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유학파 열등생' 어떻게 한국의 엘리트가 됐나

입력 : 2015.05.16 03:04

6년간 美 유학생 50명 인터뷰… 12년 뒤 만나 변화된 모습 비교

연구보다 지식 수입에 급급한 美 유학파 우대하는 한국 사회
지식인들, 사회 비합리성 비판… 자신이 속한 대학 문제는 외면

'지배받는 지배자'
지배받는 지배자|김종영 지음|돌베개|318쪽|1만6000원

김종영(43)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1999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UIUC) 박사 과정에 들어간 뒤부터 유학생 5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지방 전문대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지만 직장 내 차별 때문에 힘들게 유학을 결심한 동료, '여학생은 박사 과정에 받지 않겠다'는 국내 대학 지도교수의 냉대에 유학을 떠나온 여학생까지 사연은 다양했다.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열등한 유학생'이자 학문적 주류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의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유학 동기와 생활, 포부까지 상세하게 묻다 보니 인터뷰는 6년 가까이 걸렸다.

12년이 지난 뒤인 2011년 김 교수는 당시 인터뷰했던 유학생들의 궤적을 다시 뒤쫓기로 했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수소문하고, 한국과 미국을 비행기로 왕복하는 과정을 통해 20명을 다시 만났다. 내친김에 4년간 60명을 추가 인터뷰해 이들 유학생의 삶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추적했다.

컴퓨터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한 유학생은 실리콘밸리의 세계적 IT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계약 보너스 30만달러(3억원)에 연봉은 16만달러(1억6000만원). 수영장이 있는 넓은 단층집에 사는 그의 모습은 '아메리칸 드림' 그대로였다. 개중에는 귀국 이후 자리를 잡지 못해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던 유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국내외 대학과 기업에서 자리를 잡은 엘리트로 변모해 있었다.

김 교수가 최근 펴낸 '지배받는 지배자'는 10여년의 시간차를 두고 미 유학생의 사회적 궤적을 추적한 노작(勞作)이다. 2012~2013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은 7만여명으로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3위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의 유학 동기나 계층 변동 과정을 심층 면접을 통해 살펴본 사례는 드물었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미 유학파 지식인을 '지배받는 지배자'라고 명명(命名)했다. 이 개념은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부르디외는 지식인이 사회의 지배층에 속하지만, 자본가 계층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모순적 집단이라는 의미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 반면 김 교수는 미 유학파 지식인들이 미 대학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지배받는 지배자'라고 불렀다.

미국 유학생 국가별 숫자
/토픽이미지
김 교수 자신도 미 유학파 출신. 그렇다고 미 유학생들을 호의적이거나 온정적으로만 묘사하지는 않는다. "미 유학파 지식인은 미국과 한국의 학문 공동체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침으로써 어디에서 자신의 연구와 삶을 헌신할지 고민한다" 같은 구절이 대표적이다. 미 유학파가 학문의 '생산자'가 되기보다는 '수입상'이 되는 데 급급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국내 대학교수 임용 때 미 유학파는 국내 박사 학위 소지자들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국내 통계 자료를 보면, 사회학·행정학 등 일부 전공의 경우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의 교수진에서 미국 박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77~90%에 이른다. 한국 박사의 전임 교수 비율이 16~57%에 머물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학벌은 학사와 박사 학위로 이중적으로 서열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국내 명문대에서 학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명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미 유학파 우대 원인을 한국 지식인 사회의 '이중성'에서 찾는다. "한국 지식인들은 한국 사회의 비합리성을 끈질기게 비판했지만, 정작 아이러니하게 진보든 보수든 자신이 속한 대학과 지식 공동체를 가혹하게 비판하고 변화를 요구한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다.

기존의 종합대에서 '연구 중심 대학'으로 재편되고 연구 경쟁이 전국적 차원에서 일어날 때 대학 풍토도 달라질 것이라는 그의 결론은 어쩌면 상식적이다. 문제는 실천일 터. 그는 책의 저자 약력에 자신의 출신 학교를 명기하지 않았다. 대신에 '지식정치와 사회운동' '근대와 권력 정경' '미친 지식' 등 향후 집필할 책의 제목을 빼곡하게 적어놓았다. '학문적 성과가 학벌에 앞선다'는 그의 믿음은 적어도 언행일치(言行一致)라는 기준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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