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5.22 10:29 | 수정 : 2015.05.22 10:36
우리는 사법제도 시찰이라는 명목으로 호주를 공식 방문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대사관을 통하여 호주 법무부장관실을 예방했다. 호주 법무부장관실에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장관실은 우리의 변호사 개인 사무실 크기보다 작았고, 사무실 한쪽에 책상 하나와 의자만 있었다. 책상과 창문 옆에 대학교수 연구실같이 많은 책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우리네 관청 사무실 같이 소파는 있지도 아니했다. 우리 일행이 들어가자 직원이 손님 숫자에 맞춰 접는 의자를 장관 책상 앞에다 갖다 놨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 책상을 사이에 커피를 마시며 장관과 대화를 했다.

당시 호주의 국민소득은 우리의 두 배가 넘는데도 장관실은 그렇게 검소하게 차려 놓은 것을 보니 부끄러웠다. 우리는 소위 벌금으로 조성된 예산을 갖고 법원, 검찰, 경찰이 서로 경쟁적으로 청사를 크게 짓고 고급 집기로 사무실을 화려하게 꾸민다. 우리의 상황을 생각하니, 하루 속히 호주의 좋은 점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호주에서 배웠던 점은 또 있다. 법대로 나라를 운영하려는 정신이었다. 호주는 농업국가라 외국에서 농산물을 반입할 수 없게 돼 있다. 농산물을 통하여 병균이 호주에 옮겨올까 걱정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호주 비행기를 홍콩에서 타고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을 때, 승무원이 승객들을 못 내리게 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소독복을 하얗게 입은 사람들이 비행기 안에 들어오더니 승객들을 향하여 분무기를 뿜어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깜짝 놀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혹시 승객들 몸에서 병균 등이 옮아올까 봐 미리 소독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만큼 외국에서 병균이 전염될까 염려해 조치를 취하는 나라이니 과일 등 농산물은 일체 반입이 금지돼 있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얼마 전 호주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여 식사 후 후식으로 한국 배를 대접했는데, 배 맛이 어찌나 달고 물이 많고 연하고 맛이 있었다. 맛없고 딱딱한 호주산 배만 먹던 호주 총리가 너무 배 맛이 좋다고 감탄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배 두 짝을 선물로 보내라고 하여 호주 총리가 탄 비행기에 배 두 상자를 실어 보냈는데 호주공항 검색대 직원이 배를 통관시킬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당시 대통령의 사위인 호주 대사가 대통령에게“공항에서 배를 통관을 안 시켜주니 어떻게 했으면 좋으냐?”고 보고했다가 대통령에게서 “야! 대사가 돼 가지고 배 한 짝도 통과 못 시키느냐?”고 야단을 맞았다.

호주의 공항 직원에게 “이것은 우리나라 대통령께서 당신네 총리에게 선물한 것이니 통관시켜 달라”고 사정을 했다. 하지만, 담당직원은 “배는 법률상 통관시킬 수 없으니 누구의 선물이든 우리는 절대로 통관시킬 수 없다”고 버티는 것이었다.

우리 대사관 직원들이 그 자리에서 배를 폐기 처분하면서 화가 나서 “이 자식아, 이 배가 얼마나 맛있는지 먹어보기나 해라”고 말하면서 배를 한 개 깎아 주자 그 담당직원도 배를 먹어보더니 “원더풀”을 연발하며 배를 먹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법이야 어떻게 됐든지 대통령이 시키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풍토에서 살아왔다. 우리 대통령이나 대사관 직원들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으나 우리도 선진국이 되려면 이러한 악습(惡習)은 빨리 고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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