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4.17 06:00

별장 지으려고 소시민의 집을 집어삼키려는 권력자의 추악한 '괴력' 그려
물고 물리며 사람이 사람에게 불가항력의 고통 주는 세상을 차갑게 응시

부산영화제에서부터 화제가 됐던 ‘리바이어던’(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에서 러시아 영화의 저력을 느꼈습니다. 잔재주 따위 부리지 않으면서 세상의 가장 근원적 물음을 간단치 않은 스토리 속에 참신한 시각으로 녹여냈습니다.

영화의 중심엔 거대한 괴수(리바이어던)처럼 되어 버린 권력에게 짓밟히는 힘없는 개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재혼한 아내와 사춘기 맞은 아들과 함께 살아 가는 자동차 정비사 콜랴(알렉세이 세르브야코브)가 기가 막힌 일을 당합니다. 시장 바딤(로먼 마디아노브)이 호화 별장을 지을 터전으로 콜랴의 집 주변을 눈독 들이고는 뺏으려 합니다. 썩어빠진 권력자입니다.

콜랴로선 앉아서 당할 수는 없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친구를 불러 법으로 맞서 보려 합니다.하지만 법원이고 경찰이고 시청이고 뭐고 다 한통속으로 썩어빠진 사회에서 모든 몸부림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콜랴를 도와 주려던 친구는 공권력으로부터 살해 위협까지 받다가 쫓기듯 떠납니다. 콜랴 자신은 살인 누명까지 뒤집어씁니다. 지방 정부의 썩어빠진 권력자는 한 소시민이 일궈온 모든 것을 짓밟아 쑥대밭으로 만들어 갑니다.
탐욕으로 가득찬 권력자에게 자신이 평생 일궈온 집을 빼앗길 처지가 된 콜랴(알렉세이 세르브야코브)의 고민은 깊어 간다. 그는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우기로 한다.
탐욕으로 가득찬 권력자에게 자신이 평생 일궈온 집을 빼앗길 처지가 된 콜랴(알렉세이 세르브야코브)의 고민은 깊어 간다. 그는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우기로 한다.
영화는 탐욕스런 정치권력과 ‘공생’하는 법조계와 종교와 기업의 추잡함도 드러냅니다. ‘권력자의 꼭두각시’인 판사는 시장에게 맞서다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선 콜랴에게 중형을 선고합니다. 죄악을 꾸짖어야 할 종교는 더러운 권력자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면죄부 주기에 바쁘고, 기업 역시 권력과 한통속입니다.

시장은 못된 짓들을 저질러 놓고는 교회 예배에 참석해 기도합니다. 한국영화 ‘투 캅스’에서 썩어빠진 비리형사(안성기)가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서 ‘아버지, 아버지’를 외치며 기도하고는 “속죄 기도를 했더니 속이 다 시원하네!”라고 어이없는 말을 내뱉던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더러운 권력자는 심지어 교회에서 설교를 듣다가 자기 아들에게 나직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신께서는 모든 것을 내려다 보시고 있단다.” 후안무치의 극치입니다.
영화 '리바이어던'의 한 장면. 추악한 권력의 표본인 듯한 시장 바딤(로먼 마디아노브)이 선거운동을 확실히 하라면서 참모진들을 질책하고 있다.
영화 '리바이어던'의 한 장면. 추악한 권력의 표본인 듯한 시장 바딤(로먼 마디아노브)이 선거운동을 확실히 하라면서 참모진들을 질책하고 있다. "내가 선거에 떨어지면 알지? 너희 인생도끝이야!"라고 소리치는 모습은 조폭 집단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정치권력이라는 것, 혹은 힘있는 자들이 얼마든지 추악해질 수 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 본 사람이라면 ‘리바이어던’의 콜랴가 당하는 고통은 절절한 ‘우리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그 때문인지 어떤 이들은 이 영화를 오늘의 한국 정치 상황과 연결시켜 읽기도 합니다. ‘리바이어던’은 정치권력 비판 영화로만 머물지 않는다고 봅니다. 2시간 20분이나 되는 짧지 않은 상영시간 동안 이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세상의 진실은 좀더 넓고 깊습니다. 권력자와 소시민의 싸움뿐 아니라, 콜랴와 그 주변 인물들 사이에 얽히고 설키는 이야기는 삶의 씁쓸한 풍경들을 여러 각도로 펼쳐냅니다.

