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5.11 11:35
당시 검사들의 해외 연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하나는 일년의 기간을 정하여 주로 젊은 검사들이 그 곳 법 제도를 연구하기 위하여
그 곳 대학에 가서 연수를 받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검사들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약 2주간의 단기간 해외 여행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1984년 호주 시드니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시드니에 있는 동안 시드니 주재 한국 공사의 안내로 한국 교포가 하는 “한국의 집”이란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한 일이 있는데, 마침 바깥주인은 한국에 볼 일이 있어 가고 여 주인만이 우리를 친절히 맞아 식사를 맛있게 하였다. 식사 중에 시드니 주재 공사가 ‘한국의 집’이 성공한 이야기를 들려주어 감명 깊게 들었다.

원래 ‘한국의 집’ 주인은 월남에서 장사를 하였는데 월남전이 끝나고 소위 ‘보트 피플’로 구사일생으로 보트를 타고 호주 시드니에 도착했다. 하지만, 돈이 한 푼도 없어 사업할 생각을 못하고 먹고 살기 위하여 구두닦이를 시작했다.

관청이나 은행이 밀집되어 있는 큰 빌딩 밑 주차장에서 자리를 잡고 구두를 닦았는데 주차장에 정차한 차 중에서 제일 고급차만 골라 주인이 보지 않는 사이에 차를 깨끗이 닦아 놓고 시치미를 뗐다. 차 주인이 일을 보고 차를 타려다가 자기 차가 깨끗한 것을 보고 누가 내 차를 닦았는를 알고자 했으나 알 수가 없었다. 차 닦은 사람에게 돈을 주려고 찾아도 정작 차 닦은 사람이 모른 체하여 그대로 가고 다음에 또 그 차가 주차해 있으면 주인이 안 보는 사이에 깨끗이 닦아 놓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차 주인은 돈도 안 받고 이렇게 매번 차를 닦아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의문과 호기심이 생겨 하루는 차에서 내려 차를 바라볼 수 있는 지점에 숨어 기다렸다. 드디어 주차장에서 구두 닦는 사람이 자기 차를 닦는 것을 보고 쫓아와서 “당신이 내 차를 매번 닦았소”하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하니 지갑에서 돈 백 달러를 꺼내어 내밀면서 “그 동안 내 차를 닦아주어 고마움의 표시로 주는 것이니 받으시오”했다.

구두닦이는 펄쩍 뛰면서 “아이고, 저는 차가 하도 좋아서 깨끗한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해서 닦은 것이지 돈 받으려고 닦은 것은 아닙니다. 돈을 거두어 달라”며 돈 받기를 거부했다. 차 주인은 “세상에 이런 천사 같은 사람이 다 있는가!”라고 감탄했다. 차 주인이 자기 명함을 내밀면서 “앞으로 나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찾아오시오”하고 가 버렸다.

구두닦이는 이런 식으로 고급 차만 골라 여러 사람의 차를 주인 모르게 닦아주고 받은 명함이 경찰청장, 은행장, 큰 사업가 등 쟁쟁한 명사들이었다. 그렇게 하여 시드니에 사는 저명인사들을 알아 놓고 은행장을 찾아가 “제가 이번에 빌딩을 사서 식당을 하려는데 돈을 빌려주실 수 있습니까” 물었다. 은행장은 그러지 않아도 무엇인가 도와줘야겠다고 생각 중에 잘 됐다 싶어 “당신 같은 성실한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성공할 것이니 잘해 보시오”라며 돈을 빌려줬다.

또 경찰청장에게는 식당허가를 부탁하여 ‘한국의 집’을 차렸다. 자기가 차를 닦아준 차주들에게 명함과 인사장을 돌리니 자연히 구두닦이에게 신세진 사람들이 손님을 몰고 왔다. 대번에 식당이 유명해져 시드니에서 성공했다는 것이다.

또한 공사가 호주의 고위 관리를 만나려면 일 개월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만나 주는데 ‘한국의 집’주인은 예고 없이 찾아가도 언제나 만나 주고 무슨 일이든지 ‘한국의 집’ 주인이 부탁하면 안 되는 일이 없어 ‘한국의 집 주인’은 공사 일백 명이 못하는 일을 혼자 해내는 민간 외교관이 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나는 그 집 주인 남자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으나 마침 한국에 들어가 있어서 못 만나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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