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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에게 詩적 감성을 전하고 싶어, 작품에 화려한 색채 고집"

입력 : 2015.10.10 03:05

세계 디자인계 巨匠 알레산드로 멘디니, 동대문디자인플라자서 전시회

흑백만 썼으면 우울증 걸렸을 것
멕시코·쿠바처럼 강렬한 색채쓰는 국민, 가난해도 행복… 색채가 바로 에너지야

여성의 마음으로 디자인한다
여성 마인드로 작업하면 감성적이 되고 너그러워지고 친절해지더라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Mendini·84)는 지난 15년간 한국을 스물다섯 번쯤 방문했다. 한국 언론과 인터뷰는 셀 수 없이 많이 했다. 지난 7일 서울 DDP에서 그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한국 독자들이 당신에 대해 대체 뭘 더 궁금해할까"였다. 멘디니는 "걱정하지 마. 나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매번 다른 거짓말을 하니까"라며 껄껄 웃었다.

멘디니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양팔을 기지개 켜듯 들어 올리는 여성 모양의 와인따개를 본 적은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1분에 하나꼴로 팔린다는 이 와인따개 '안나 G'가 바로 멘디니의 작품이다. 그는 지난 8일 개막해 내년 2월 28일까지 DDP에서 열리는 '알레산드로 멘디니 전―디자인으로 쓴 시(詩)' 개막식 참석차 방한했다.

자신의 대표작 ‘프루스트 의자’에 앉은 멘디니.
자신의 대표작 ‘프루스트 의자’에 앉은 멘디니. 그는 “내 작품은 각각의 개성이 너무 강해 하나씩 떨어뜨려 놓아야 보기 좋다. 여러 개가 한데 모여 있는 걸 보면 정신이상자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집에도 내가 디자인한 작품이 많이 없다”고 했다. / 김지호 기자
"작품은 자식 같지만 알아서 제 갈 길 가야"

―건물과 가구, 램프 등 수많은 작품을 디자인했지만 대중은 와인따개만 기억한다. 억울하지 않은가.

"사실 유감스럽다. 다른 작품 중에서 걔보다 좋았던 것도 있는데 운이 없었던 거지."

―그럼에도 트레이드 마크가 있다는 건 디자이너에게 좋은 일 아닌가.

"많은 디자이너가 자기 작품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 같다. 나는 내가 디자인한 작품들을 다 자식처럼 여긴다. 그런데 일단 세상에 나오고 나면 그다음엔 자기들이 알아서 길을 가는 거다. 작품의 사후 관리 측면에서 나는 좋은 아버지가 못 되는 것 같다."

―당신 '자식들' 중 가장 자신 있는 것은.

"1994년 설계한 네덜란드 그로닝거 미술관이다. 미술관이다 보니 그 안에 내 작품을 많이 넣을 수 있어서 내 작품들의 '엄마' 역할을 한다. '안나 G'도 그때 탄생한 거다. 그 와인따개는 원래 그 미술관 개막식에 참석한 기자들 선물용으로 만든 것이었다."

1970~80년대 멘디니는 세계 디자인계의 대표적 급진주의자였다. 그는 '기능적인 것이 아름답다'는 당시 유럽의 기능주의를 비판했다. '독창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포스트 모더니즘적 세계관을 반영해 '리디자인(Re-Design)'을 주창했다. 전통을 따른 바로크 스타일 의자에 형태의 변형 없이 수많은 색점만 찍어 내놓은 '프루스트 의자'(1978)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멘디니 철학을 반영하는 대표작이다. 멘디니는 "그 의자는 곧 나 자신이다"라고 했다.

멘디니의 대표작 와인따개 ‘안나G’(왼쪽)와 ‘알레산드로 M’ 커플.
멘디니의 대표작 와인따개 ‘안나G’(왼쪽)와 ‘알레산드로 M’ 커플.
 ―의자가 곧 당신 자신이라니?

"그 의자를 디자인한 시기의 나는 '옛날 걸 완전히 새롭게 바꾼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공장에 가서 옛날 스타일을 베낀 의자를 구해 그 위에 시냐크(프랑스 신인상주의 화가)처럼 점을 찍어 보았다. 시안(試案)도 없이 아이디어 자체를 바로 옮겼더니 명확하게 '이게 뭐다'라고 하기 힘든 작품이 나왔다. 그런데 그게 바로 나였다. 나는 기업을 위해서는 '제품'을 디자인했지만 그 의자는 '글'을 쓰듯 표현했다. 그렇게 해서 '스토리'가 있는 의자가 탄생했다."

"55년째 일하지만 아직도 두렵다"

'스토리'는 멘디니 디자인의 핵심이다. '안나 G'는 여자친구가 기지개 켜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 링과 직선으로 이루어진 조명 '라문 아물레토'는 손자와 태양, 달, 지구 이야기를 하던 중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조명의 빛이 손자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멘디니의 제품과 함께 그에 얽힌 스토리도 향유한다.

