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7.21 15:19 | 수정 : 2015.07.24 11:40
요즘 경남 진해(鎭海)에서는 때아닌 욱일기(旭日旗) 논란이 한창이다. 이명박 정부 때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진해시(市)’에서 ‘창원시 진해구(區)’로 격하된 진해는 일제 때 조성된 군항(軍港)도시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세 개의 원형로터리를 중심으로 도로가 방사상으로 뻗어있는 한반도에서 보기 드문 계획도시다.

문제는 이 방사상 도로망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일제 침략의 상징인 욱일기처럼 보인다는 것. 특히 진해 구도심 한가운데 있는 중원로터리는 이 같은 논란이 유독 심하다. 원래 중원로터리에는 작은 거북선과 함께 시계탑 분수대가 있었는데, 지난 2007년 당시 진해시장이 로터리 가운데 있던 구조물을 철거하고, 밋밋한 잔디광장을 조성해 버린 것이다. 이에 하늘에서 중원로터리를 내려다보면 그 모양새가 욱일기와 영 판박이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중원로터리. /구글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중원로터리. /구글
이에 요즘 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광장 가운데 높은 탑을 세워 태극기를 게양하자” 등의 주장이 뒤늦게 쏟아지고 있다. 이에 맞서 “방사상 도로망은 그 당시의 흔한 도시설계 기법 중 하나일 뿐이므로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진해구를 관할하는 통합 창원시 역시 이런 여론의 흐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실 이런 논란은 중국에서도 이미 있었던 일이다. 일제가 점령통치했던 동북3성(만주)을 중심으로는 다롄(大連), 선양(沈陽), 창춘(長春) 등에도 이 같은 방사상 도로망을 갖춘 계획도시가 흔히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게 욱일기 논란을 비껴나갔을까. 개명(改命)과 동상이 그 비결이다. 일제의 흔적이 남아있는 광장이름을 중국식 이름으로 바꿔 버리고, 광장 한가운데 있던 원래 동상을 철거하거나 새로 세우는 식이다.

랴오닝성의 성도(省都) 선양의 중산(中山)광장이 대표적이다. 선양 도심 한가운데 있는 중산광장은 러일전쟁 직후인 1913년 일제가 조성한 ‘중앙광장’이 모태다. 이후 일제는 1919년 중앙광장에 ‘나니와(浪速)광장’이란 이름을 붙였다. 나니와는 러일전쟁 때 일본 제국해군을 지휘한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 제독이 이끈 함정이다. 청일전쟁(1894년)때 포문을 연 함정으로, 러일전쟁 때도 적지 않은 활약을 했다. 나름 중국에는 치욕적인 이름인 셈이다. 그리고 광장 한가운데는 오벨리스크 형태의 ‘일로전쟁(러일전쟁)기념비’를 세웠다.

이후 1945년 일제가 패망한 후 선양을 접수한 국민정부는 광장의 이름을 국부 쑨원(孫文)을 뜻하는 ‘중산(中山)광장’으로 바꾸고, 광장 한가운데 있던 일로전쟁기념비를 뽑아 버렸다. 이후 문화대혁명이 한창일 때인 1969년에는 중국공산당은 중산광장의 이름을 ‘홍기(紅旗·붉은 깃발)광장’으로 바꾸고, 광장 한가운데는 루쉰미술학원(대학)에서 설계한 초대형 마오쩌둥(毛澤東)의 동상을 세웠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다음에는 광장 이름을 원래의 ‘중산광장’이란 이름으로 회복시켰지만, 마오쩌둥의 동상은 지금도 그대로 중산광장에 남아있다.
마오쩌둥의 동상이 서있는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중산광장. /바이두
마오쩌둥의 동상이 서있는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중산광장. /바이두
랴오닝성의 입구인 항구도시 다롄에도 ‘중산광장’이란 같은 이름의 광장이 있다. 10개의 방사상 도로의 한가운데 원형 광장이 조성된 것은 제정 러시아가 다롄을 다스릴 때인 1899년이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방사상으로 조성한 원형 광장으로, 원래 이름은 ‘니콜라예프 광장’이었다. 니콜라예프는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이름이다.

이후 일제는 러일전쟁으로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다롄을 점령한 다음, 니콜라예프광장을 ‘대광장(大廣場)’이란 이름으로 바꿨다. 그리고 광장 가운데는 초대 관동(關東)도독을 지낸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의 동상을 세웠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 일본 제국육군을 이끌고 활약한 오시마 요시마사는 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일가친척뻘이기도 하다. 이후 국민당은 다롄을 수복한 직후인 1946년, 광장 이름을 국부 쑨원의 호를 따서 ‘중산광장’이라고 바꾼 뒤, 오시마 요시마사의 동상 역시 철거해 버렸다. ‘중산광장’이란 이름은 중국공산당이 다롄을 접수한 후에도 같은 이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중국 랴오닝성 다롄의 중산광장. /바이두
중국 랴오닝성 다롄의 중산광장. /바이두
지린성의 창춘에도 인민광장이 있다. 창춘은 일제의 괴뢰정권인 만주국(滿洲國)의 수도로, 과거 ‘신경(新京)’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창춘의 중심에도 인민광장이 있는데, 원래 이름은 ‘대동(大同)광장’이었다. ‘대동’은 만주국의 개국 연호다. 이후 창춘의 대동광장은 1945년 스탈린의 옛 소련군이 진주한 다음 ‘스탈린광장’이란 이름으로 바꿨다가, 장제스(蔣介石)의 국민군이 진주한 다음에는 장제스를 뜻하는 ‘중정(中正)광장’으로 바꿨다. 이후 중국공산당이 점령한 다음에는 ‘인민광장’이란 이름으로 이름표를 바꿔 달았다. 광장 가운데는 반파시스트전쟁(2차 세계대전)때 중국 동북지방을 해방시키기 위해 희생한 23명의 옛 소련 전투기 조종사들을 기리는 전투기 모형의 ‘소련홍군열사기념탑’이 여전히 서있다.

현재 진해에서 문제가 되는 세 개의 로터리 중 북원로터리와 남원로터리에는 각각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백범 김구 선생의 시비(詩碑)가 서있어 그나마 논란이 덜하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중원로터리에도 일제에 맞서 싸운 안중근이나 윤봉길 의사 같은 독립투사들의 동상을 세워보면 어떨까. 역사적 잔재 처리에도 중국식 실용주의를 도입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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