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1.06 03:05

[민사소송 지면 이자 폭탄]

재판 길어지면 배보다 배꼽 커져
소송 남발 막는 장치가 상소 포기하게 만들기도

은행 이자와 법원 지연손해금 이자 그래프
소규모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김모(42)씨는 2011년 동업자였던 친구에게서 "빌려간 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당했다. 김씨는 "친구가 5000만원을 투자해 함께 사업을 했는데 회사가 망할 위기에 처하니 빌려준 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억울해했다. 그러나 1·2심에서 모두 졌다.

대법원에 상고하려던 김씨는 고민에 빠졌다. 민사 소송에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원금에 붙여서 줘야 하는 '지연손해금 이자' 때문이었다. 지연손해금은 1심에선 연리(年利) 5%로, 2심 땐 연리 15%로 붙는다. 김씨는 1심 선고 때까지 7개월, 2심은 2년 1개월이 걸렸다. 2년 8개월 재판을 받으면서 원금(5000만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2200만원 이자가 붙은 것이다. 결국 김씨는 상고를 포기했다.

이처럼 법원 판결에 졌을 때 무는 지연손해금 때문에 소송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은행 금리 몇 갑절을 물게 돼 있다보니 배(원금)보다 배꼽(이자)이 큰 상황도 벌어진다.

연 25%였던 지연손해금 이율은 2003년 연 20%로 낮아졌다. 지난 10월부터 연 15%로 다시 하향 조정됐다. 법무부는 "시중 은행의 평균 연체금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지연손해금을 정해왔다"며 "최근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연체금리도 낮아져 정부도 법정 이율을 낮추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연이자가 은행 금리보다 높아야 한다는 점에는 많은 법조계 관계자들이 동의한다. 정당하게 돈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에게 소송 기간 피해를 줬으니 최소한 은행 이자보다는 많은 이자를 물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연 1.88%에 불과한데 지연손해금을 연 15%나 물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54)는 "민사 소송은 돈을 갚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게 아니라 돈을 갚아야 하는지 아닌지, 어떤 명목으로 오간 돈인지를 다투는 과정인데 이를 연체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중견 로펌 소속의 이모(47) 변호사도 "지연손해금이 너무 커져 '상고하겠다'는 의뢰인을 뜯어말리고 항소심에서 사건을 끝낸 적도 있다"며 "소송 남발을 막는 측면도 있지만 돈 때문에 상소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지연손해금이 가장 크게 문제가 됐던 것은 '과거사 소송'이었다.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이자(251억원)가 손해배상 원금(279억원)과 맞먹을 정도로 불어났다. 대법원은 이에 2011년 "과다 배상 우려가 있어 불법행위가 발생한 시점이 아닌 2심 변론이 끝난 이후부터 이자를 계산하라"고 판결했다.

최연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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