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4.29 10:04 | 수정 : 2015.04.29 10:21
<①편에서 계속>
중요한 점은 평안도에서 주화를 제작할 때 감독관으로 박강(朴薑)을 임시로 파견한 사실이다. 박강은 세종 27년(1445년) 3월부터 주화가 대량으로 사용되기 직전인 세종 29년(1447년) 6월까지 2년 3개월간 정부의 천거로 군기감에서 두 번째로 높은 책임자인 군기감 정(正)으로 임명돼 화약무기를 개발한 경험을 갖고 있는 세종의 대표적인 과학기술자였다. 그런 박강이 주화제작의 감독관으로 현지로 파견을 간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신기전을 제작해본 결과 신기전은 제작이 어려워서 실제로 제작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신기전의 제작을 감독할 수 없다. 박강이 현지에 주화 제작의 감독관으로 파견 간 것은 실제로 박강이 주화를 제작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박강이 군기감에 화기 개발 책임자로 있으면서 주화를 개량할 때나 대형주화를 개발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박강이 군기감정에 임명되었을 때 조선의 총포분야 기술수준은 이미 아주 높은 수준이었다. 최무선 때 중국의 총포를 모방해서 만들었지만, 세종 때 많은 연구로 총포에 화약을 넣는 약통 앞에 격목을 박아 화약의 폭발력을 최대화 시킬 수 있도록 하는 우리만의 독창적인 구조의 총포를 개발했다. 이 결과 천자화포(天字火砲)는 사정거리가 400~500보를 넘지 못했는데, 개량형 천자화포는 화약이 극히 적게 들고도 화살은 1300여 보를 가고, 한번에 화살 4개를 쏘매 다 1000보까지 날아가는 무기로 탈바꿈했다.
대신기전 약통. /채연석 박사 제공
대신기전 약통. /채연석 박사 제공
세종은 많은 관심과 지원으로 총포의 성능을 최상으로 발전시켰지만, 2%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27년(1445년) 3월 30일, 군기감에서 화기 개발을 지휘할 군기감 정을 추천하라고 지시했다. 세종은 추천 받은 박강을 임명했고, 새로운 화약무기 개발을 지휘하게 해 대주화를 개발을 지시했다.

박강이 군기감에서 주화를 개량한 사안은
1) 중주화에 소발화라는 폭탄을 부착해 사용했다.
2) 대형의 대주화를 새롭게 개발했다.
박강의 수결(手決). 예전에는 도장 대신 직접 붓글씨로 써서 결재했는데, 이를 수결이라 한다. /채연석 박사 제공
박강의 수결(手決). 예전에는 도장 대신 직접 붓글씨로 써서 결재했는데, 이를 수결이라 한다. /채연석 박사 제공
대주화는 직경 7.8㎝, 길이 23㎝에 2냥5전(69g)의 화약이 들어 있는 대신기전발화통을 400~500m 까지 날려 보내 자동으로 폭발시킬 수 있는 당시로는 위력적인 최신형 미사일이었다.

세조 6년(1460년) 11월 7일 박강이 사망하였을 때 실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박강은 성품이 정교(精巧)하고 기능(技能)이 많아서 처음에 벼슬하면서부터 항상 군기감(軍器監)을 맡아 판사(判事)에 이르렀고…(중략)…젊었을 때에 호협하여 모양을 잘 내고 명기(名技)를 많이 통했다.”
박강은 군기감에서 창의적인 발상과 노력으로 세계 최대의 종이 약통 로켓화기인 대신기전을 개발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의 우리 땅을 되찾고 위기를 기회로 바꾼 조선의 멋쟁이 로켓과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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