비즈 스톤이 세운 투자사 아비어스 벤처스, 김정주 NXC 대표에게서 1700만달러(약 200억원)를 유치하기도 했다. 브라운 CEO는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건 동물성 단백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기 씹는 맛과 풍미를 원하기 때문이다. 식물 원료를 이용해서도 얼마든지 고기 대체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동물 대신 식물로’를 외치는 창업자나 투자자들은 단지 사람이 먹기 위해 동물을 기르는 것은 자원 활용 측면에서 비효율적이고 환경 파괴적이라고 주장한다. 육식이 건강에도 안 좋다고 말한다. 이들은 단점을 알면서도 육식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늘려준다는 측면에서 식물 모조 고기의 경쟁력을 찾는다.

    임파서블 푸즈와 비욘드 미트에 투자한 김정주(왼쪽부터), 임파서블 푸즈와 햄프턴 크릭에 투자한 리카싱, 햄프턴 크릭에 투자한 피터 틸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자료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2050년이면 지금보다 24억명 더 늘어난 97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증가에 따라 식량 수요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50년 육류 소비 수요는 2000년대 초 대비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소고기 2파운드(약 908g)를 생산하려면 30파운드가 넘는 옥수수와 상당한 물이 필요하다.

    2050년 세계 인구 97억명 예상
    육류 소비 2000년초 대비 두배될 것
    가축 사육 시 온실가스 배출 문제돼

    과학계에서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되는 온실가스 배출의 가장 큰 원인으로 가축 사육을 꼽는다. 사람들이 먹기 위해 기르는 동물이 뿜어내는 탄소가 자동차와 비행기에서 나오는 전체 배기가스보다도 환경에 더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자기 블로그에 “생활수준이 높아져 육류 수요가 늘고 있지만, 90억명이 먹을 충분한 고기를 생산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내가 채소를 좋아하지만 햄버거를 포기하고 살 수는 없다. 따라서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고도 고기를 생산해낼 혁신적 방법이 필요하다”고 썼다.

    더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진 사회 분위기도 동물 대체 식품 개발 붐에 한몫했다.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IARC)는 최근 햄과 소시지를 발암물질 1군으로 분류해 가공육 업계와 축산 업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대기업들도 친환경 식품을 찾는 소비자 수요에 맞춰 변신을 꾀하고 있다. 맥도널드와 타이슨 푸즈는 앞으로 닭에게 항생제를 쓰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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