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1.06 03:05
[민사소송 지면 이자 폭탄]
재판 길어지면 배보다 배꼽 커져
소송 남발 막는 장치가 상소 포기하게 만들기도
대법원에 상고하려던 김씨는 고민에 빠졌다. 민사 소송에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원금에 붙여서 줘야 하는 '지연손해금 이자' 때문이었다. 지연손해금은 1심에선 연리(年利) 5%로, 2심 땐 연리 15%로 붙는다. 김씨는 1심 선고 때까지 7개월, 2심은 2년 1개월이 걸렸다. 2년 8개월 재판을 받으면서 원금(5000만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2200만원 이자가 붙은 것이다. 결국 김씨는 상고를 포기했다.
이처럼 법원 판결에 졌을 때 무는 지연손해금 때문에 소송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은행 금리 몇 갑절을 물게 돼 있다보니 배(원금)보다 배꼽(이자)이 큰 상황도 벌어진다.
연 25%였던 지연손해금 이율은 2003년 연 20%로 낮아졌다. 지난 10월부터 연 15%로 다시 하향 조정됐다. 법무부는 "시중 은행의 평균 연체금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지연손해금을 정해왔다"며 "최근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연체금리도 낮아져 정부도 법정 이율을 낮추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연이자가 은행 금리보다 높아야 한다는 점에는 많은 법조계 관계자들이 동의한다. 정당하게 돈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에게 소송 기간 피해를 줬으니 최소한 은행 이자보다는 많은 이자를 물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연 1.88%에 불과한데 지연손해금을 연 15%나 물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54)는 "민사 소송은 돈을 갚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게 아니라 돈을 갚아야 하는지 아닌지, 어떤 명목으로 오간 돈인지를 다투는 과정인데 이를 연체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중견 로펌 소속의 이모(47) 변호사도 "지연손해금이 너무 커져 '상고하겠다'는 의뢰인을 뜯어말리고 항소심에서 사건을 끝낸 적도 있다"며 "소송 남발을 막는 측면도 있지만 돈 때문에 상소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지연손해금이 가장 크게 문제가 됐던 것은 '과거사 소송'이었다.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이자(251억원)가 손해배상 원금(279억원)과 맞먹을 정도로 불어났다. 대법원은 이에 2011년 "과다 배상 우려가 있어 불법행위가 발생한 시점이 아닌 2심 변론이 끝난 이후부터 이자를 계산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