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20 06:06 | 수정 : 2015.10.21 16:37
<中편에서 계속>
효주(曉州) 허만정은 남해대교 아래쪽,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한 사당 충렬사에도 돈을 보냈습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려 일부러 이름 정(正)에 갓머리(宀)를 씌웠다고 하지요. 그런가 하며 그는 백정(白丁)들의 해방운동도 지원했습니다. 이렇게 덕(德)을 쌓았기에 그가 살던 지수면은 6ㆍ25 때도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 전 우익들이 좌익을 해치려 하면 중간에서 설득해 좌익을 살렸고 전쟁이 벌어진 후에는 인민군이 우익을 검거해 살해하려 하자 그가 중간에 나서 말렸습니다. 빨치산들도 그의 의로움을 알았기에 지수면을 해치지 않았다고 하지요. 한마디로 좌와 우에서 모두 존경받은 것입니다. 그는 삼성과 엘지그룹이 창업할 때 종자돈을 댔습니다. 그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한국 기업계의 거목으로 성장합니다.

먼저 그의 큰아들 허정구(許鼎九ㆍ1911~1999) 전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삼성을 세울 때 아버지의 명(命)을 받고 삼성으로 가 초대 삼성물산 사장을 지냈습니다. 둘째가 허학구 새로닉스 회장, 셋째가 허준구 전 엘지건설 명예회장, 넷째가 허신구 엘지석유화학 고문, 다섯째가 허완구 승산 대표이사 회장, 여섯째가 허승효, 일곱째가 허승표, 여덟째가 허승조씨입니다. 장남 허정구 회장의 자손으로는 장남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차남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삼남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이 있습니다. 삼남 허준구 회장은 일찍 작고한 작은아버지 허만옥, 즉 허만정 선생의 동생 집안에 양자가 됐습니다. 그의 자손으로는 허창수 GS 회장, 허정수 GS네오텍 회장,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 허명수 GS건설 부회장,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이 있습니다.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댁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고즈넉하다.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댁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고즈넉하다.

허정구 회장의 자손들이 태어난 곳은 한옥의 기품이 살아있다.
허정구 회장의 자손들이 태어난 곳은 한옥의 기품이 살아있다.
앞에 간단히 기록했지만 효주 허만정 선생의 차남 허학구 선생에도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그는 경기고를 다니며 운동을 해서 힘이 좋았지요. 어느 날 허학구는 조선 학생들을 괴롭히던 일본 형사 요시다를 계동 골목에서 만나 실컷 두들겨팼습니다. 이때 함께 있던 인물이 훗날 남로당(南勞黨)의 거물이 된 박갑동(朴甲東)이었습니다. 둘은 나란히 퇴학당하고 일본 유학을 떠났는데 허학구는 메이지(明治)대를, 박갑동은 와세다대를 다녔지요. 이때 박갑동의 학비를 허씨 집안에서 댔습니다.

해방 후 박갑동이 박헌영(朴憲永)의 비서로 있을 때, 허학구는 고향 지수면에서 이장을 하고 있었지요. 해방 후 좌우익의 충돌시기부터 6ㆍ25때까지 유학파 엘리트 허학구가 공직 대신 고향을 지키는 이장(里長)을 했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보도연맹 사건 때 좌익으로 지목된 이들에게 우익의 살생을 미리 알려줘 목숨을 구하도록 했습니다. 보도연맹 연루자들에게 “내일 자네 나오라고 부르거든 절대 나가지 말게. 나가면 죽을 테니 오늘 밤에 피신하는 게 좋겠네”라고 귀띔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허씨와 구씨의 만남입니다. 지수면 승산마을을 걷다 보면 중간쯤에 허만정 선생 집이 나오고 정면에서 대문을 봤을 때 왼쪽이 엘지 창업주 구인회 선생의 처가이며 다시 그 왼쪽 집이 구인회(具仁會) 창업주의 생가입니다. 제가 말한 구인회 선생의 처가란 허만식 선생과 그 딸로 구인회 창업주의 아내가 되는 허을수 등 6남4녀가 살던 곳입니다. 허만정 선생에게 구인회 엘지 창업주는 6촌 사위가 되는데 구 창업주가 1931년 진주에서 포목점인 구인회상점을 운영했지요.
구인회 엘지 창업주의 생가다.
구인회 엘지 창업주의 생가다.

