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해봐야 안다, 그 요리의 '소스'를

입력 : 2015.10.15 04:00

[정동현 셰프의 생각하는 식탁] (12) 토마토 소스

토마토
나의 단골 레퍼토리는 '오빠 믿지?'도 아니고 '딱 한잔만 더'도 아닌, 이거다.

"그거 만들기 쉬워요."

음식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난 저 말을 빼놓지 않는다. 요즘 유행하는 음식 방송은 죽어라 보면서 통 조리대 앞에 서지 않는 사람들은 말한다.

"에이, 구라가 심하네요. 집에서 저런 걸 어떻게 해먹어요."

그러면서 '역에서 걸어서 5분'이라고 말하는 부동산 아줌마, '금방 출발했다'고 말하는 중국집 아저씨 바라보듯 나를 쳐다본다. 그러나 조치훈 9단도 말하지 않았나. 바둑 돌 하나 하나 놓다 보니 기성도 되고 9단도 되었다고. 아무리 복잡한 레시피도 기본은 똑같다. 단계가 많을 뿐이지 단계 하나하나는 어렵지 않다. 복잡하고 오래 걸릴지는 몰라도 어려워서 '불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영어라서 어딘지 모르게 있어 보이는 '소스(sauce)'도 알고 보면 만들기 쉽다. 토마토 소스는 특히 만만하다. 크림소스 파스타와 함께 데이트 메뉴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토마토 소스 파스타의 주인공, 이 벌건 토마토 소스는 이탈리아 요리의 기본 중 기본이다. 볼로네즈 소스 등 다른 소스의 기초가 된다. 이탈리아 요리, 인도 요리, 지중해 요리 등등 안 쓰이는 곳이 없다.

카넬리니(cannellini)라고 부르는 하얀 콩을 토마토 소스에 삶는 베이크 빈(baked bean)을 만들 때도 없으면 안 된다. 베이크 빈은 영국식 아침 식사에 빠지지 않는다. 담백한 콩과 상큼 시큼한 토마토 소스의 조합은 고추장에 흰 밥의 어울림 같다. 하다못해 커리에 섞어도 되고 스테이크를 찍어 먹어도 된다. 그래봤자 한국에서는 토마토 소스를 파스타 먹을 때만 쓴다는 아우성이 들려온다.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파스타 삶는 동안 토마토 소스를 만들 수 있다. 10분이다. 파스타 삶을 동안 뭘 할 것인가? 텔레비전이라도 볼 텐가?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시간, 그동안 한번 만들어보자.

토마토 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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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가장 간단한 토마토 소스 레시피를 소개하겠다. 우선 토마토와 토마토 통조림을 준비한다. 통조림이니 "지금 뭐 하자는 거냐"며 발끈할 분 있을 것 같다. 미안하지만 이탈리아 현지가 아닌 이상 생토마토만으로는 토마토 소스의 단맛과 신맛을 낼 수 없다. 그래서 세계 어디를 가든(이탈리아 빼고) 별 세 개 달린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도 토마토 소스를 만들 때 통조림을 쓴다. 토마토 통조림은 대형 마트에서 파는데 토마토 소스 통조림과 헷갈리면 안 된다.

토마토는 빨갛게 잘 익은 놈으로 준비한다. 절로 터질 것처럼 물렁거리면 더 좋다. 제일 맛 좋은 때는 썩기 직전이란 말도 있잖는가. 그런 걸 못 구했으면 통조림만 써도 된다. 나머지 재료들은 월계수 잎, 타임, 양파, 마늘 정도다. 월계수 잎과 타임은 잡맛을 제거하고 특유의 나뭇가지 비슷한 향을 낸다. 양파는 잘게 썰고 마늘은 다진다. 양파가 잘리는 아삭한 감각이 칼을 통해 온몸에 전해진다. 마늘의 아릿한 향을 맡는다.

먼저 냄비를 불 위에 올리고 올리브유를 두른다. '콸콸콸' 느낌이 나도록 넉넉히 뿌린다. 어느 정도 달궈지면 양파와 마늘을 넣는다. 양파는 얼마나 볶아야

할까? 약한 불에서 양파가 투명해질 때까지 볶는다. 양파의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아미노산 형태로 변해 우마미(umami), 즉 감칠맛이 더해지니까. 반대로 양파를 갈색으로 볶으면 양파의 당분이 캐러멜화되면서 고기 익는 듯한 풍미가 난다. 여기선 색깔 없이 투명하게 볶는 게 정답이다. 색깔이 나지 않게 불 조절을 한다. 살짝 그을린다. '이건 괜찮겠지' 넘긴다. 다 익었다 싶으면 소스의 주인공 토마토와 토마토 통조림을 넣는다. 주르륵, 퍽퍽. 통조림 캔 헹군 물을 냄비에 또 붓는다.

