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19 23:02

키 크고 마른 남성 환자는 기흉, O형 다리 할머니는 무릎 관절염
다리긴 남성은 전립선암 위험 높아, 목짧고 굵은 남성은 코골이 심해
노력하면 체형 바꿀 수 있어… 관절과 척추 튼실해야 오래 살아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삐쩍 마르고 호리호리한 젊은 남자가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며 병원 응급실을 찾아오면, 의사들은 그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대번 짐작이 간다. 키와 체형만으로 그 나이에 잘 걸리는 병이 있기 때문이다. 정답은 기흉(氣胸)이다. 폐를 둘러싼 흉막이 찢어지면서 폐 안에 있어야 할 공기가 폐 밖으로 새어나오는 병이다. 말 그대로 허파의 바람이 빠진 상태다.

기흉은 성장기 10대와 20대 초반 남성에 잘 생긴다. 키 자라는 속도를 폐 성장이 못 따라가 일어난다. 키 크고 마른 사람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폐가 확장됐다가 축소되는 압력 차이가 크다. 청소년기는 숨을 크게 쉬는 운동량이 많은 때다. 그런 자극이 반복되다 보니, 폐 상단 부위 흉막과 허파꽈리가 잘 찢어지고 기흉이 생긴다. 키 큰 게 '원죄'다.

'오(O)'형 다리 체형의 할머니가 걸을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며 정형외과 진료실에 들어선다면, 영락없이 퇴행성 무릎 관절염이다. 나이 들어 생기는 퇴행성 관절염은 주로 무릎 안쪽 연골이 닳아 없어진 탓이다. 'O'형 다리 체형은 걸을 때마다 무릎 안쪽에 하중이 더 많이 실린다. 그 세월이 길면 길수록 연골은 닳고 닳는다. 거기에 복부 비만까지 있으면 노년에 연골이 남아나질 못한다.

직립 보행을 하는 인간은 목이 길면 목 디스크, 허리가 길면 허리 디스크에 잘 걸린다. 그만큼 척추 움직임이 크고 디스크에 쏠리는 하중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연성 조직인 디스크가 버티질 못하고 주변으로 빠져나오기 쉽다. 목이 짧고 굵은 체형의 중년 남성을 보면 일단 코골이가 심할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체형은 구강에서 기도로 이어지는 공기 통로가 좁고 짧아 수면 호흡 때 공기 흐름에 와류 현상이 일어나 코를 골게 된다. 여기에 턱마저 작으면 소음 데시벨은 더 높아진다. 코골이가 심하면 숙면을 취할 수 없게 되고, 나아가 수면무호흡증 등 수면장애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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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체형에 따른 질병 위험을 말할 때, 주로 몸무게를 따진다. 뚱뚱하면 당연히 각종 비만병 위험이 커진다. 하지만 키도 질병 위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암이 그렇다. 키 큰 여성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키 작은 여성보다 높다. 아마도 성장기에 키를 키운 호르몬이 유방 유선조직의 모유관 세포 양도 늘려 위험이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방암은 대개 모유관 세포에서 생긴다. 비슷한 맥락으로 키 큰 여성은 자궁암과 난소암 위험도 높다.

남성에서는 롱다리들이 전립선암에 걸릴 위험이 숏다리보다 크다. 키가 10㎝ 클수록 전립선암 위험이 6%씩 높아진다는 연구가 있다. 키 성장 인자가 활발할수록 남성호르몬과 관련된 전립선암 발생 위험이 커진다는 추정이다. 췌장암, 대장암, 직장암 등에서도 같은 조건이라면 키 큰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잘 걸린다.

키 작은 사람이 취약한 질병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심근경색증이다. 키 작은 사람은 키와 상응해 관상동맥 길이도 짧아서 동맥경화나 나쁜 지방 축적으로 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힐 위험이 더 크기 때문이다. 같은 동맥경화 상태라도 증세가 심각하게 일어날 수 있다. 고혈압도 키 작은 사람이 걸릴 위험이 큰데, 이 또한 동맥 길이가 짧아 혈압 상승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란다.

노년기에 들어서면 확실히 키 작은 사람이 유리하다. 나이 들어서는 낙상 골절이 생명에 큰 위협을 준다. 실제 미국에서 매년 35만명이 골반 골절을 당하며, 그중 20%는 1년 내 사망한다. 작달막한 사람은 신체 무게중심이 낮아 잘 넘어지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뼈가 굵고 근육이 오밀조밀 붙어 있어 낙상으로 인한 충격이 작다.

사람들의 키가 들쭉날쭉해도 지구는 둥글고 인류는 평등하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키 큰 사람 연봉이 뚜렷한 이유 없이 단신보다 더 많다고 한다. 수렵 생활을 하던 원시시대, 키 큰 사람이 목표물도 빨리 포착하고, 망도 잘 보고, 재난 대처도 기민해서 왠지 믿음을 줬고, 그런 인식의 유전자가 남아 있어서 그렇다는 해석이 있다. 의학적으로는 질병마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길이가 길면 수명은 짧은 쪽이다.

키야 내 맘대로 바꿀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체형은 노력에 따라 바꿀 수 있다. 장수 의학자들이 제시한 적합한 장수 체형은 관절과 척추 주변이 단단하고 튼실한 체형이다. 뽀빠이 이상용을 떠올리면 된다. 수천억 번의 움직임을 견디어야 하는 연골과 디스크는 재질이 약해서 망가지기 쉽기 때문에 주변에 보호막을 쳐야 한다. 주변 근육을 키워서 완충재 역할을 시켜야 한다. 골다공증 골절을 막기 위해서는 대둔근을 두툼하게 키워서 엉덩이에 솜 패드를 붙여 놓은 것처럼 해놓아야 한다고 했다. 고령 장수 시대에 어울리는 몸은 효율성이 아니라 내구성이다. 다부져야 오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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