좌충우돌하며 새엄마 릴랴(엘레나 랴도바)에게 끝없이 대드는 콜랴의 사춘기 아들 로마와 릴랴의 풀리지 않는 갈등, 릴랴의 외도가 빚어내는 또다른 풍파들이 콜랴 집안을 휘감습니다. 인간에게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괴력 같은 일들이 닥치는 법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합니다. 종교마저도 그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고통에 빠진 콜랴가 신을 찾지만 신의 응답은 들리지 않습니다.
괴물 같은 거대 권력에게 한 개인이 짓밟히는 이야기인 '리바이어던'에서 스크린에 수시로 등장하는 거대한 고래의 뼈. 거대 괴물의 잔해 같기도 하고 혹은 갈갈이 찢겨 죽은 생명체의 앙상한 잔해 같기도 하다.
괴물 같은 거대 권력에게 한 개인이 짓밟히는 이야기인 '리바이어던'에서 스크린에 수시로 등장하는 거대한 고래의 뼈. 거대 괴물의 잔해 같기도 하고 혹은 갈갈이 찢겨 죽은 생명체의 앙상한 잔해 같기도 하다.
소시민 콜랴(알렉세이 세르브야코브)가 권력자에 맞서려고 하자 드디어 권력의 몽둥이질이 시작된다. 콜랴가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체포되고 있다. 그는 권력이라는 괴물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조금씩 빼앗기기 시작한다.
소시민 콜랴(알렉세이 세르브야코브)가 권력자에 맞서려고 하자 드디어 권력의 몽둥이질이 시작된다. 콜랴가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체포되고 있다. 그는 권력이라는 괴물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조금씩 빼앗기기 시작한다.

거역할수 없는 힘 앞에 인간이 무너지는 허망함을 보여주는 영화의 시선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흥분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습니다. 사태를 싸늘하게 응시하듯 관객들 앞에 펼쳐냅니다. 영화 종반부의 철거 장면이 압권입니다. 권력욕을 채우는 데 ‘방해물’이었던 콜랴를 감옥에 넣은 시장측이 거대한 중장비들을 동원해 한 사내의 삶의 터전을 광포하게 파괴할 때, 카메라 시점은 집안 거실 한가운데에 고정돼 사태를 담아냅니다.

평온한 주방 벽이 ‘꽝’하는 굉음과 함께 삽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립니다. 포크레인 삽날이 난폭한 공룡처럼 찍어대고 집어삼키고 짓부숩니다. 집안을 떠나지 않는 카메라는 순식간에 실내가 야외로 바뀌는 충격을 맛보게 하면서. ‘당하는 자’의 공포와 분노를 체감하게 합니다. 응시하는 시선의 싸늘함이 절정에 이릅니다. 인간이 살아 가면서 맞닥뜨리는 불가항력의 상황에 대한 절망감도 절절하게 느끼게 됩니다.

낯선 러시아 시골의 을씨년스런 풍광을 배경으로 했는데도,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를 가나 다 똑같다는 진실을 몸서리치게 느끼게 합니다. 카메라가 해안을 비출 때마다 등장하는 거대한 고래의 앙상한 뼈가 볼수록 의미심장합니다. 거대한 괴물 그 자체 같기도 하고, 짓밟혀 뼈다귀만 남기고 죽어 버린 힘없는 개인 같기도 합니다.

성경의 ‘욥기’에서 욥은 끔찍한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큰 고통의 수렁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시험에 든 것이죠. 욥은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라며 신을 원망합니다. 신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리바이어던과 같이 크고 무시무시한 괴물을 네가 제어할 수 있겠느냐?” 인간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이란 한계가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 주는 말입니다.

영화 ‘리바이어던’에는 추악한 권력에 대한 분노의 시선과 함께, 서로 물고 물리며 사람이 사람에게 불가항력의 고통을 주는 세상에 대한 성찰이 있다고 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삶의 어려움을 대부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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