구인회 엘지 창업주의 생가에 붙은 방산정이라는 현판이다. 방산정은 마을을 둘러싼 방어산을 줄인 말로 보인다.
구인회 엘지 창업주의 생가에 붙은 방산정이라는 현판이다. 방산정은 마을을 둘러싼 방어산을 줄인 말로 보인다.
1947년 훗날 엘지그룹의 모태가 되는 락희(樂喜)화학공업사를 세울 때 허만정 선생은 돈을 대며 3남 허준구를 경영에 참여시켰습니다. 지금의 LG그룹과 GS그룹의 동업은 무려 57년이나 이어지다 잡음 없이 ‘아름다운 이별’로 나뉘지요. 허씨와 구씨들은 돈을 사회에 환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지수면에는 1921년과 1961년 각각 세워진 수혜불망비가 있는데 1921년 것은 허만정 선생 별채에서 수년간 숙식을 해결하던 걸인(乞人) 중에 식자(識者)가 은공을 잊지 못해 세운 것이지요. 이외에도 허만정 선생의 자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재산을 기부했는데 이런 전통은 구인회 창업주의 자손들에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구인회 창업주는 구자경-구자승-구자학-구자두-구자일-구자극 등 아들을 남겼지요.
허준 선생의 차남 효주 허만정 선생의 집이다. 앞에 있는 나무안내판을 읽어보면 이 집에서 태어난 기업인이 현재 우리나라를 이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허준 선생의 차남 효주 허만정 선생의 집이다. 앞에 있는 나무안내판을 읽어보면 이 집에서 태어난 기업인이 현재 우리나라를 이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허준 선생의 차남 효주 허만정 선생의 바로 옆집이다. 이 집의 허씨 딸이 훗날 구인회씨와 결혼을 했다. 구인회 회장은 허만정 선생의 조카사위가 됐다.
허준 선생의 차남 효주 허만정 선생의 바로 옆집이다. 이 집의 허씨 딸이 훗날 구인회씨와 결혼을 했다. 구인회 회장은 허만정 선생의 조카사위가 됐다.

허준 선생의 차남 효주 허만정 선생의 집 현판이다.
허준 선생의 차남 효주 허만정 선생의 집 현판이다.
구인회 창업주에게는 구철회-구정회-구태회-구평회-구두회 등 다섯 동생이 있는데 구철회 회장의 자손은 구자원 LIG넥스원 회장을 비롯해 구자성-구자훈-구자준이 있습니다. 셋째 동생 구정회 회장의 자손으론 구자윤-구형우-구자헌-구자섭-구자민이, 구태회 회장의 자손으론 구자홍-구자엽-구자명-구자철이, 구평회 회장의 자손으론 구자열-구자용-구자균이 있습니다. 구본무 현재 엘지그룹 회장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남이며 동생으로 구본능-구본준-구본식씨가 있습니다. 엘지그룹 후계자인 구광모씨는 이른바 구씨 가문의 4세대로 1978년생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수면의 산세를 살펴봅니다. 지수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방어산(防禦山)입니다. 말 그대로 방비를 한다는 뜻인데 이 산이 마을을 한 바퀴 돌아 감싸니 그 한가운데 허씨 집성촌은 풍수에서 말하는 회룡고조(回龍顧祖)의 명당입니다. 그런가 하면 동네 앞에는 밥상처럼 생긴 안산(案山)이 있으니 부자 터임을 알 수 있지요. 과연 지수면에는 일본 강점기 때도 만석꾼 한 집, 오천석꾼 세 집, 천석꾼 여덟 집 정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부자가 많았으니 당시에도 영업용 택시가 두대나 있었다지요. 앞서 말한 지수초등학교에는 삼성 이병철, 엘지 구인회 창업주 외에도 효성 조홍제 창업주가 동창입니다. 이병철-조홍제-허정구 세 명이 동업을 할 때 세 별이 모였다고 해서 회사 이름을 ‘삼성(三星)’을 지었다는 말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끝으로 지수면에서 마지막으로 둘러봐야 할 곳은 연당(蓮塘), 즉 연꽃이 가득 피어 있는 작은 연못입니다. 지금은 계절이 그래서 다 시들었지만 이 연당은 조선 효종이 북벌(北閥)을 꾀할 때 ‘관서오호장(關西五虎將)’의 한 분으로 꼽혔던 허동립(許東岦ㆍ1601~1662)장군이 바로 이 집을 지었다고 하지요. 무과에 급제해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와 오위도총부총관(五衛都摠副摠管)을 지낸 장군은 지략과 용맹이 출중해 이완 대장 등과 함께 효종의 북벌 선봉에 나설 재목으로 꼽혔습니다. 허동립 장군이 세상을 떴을 때 현종은 다음과 같은 제문을 내려 애석함을 나타냈습니다.

“황조의 중세에 근심이 서북변방에 있어 장수의 재목을 뽑아 쓰는데 순차적으로 하지 않도록 명령했을 때 오직 다섯 사람이 있었으니 그중의 한 사람이 경(卿)이었다. 붉은 끈으로 서쪽 남방에서 애연한 치성이었도다. 다섯번은 장수의 직임을 맡았고 여섯번은 중군을 도왔도다. 어쩌다 한번 든 병으로 갑자기 가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렇게 보면 솥바위와 연결된 재벌 스토리를 관광상품화하려면 GS그룹의 초석뿐 아니라 삼성-효성그룹의 씨를 뿌린 지신정 허준 선생과 효주 허만정 선생을 반드시 포함해야겠지요. 여기에 이병철 창업주-구인회 창업주-조홍제 창업주를 포함한다면 가히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과정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더욱이 이들은 지금의 재벌들과 달리 독립운동이나 학교설립, 가난한 농민돕기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니 더욱 뜻이 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hoto by 이서현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