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0년간 만주 차지했던 부여는 우리 고대사의 源流"

입력 : 2015.10.15 03:08

['처음 읽는 부여사' 낸 송호정 교수]

문헌·고고학 자료 바탕으로 부여사 복원한 국내 첫 通史
"고구려·백제·발해도 후예 자처"

3세기 저작인 중국 사서(史書) '삼국지(三國志)'는 위서(魏書) 동이전에서 부여를 시작으로 고구려·옥저·동예·읍루·한·왜 순으로 기록한다. 부여는 여러 나라 중 맨 앞에 나온다. 동이전은 부여에 대해 '아주 부유하고 (3세기 중반까지) 한 번도 이웃 나라의 침략으로 파괴된 적이 없다'고 적었다. 부여는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나라였다는 것이다. 고구려 시조 주몽은 부여의 왕자 출신이었고, 백제를 세운 온조 집단도 부여의 후손을 자처하면서 한때 국호를 남부여라고 했다.

지난주 청주 연구실에서 만난 송호정(51) 한국교원대 교수는 "신라와 가야도 부여에서 내려온 주민 집단이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발해도 부여의 후손으로 옛 부여 지역을 회복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는 내용이 사료에 기록돼 있다"면서 "기원전 3세기부터 494년 고구려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700년간 만주 지역에 있었던 부여는 우리 고대사의 중심이자 원류"라고 말했다.

송호정 교원대 교수는 “부여는 우리 역사상 고조선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 체제를 마련한 나라로 3세기 무렵 중국 동북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고 말했다.
송호정 교원대 교수는 “부여는 우리 역사상 고조선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 체제를 마련한 나라로 3세기 무렵 중국 동북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고 말했다. /신현종 기자
송 교수가 최근 출간한 '처음 읽는 부여사'(사계절)는 부여에 대해 쓴 국내 첫 통사(通史)다. '삼국지' '사기' '한서' 등 중국 자료와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같은 우리 역사서 등 문헌을 꼼꼼히 섭렵하고 발굴 유물 등 고고학의 성과를 더해 부여의 역사를 복원했다. 송 교수는 1998년 서울대에서 고조선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고조선 박사 1호'. 당초 부여사를 학위 논문으로 쓰려고 했지만 지도교수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고조선을 주제로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송 교수는 "고구려·백제·발해가 모두 부여의 후예로 자처한 점에서 부여사를 역사책에 한두 줄 서술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 역사의 첫 국가는 고조선이었지만 우리 고대사의 출발점으로 부여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부여의 강역을 현재 중국 헤이룽장성과 지린성 일대<지도>로 추정했다. 송 교수는 "관련 유적을 28회 답사하고 문헌과 고고학 자료를 더해 최대한 실상에 가깝게 접근한 것"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나온 부여사 관련 책도 송 교수의 강역 추정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송 교수는 "부여는 예맥족이 세운 한국 고대의 역사로 올바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데도 중요하다"면서 "우리 민족을 형성한 예맥족이 이룬 정치체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확실한 근거 자료 없이 우리 고대사를 과장·확대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한사군의 위치를 대동강 유역으로 보는 것은 기록과 유물 등을 통해 얻은 학계의 성과입니다. 이를 두고 '식민사관'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학문 영역의 비판이 아닙니다." 송 교수는 "오히려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식민지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고대사 학자로서 이에 대한 학문적 답변을 다음 작업으로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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