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카스 아줌마' 사라진 자리, '올빼미 아줌마'들이 채웠다

입력 : 2015.04.28 07:38
지난 22일 저녁 어스름이 깔린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뒤 공터. 다정한 남녀의 대화 소리가 가득하다. 빨간 코트에 화장을 곱게 한 50대 여성은 70대 남성을 ‘오빠’라고 불렀다.

남자가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동에 있는 내 땅이 팔리면 벼락부자 되는 거야. 당신도 좀 나눠줄게.” 여자가 반색했다. “오빠, 정말? 아유 잘 됐네.”

1시간쯤 흘렀을까. 여자는 다정하게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오빠, 나 가볼게. 다음에 또 봐.” 남자는 여자 핸드백에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을 넣어줬다. 혼자 남은 남자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요즘 만나는 ‘올빼미’야. 참 귀엽고 재밌어.” 쑥스러운 듯 남자는 허허 웃었다.
22일 밤 11시쯤 서울 종로3가 골목에서 빨간 외투를 입은 '올빼미 아줌마'가 말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와 팔짱을 끼고 걷고 있다./이벌찬 기자
22일 밤 11시쯤 서울 종로3가 골목에서 빨간 외투를 입은 '올빼미 아줌마'가 말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와 팔짱을 끼고 걷고 있다./이벌찬 기자
서울 낙원상가 뒤편과 종묘공원 일대에 몰리는 할아버지들을 상대로 성매매 하던 ‘박카스 아줌마’들이 최근 경찰 단속으로 많이 사라지면서 그 빈자리를 ‘올빼미 아줌마’들이 채우고 있다. 올빼미는 말벗과 가벼운 스킨십을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중년 여성들을 가리키는 종로 일대 할아버지들의 은어다. 저녁에 조용히 등장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날 낙원상가에서 만난 80대 최모씨는 올빼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녁 되면 얼굴에 하얗게 분칠한 늙은 여자들이 골목마다 꼬리를 살랑대며 서 있어. 단돈 만 원이면 1시간은 재미나게 얘기할 수 있어. 어찌나 깔깔깔 잘도 웃어대는지, 기분 좋으면 2만원도 쥐여주지. 립스틱이라도 하나 사라고…. 그냥 용돈이야, 용돈.”

최씨를 따라가 봤다. 무릎 관절이 안 좋다는 그는 절뚝거리며 천천히 걸었다. “이렇게 늙으니 누가 상대해주겠어…. 올빼미들 만나서 조용한 밤에 차 한 잔 마시고, 말도 주고받는 게 내 유일한 낙이야.”

포장마차들이 일렬로 늘어선 골목으로 들어서자 주변을 서성이는 50대 중후반 여성 10여명이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짙게 화장한 얼굴에 화려한 스카프로 한껏 멋을 냈다.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올빼미는 한 포장마차를 기웃대다 자신을 부르는 70대 남성의 손짓에 호들갑을 떨며 반가워했다.
지난 15일 밤 11시쯤 서울 종로3가 거리에 빨간 바지를 입은 '올빼미 아줌마'가 빗속에 서 있다. /이벌찬 기자
지난 15일 밤 11시쯤 서울 종로3가 거리에 빨간 바지를 입은 '올빼미 아줌마'가 빗속에 서 있다. /이벌찬 기자
다른 올빼미들도 거리를 지나는 할아버지들에게 손을 흔들고 말을 걸었다. 통통한 몸매의 올빼미는 한 할아버지의 손목을 잡고는 으슥한 골목으로 이끌었다. 최씨는 이날 처음 만난 올빼미 김모씨와 포장마차에 들어섰다. 소주 종이컵 1잔에 1000원씩 팔고 있었다.

둘은 1시간가량 소주잔을 기울였다. 최씨가 주로 말하고, 김씨는 맞장구를 쳤다. 김씨는 최씨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주기도 했다. 최씨는 주머니에서 화려한 꽃무늬 브로치를 꺼내 김씨에게 선물했고, 김씨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헤어질 때 최씨는 말했다. “김 여사, 다음에 또 봅시다.” 그는 김씨 손에 2만원을 쥐여줬다.

최씨는 올빼미와 데이트를 하는 사람들은 주로 포장마차나 심야 다방, 한식당을 찾는다고 했다. 간간이 모텔로 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1~2시간씩 대화하다 헤어진다고 했다. 그는 “몸 섞는 것보다 마음 나누는 게 좋다”고 했다.

매일 이 근처를 순찰한다는 한 경찰관은 “‘박카스 아줌마’가 예전에는 200~300명 정도 됐는데, 요샌 수십 명 수준으로 줄었다”며 “대신 연애하는 것처럼 어르신들과 손잡고 다니고, 산책하며 이야기를 하는 아주머니들이 늘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들이 올빼미를 찾는 이유는 단순했다. 정신적 외로움을 달랠 수 있고 ‘박카스 아줌마’보다 싼값에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 한 80대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이에 어딜 가서 여자를 만나 얘기를 하겠어. 대화가 안 통해도 좋으니 내 이야길 들어주는 여자를 만나고 싶은 게 남자의 마음 아니겠어?”

올빼미에게 잘 보이고 싶은 할아버지들 덕에 새로 생긴 풍경도 있다. 최근 낙원상가 뒤편 공터에는 1000~3000원짜리 ‘짝퉁’ 보석 장신구를 파는 수레형 가판대가 여럿 들어섰다. 주 고객층은 올빼미를 만나려는 할아버지들.

가판대 주인 이모(70)씨는 “나이가 들어도 여자는 선물 좋아하고 남자는 돈을 써야 하니, 주머니 사정이 변변치 않은 할아버지들이 여길 찾는다”고 했다. 할아버지들은 “선 보러 간다”며 반지나 팔찌, 목걸이를 사간다고 한다. 이날 이씨 가판대에서 40여명이 올빼미 선물을 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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