―'사람들이 이번에 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싫어하면 어떡하지'라는 부담은 없나.

"내 작품이 모두 다 유명해지는 건 아니다. 일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이 쉬운 건 아니다. 그래서 나도 사실은 '자신 있게 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한다. 55년째 일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은 '도전'이다. '내가 여기서 요만큼만 가야지' 하면 확신이 생기는데 '여기서 저 멀리까지'라고 하면 겁을 먹게 된다. 한 번도 확신을 가지고 멀리까지 가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내 삶이 앞으로도 잘 흘러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나이 80세를 훌쩍 넘겼는데 '늙음'이 아이디어를 쇠잔하게 하진 않나.

"(한참 침묵 후에) 아이디어라는 건 전등처럼 스위치를 켜면 반짝하고 들어오는 게 아니다. 나는 항상 요즘 트렌드는 뭔지, 사람들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는지를 듣고 보고 연구하면서 업데이트한다.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라서 어느 순간이 되면 다시 아이와 같아지는 것 같다. 항상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걸 찾으려고 노력한다."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나.

"소식(小食)하고 고기는 조금만 먹는다. 책을 많이 읽고 요가도 한다. 여자친구도 많다(웃음)."

"작품에 시적 감성 주고 싶다"

멘디니는 밀라노 출신이다. 아버지는 변호사, 어머니는 미술품 컬렉터였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후 30세 때부터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일했다. 건축 잡지 '카사벨라' '도무스' 편집장을 지내며 디자인 담론을 이끌기도 했다. 그는 줄곧 디자인의 상업주의를 배격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디자이너로 꼽힌다.

―삼성전자, LG전자, 롯데카드 등 수많은 한국 기업과 협업했다. 최근엔 SPC 창립 70주년 기념제품을 디자인했는데 한국 기업에 줄 아이디어가 아직도 남아 있었나.

"SPC는 역사가 오래됐지만 디자인 정신은 굉장히 젊은 기업이다. 제품이 아니라 작품이라 생각하면서 즐겁게 작업했다. 눈, 코, 입이 있는 캐릭터도 만들었는데 누가 알겠나, 나중에 걔가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되어 막 움직일지."

―디자이너에게 상업적 성공이란 자본에 종속될 위험이 있다는 걸 의미하지 않을까.

"글쎄. 운 좋게도 내 클라이언트 중에선 자본의 힘으로 디자이너를 휘두르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기업과 디자이너가 일하는 것은 결혼이랑 똑같다. 양쪽이 잘 맞아야 성공하는 것이다. 나는 기업과 일할 때면 항상 기업이 남자, 내가 여자라고 생각하고 작업한다."

―스스로를 여자라고 생각한다?

"한국 남자만큼은 아니지만 이탈리아 남자들에게도 남성 우월 의식이 있다. 혼신을 다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할 때엔 여자가 돼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한다. 그런 마인드로 작업하면 좀 더 너그러워지고 감성적이 되며 친절해진다. 남자들은 전쟁이나 할 줄 알지 다른 걸 잘 못한다."

네덜란드 그로닝거 미술관.
네덜란드 그로닝거 미술관.
SPC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멘디니가 디자인한 제품들
SPC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멘디니가 디자인한 제품들 / SPC 제공

 ―기능주의를 비판했는데 예쁘기만 하고 쓸모없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

"기능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주의에 감동과 감성이 결합되었을 때 좋은 작품이 된다는 이야기다. 내 철학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너무 기능적인 것보다는 좀 시적이고 감성적인 작품을 좋아한다."

―모던한 단색조 디자인이 유행할 때도 화려한 색채를 고집해 왔다.

"내 작품에 시적인 감성을 주고 싶어서다. 만일 내가 흰색과 검정만 썼다면 우울증에 걸렸을 거다. 멕시코나 쿠바처럼 강렬한 색채를 쓰는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해도 행복하다. 색채가 굉장한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색조를 선호하는 북유럽 국가들의 자살률은 매우 높다. 나는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면서 자살을 생각하기보다는 행복하길 바란다."

―성품도 작품도 유머러스하다. 유머의 비결은.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게 마련인데 '절대로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유머가 없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얼마든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거장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이야기인가.

"남들이 일하는 것처럼 나도 일할 뿐이다. 남들은 나이만 보고 나를 대단한 사람 취급하지만 나는 젊더라도 훌륭한 사람 앞에선 항상 시험을 보는 것처럼 작아진다."

인터뷰를 끝내고 "꼭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 말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나도 15년간 기자로 일했다. 네가 내게 던진 질문들을 똑같이 돌려주고 싶다. 어때, 한 시간 반쯤 걸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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