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13 08:03 | 수정 : 2015.10.13 17:12

대기업에서 전문 경영인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지난해 8월초 필자에게 흥미있는 제보가 하나 있었다.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사장을 둘러싼 얘기였다. 종합해 보면 주 사장이 ‘안하무인식’ 경영으로 회사 조직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주 사장과 김승연 회장의 부인인 서영민 여사와의 관계 때문에 그룹 측은 아무런 제스처를 쓸 수 없다고까지 했다. 즉 주 사장의 부인과 서 여사와 친구 사이라 아무도 주 사장에게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김승연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난지 얼마 안돼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을 때였다. 김 회장은 지난해 11월말에 그룹 경영에 복귀했다. 이후 주 사장의 부인과 서 여사와의 사이는 와전된 것으로 밝혀졌다.

주 사장은 최근 각종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국의 한화투자증권 지점장들이 서울 여의도 회사 본사에 모여 주 사장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피켓시위를 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증권가에서 지점장들의 단체반발은 지난 2013년 동양사태 때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 지점장들이 당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자택에 모여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 신청을 철회하라고 요구한 이후 2년만이다. 직원들이 대표이사의 방침에 반기를 드는 보기 드문 현상이 나타났다. 상명하복의 질서가 확립된 대그룹 계열회사에서 사장의 방침에 일반 사원들이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왼쪽)과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 /조선일보 DB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왼쪽)과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 /조선일보 DB
특히 한화 그룹의 김승연 회장은 그룹내에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20대 후반에 총수 자리에 올라 계열사 사정을 전문 경영인 이상으로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의리경영’을 내세워 전문 경영인들의 입지를 넓혀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1994년 형제간 분쟁이 한창일 때도 대부분의 원로 경영인들은 형인 김승연 회장 편을 들어 그룹이 흔들리지 않도록 했었다. 김 회장이 몇차례 검찰에 불려 다니는 등 경영 공백이 있을 때도 전문 경영인들이 잘 대처해 위기를 넘기곤 했다.

그러나 이번 주 사장의 행태는 김승연 회장을 당혹하게 만들고 있다. 주 사장은 전문 경영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을 최근 보여주고 있다. 주 사장은 취임하면서부터 온갖 화제를 불러왔다. 주 사장은 취임 초기 450명의 직원을 내보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한 바 있다. 당시 남은 직원들이 사기저하를 걱정하자 간담회를 통해 "내가 왜 여러분의 동기부여를 해야 하나"며 "나는 여러분을 낳지 않았다"는 말을 남겨 직원들을 긴장시킨 바 있다. 주 사장은 이외에도 거침없는 행보로 증권가에 많은 얘기를 양산했다.

특히 그가 도입한 ‘과당 매매 제한’과 ‘매도 리포트 확대’는 증권가 뿐 아니라 투자자 들 사이에서도 찬사를 받는 부분이다. 과당매매 제한이란 주식 매매 회전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이에 대한 지점의 수익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다. 그동안 증권업계에서는 지점의 직원들이 수수료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고객들이 거래를 자주 하도록 유도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투자의 정석은 튼튼한 기업에 장기투자하는 것인데, 장기투자를 할 경우 매매를 자주 하지 않아 증권사 수입이나 성과급을 받는 직원들의 수입은 늘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테마주처럼 주가변동이 심한 종목에 자주 거래를 하도록 권하고 이 과정에서 고객들은 수익을 별로 내지 못한채 증권사에 수수료만 내게 된다는 비판이있어 왔다.


‘매도 리포트 확대’란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내는 보고서 중 ‘매도’를 권하는 보고서를 많이 쓰도록 한 것이다.증권사 리포트는 고객이 도움이 되도록 주가가 떨어질 것 같으면 그 이전에 해당주식을 매도하도록 권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한국 증권사들은 매도 리포트를 거의 내지 않는다. 매도할 상황에서도 여전히 ‘매수’ 라고 한 뒤 목표주가를 내리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매도리포트를 낼 경우 해당 회사나 주주들의 항의가 잦기 때문이다. 영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증권사 입장에선 타협하고 넘어가는 것이 관행처럼 됐다. 하지만 증권사 고객 입장에선 장기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주 사장은 바로 그러한 점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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