남은 것은 월계수 잎과 타임을 넣고 졸여주는 일이다. 고기 육수 내듯 시간을 오래 들이면 토마토의 신선함이 사라지니 빨리 마치는 게 좋다. 15~20분이면 충분하다. 15분을 끓일지, 16분, 17분, 아니면 20분일지 결정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정확한 농도를 적어놓지 않은 요리사 놈을 질병에 빗대어 욕해도 어쩔 수 없다. 토마토의 풋내가 사라지고 농도가 맞춰지면 간을 본다. 몇 번에 걸쳐 간을 한다. 맛이 비는 것 같은가? 토마토 소스는 단맛과 신맛의 조합이다. 덜 달면 설탕을, 덜 시면 식초를 넣는다. 김치찌개를 끓일 때 신 김치 맛을 내기 위해 식초를 넣는 것과 같은 이치다. 포인트로 살짝 고춧가루를 첨가해도 된다.

덩어리진 게 좋다면 이대로 먹고 '진짜 소스' 같은 질감을 원하면 믹서로 간 다음 채로 거른다. 가을 단풍의 정갈한 붉은색이 아니라 투우사가 흔드는 망토의 뜨겁고 짜릿한 붉은색 토마토소스는 이렇게 탄생한다.

토마토 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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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별거 아니지 않은가? 해보면 안다. Just do it. 요리는 특히 그래야 한다.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몸을 쓰고 손을 움직여 봐야 감이 온다. 이렇게 아무리 말해도 토마토 소스 완제품에 손이 갈 확률이 높다. 하긴 토마토 소스뿐인가?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하기보다는 축구 경기를 보고, 곡을 연주하기보다는 남이 연주하는 곡을 듣는다. 사랑하기보다는 남이 사랑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심지어 내가 아닌 남이 섹스하는 것을 본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나는 없고 너만 있다. 그래서 무슨 재미로 사나 싶다.

이런 걸 보고 KFC 할아버지를 닮은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책 '몰입(Flow)'에서 "선조들이 꿈꾸지도 못했던 물질적 번영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자꾸만 무기력해지는 것일까?"라며 "현대의 삶에서 느끼는 불안과 우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가 제공하는 당근과 채찍의 달콤한 매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웅변했다. 세계적 석학이다 보니 말이 조금 어렵지만 그 '독립적인 자세'는 별거 아닌 것부터 시작한다. 따라만 오시라.

그것이 뭐냐 하니 요리요, 토마토 소스다. 파스타 해먹을 때마다 그 소스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만드는 것보다 사 쓰는 게 싸겠다고 불평하지 말자. 사사건건 '돈돈' 거리는 것처럼 없어 보이는 것도 없다. 백번 양보해 재료를 사서 만드는 게 비싸게 먹힐지라도, 시간이 많이 들고 귀찮을지라도, 그 과정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깨달음은 돈에 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즐거움과 깨달음은 '독립적인 자세'에서 나온다. 요리는 간단한 과정이라도 시시각각 판단해야 한다. 토마토라도 다 다르고, 통조림이라도 제조년월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소금의 염도도, 허브의 향도 다르다. 이 과정은 초심자에게 난해하지만 아예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익숙해지면 무한한 변주가 가능하다. 당근, 셀러리, 쇠고기 민스를 넣어 볼로네즈 소스를, 소시지와 고기를 넣고 푹 끓여 라구(ragu)소스를 만들 수도 있다. 파프리카, 양송이, 파슬리, 닭고기를 넣어도 되고, 쇠고기 육수를 끓이고 졸여 토마토 소스와 섞으면 훌륭한 스테이크 소스가 된다. 그러면서 재료와 재료와의 관계를 알게 되고, 시판용 소스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깨닫게 된다. 이성을 만날 때 폼도 더 잡을 수 있다. '라면 먹고 갈래'라고 하지 말고 '토마토 소스 파스타 먹고 갈래'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은가? "소스도 내가 직접 만들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지면서. 만드는 재미, 그 뒤 긴 밤은 덤이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토마토는 강장 효과도 있다.

나는 그래서 늘 사람들에게 '쉽다'고 말한다. 제발 좀 해보라고 등을 떠민다. 망치면 어떡하느냐고? 맞는 말이다. 하다 보면 망칠 수도 있다. 그러나 좌절하지 마시라. 세계적인 셰프도 매일 겪는 일이다. 그러면서 배운다. 요리는 모험이며 신비다. 더구나 뭔가를 창조한다는 것에서 젊음이기도 하다.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된다. 되돌이킬 수 있다. 그 속에 무한한 자유가 있다. 소스는 그 자유로 향하는 출발점이다. 소스는 모든 요리에 혼을 불어넣는 근본, 즉 소스(source)이기 때문이다.
정동현 셰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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