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7.15 15:16 | 수정 : 2015.07.15 15:17
조선시대 사람들도 부부싸움을 했을까?

세상에 싸우지 않고 사는 부부가 어디 있을까? 한날한시에 태어나 거의 한 몸처럼 자란 쌍둥이들도 틈만 나면 서로 싸우는데, 전혀 다른 부모와 가정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부부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산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젊어서 결혼하나 늙어서 결혼하나 최소한 10년은 정말 지겹도록 싸우는 듯하다. 그러면서 조금씩 서로 적응하며 인생의 단짝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禮)를 중시했던 조선시대 부부들도 서로 싸웠을까? 당연히 그들도 오늘날 사람들 못지않게 치열하게 싸우며 살았다. 특히 가부장제가 정착하기 이전인 조선 전·중기엔 부부들이 ‘애절’하게 사랑했던 만큼이나 ‘치열’하게 싸우기도 했다. 다만 부부싸움의 주요 원인은 과거와 현재가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현대는 개인중심 사회라 부부간의 성격(생활방식, 가치관)이나 경제, 성(性), 집안 등의 문제로 많이 싸운다. 반면에 조선시대는 가족공동체 사회였기 때문에 개인적인 문제보다 공동체적인 문제로 많이 싸웠다. 특히 남편의 집안일에 대한 무관심, 다시 말해 살림살이나 자식교육 같은 가사(家事)를 돌보지 않아서 많이 싸웠다. 예컨대 조선 중기 오희문(1539~1613)의 일기인『쇄미록』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1596년 10월 4일. 아침에 아내가 나보고 가사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한참 동안 둘이 입씨름을 벌였다. 가히 한심스럽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부부싸움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남편의 외도였다. 남편이 몰래 첩을 두거나 기녀를 상대하는 등 외도를 하자, 그에 대한 배신감이나 실망감을 느낀 아내가 강력히 저항하면서 부부싸움이 크게 벌어졌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이문건(1494~1567)의 일기인『묵재일기』를 들 수 있다.

“1552년 10월 5일. 아내가 지난밤에 해인사 숙소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물었다. 기녀가 곁에 있었다고 대답하니, 크게 화를 내며 욕하고 꾸짖었다. 아침에도 방자리와 베개 등을 칼로 찢고 불에 태워버렸다. 두 끼니나 밥을 먹지 않고 종일 투기하며 욕하니 지겹다.”
김희겸의 <석천한유도> /예산 전씨 종가 소장
김희겸의 <석천한유도> /예산 전씨 종가 소장
아내를 두려워하는 남자들

조선 전·중기엔 처가살이 시대로 여권이 제도적, 관습적으로 보상되어서인지, 아내가 남편에게 학대를 당하는 이른바 ‘매 맞는 여자’에 대한 기록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반대로 남편이 아내를 두려워하는 외처가(畏妻家) 혹은 공처가(恐妻家)에 대한 기록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서거정(1420~1488)의 『태평한화골계전』에 수록된 이야기 한 편을 들어보자.

어떤 대장이 있었는데, 아내를 몹시 두려워하였다. 하루는 교외에서 홍기와 청기를 세워놓고 휘하의 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아내를 두려워하는 자는 홍기 아래로 모이고,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청기 아래로 모여라!”
군사들은 모두 홍기 아래로 갔다. 그런데 유독 한 군사만이 청기 아래로 가는 것이었다. 대장은 그 군사를 장하게 여기며 칭찬하였다.
“너야말로 진정한 대장부로다.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아내를 두려워한다. 나도 대장으로서 백만 대군을 이끌고 전장에 나서면 사력을 다해 싸우지. 화살과 돌이 빗발쳐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다. 허나 집안에만 들어가면 대장으로서의 위엄을 지키기는커녕 도리어 아내에게 제압당하고 만다. 근데 너는 대체 어떻게 처신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그러자 군사가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내가 항상 제게 주의를 주었습지요. ‘남자들은 셋만 모이면 반드시 여색을 얘기하기 마련이오. 그러니 세 사람 이상 모이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마시오!’. 저 홍기 아래를 보니 모인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지요. 그래서 그리로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말에 대장이 길게 탄식하며 말하였다.
“아! 정녕 이 세상엔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한 명도 없단 말인가.”<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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