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1.23 11:03 | 수정 : 2015.11.23 14:41
시작된 고지전

이제 정전 혹은 전쟁 재발 시에 상대를 감제하기 쉬운 요지를 선점하기 위한 고지전으로 일관하면서 마치 제1차 대전의 서부전선과 같은 모습으로 전선이 급격히 변화하였다. 아군이건 적군이건 고지를 선점하면 참호를 깊게 파 엄폐호를 만들어 상대의 공격을 막았고 반대로 고지를 빼앗기면 이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아끼지 않았다. 당연히 엄청난 피와 철이 요구되는 전투 행태였다.

백마고지가 특히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이유는 그 특유의 위치 때문이었다. 백마고지를 아군이 점령한다 하더라도 북쪽에 백마고지를 내려다보는 더 높은 고지들이 많아 전술상 크게 유리한 측면은 없지만, 반대로 적군이 백마고지를 차지하면 철원-김화로 이어지는 평야지대를 모두 적에게 내주고 아군은 약 15킬로미터 정도 뒤로 물러나 전선을 구축하여야 했다. 한마디로 양보할 수 없는 요지였다.

그런데 백마고지를 놓고 싸우게 될 적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초산에서 청성부대를 붕괴시켰던 중공군 38군이었다. 김종오가 두고두고 잊지 않았고 반드시 복수하여야 할 철천지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이었다. 38군은 여타 중공군부대와 달리 백마고지 전투 투입을 위해서 오랫동안 후방에서 교육받았고 소련식으로 완편된 포병을 보유하여 화력도 막강하였다. 이처럼 적도 백마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최선의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던 상태였다.
남쪽에서 바라 본 백마고지의 모습. 이곳을 적이 점령하면 이군은 철원 평야를 포기하여야 했다. 그래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곳이었다. /전쟁기념관 제공
남쪽에서 바라 본 백마고지의 모습. 이곳을 적이 점령하면 이군은 철원 평야를 포기하여야 했다. 그래서 반드시 지켜내야 할 곳이었다. /전쟁기념관 제공
제112, 113, 114사로 구성 된 중공군 38군의 병력은 9사단의 3배에 이르고 있어 인해전술로 아군을 압도할 예정임이 분명하였다. 굳이 아군에게 유리한 상황이라면 제공권과 후방 화력정도였지만 문제는 피아가 엉켜서 싸우는 고지전에서는 이러한 지원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마지막에는 적을 일일이 격퇴하여야 최종적인 승리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복수의 기회를 엿보던 김종오는 결코 지난날을 잊지 않았다. 그동안 체득하고 수집한 중공군의 전술을 예하 장병들이 외울 정도로 철저히 교육시켰다. 더불어 중공군이 주로 작전을 벌이는 야간 사격 및 백병전 훈련도 지겹도록 반복하였다. 그리고 모든 참호는 유개호화 하였고 부상병 발생 시 이를 후송하기 위해 전력이 이탈되지 않도록 부상병이 대피할 수 있는 시설까지 구축하였다.<②편에 계속>
395고지 일대에 참호를 구축하고 전투 준비 중인 9사단 병사들. /남도현
395고지 일대에 참호를 구축하고 전투 준비 중인 9사단 병사들. /남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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