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3.31 13:30 | 수정 : 2015.04.06 18:02
'아베의 괴벨스' 스가 요시히데는 누구?
“안중근은 일본의 초대 총리를 살해해 사형 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다”

듣기만해도 ‘피꺼솟(피가 거꾸로 솟는)’하게 되는 이 망언의 주인공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67) 일본 관방장관입니다. 관방장관이라는 직책은 우리나라에 똑같은 부처가 없어 다소 낯설게 느껴지지만, 스가는 아베 정부의 ‘입(口)’과 ‘머리(頭)’를 겸하는 인물입니다. 우리나라는 임명직인 청와대 대변인이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지만, 일본은 내각의 일원인 관방장관이 직접 정부를 대표해 브리핑에 나섭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마이니치 신문 제공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마이니치 신문 제공
관방장관은 총리와 내각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 전달자 역할을 하는데다, 매일 국민에게 얼굴을 비추기 때문에 ‘실세 2인자 ’이자 ‘차기 총리 후보 0순위’로 꼽힙니다. 실례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현 총리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前) 총리 등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의 관방장관 출신입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아베 정부의 미래를 알고 싶거든 스가의 입에 주목하라”는 말이 돌 정도로 스가 관방장관의 영향력이 막강한데, 우리나라 언론에는 자세하게 소개된 적이 드물더군요. 그래서 이번 육첩방 통신에서는 스가 관방장관이 어떤 인물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일본에서는 “정치를 하려면 ‘삼반(三バン)’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반(バン)으로 끝나는 일본어 세 가지 ‘기반(基盤)·간판(看板)·가방(カバン)’을 뜻하는데요. 즉 출신 배경을 뜻하는 기반, 학력과 외모를 뜻하는 간판, 정치자금을 보관하는 가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일본의 정계는 유독 세습 성향이 강합니다. 아베 신조 총리만 보더라도 작은 할아버지가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이며, 어머니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딸이지요. 아버지는 외무장관을 역임했고, 동생은 기시 집안의 양자로 들어가 참의원(參議員)이 됐습니다. 이처럼 ‘집안 짱짱한 도련님들’이 주름잡는 일본 정치계에서 스가는 삼반 중 하나도 갖추지 못하고도 철저한 자수성가로 ‘일본의 N0.2’가 됐습니다.

국회에 출석해 이야기를 나누는 아베 총리와 스가 관방장관. /마이니치 신문
국회에 출석해 이야기를 나누는 아베 총리와 스가 관방장관. /마이니치 신문
스가 관방장관은 1948년 아키타(秋田)현에서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일본 동북부에 위치한 아키타현은 지금도 47개 일본 전체 현 중에 가장 가난한 지역입니다. ‘개천의 용’을 꿈꿨던 스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무작정 도쿄로 향했습니다. 도쿄의 골판지 공장에 취직해 막노동과 숙식을 병행하면서 호세이(法政)대 법학부를 졸업했습니다. 이어 오코노기 히코사부로(小此木彦三郎) 중의원(衆議員) 비서로 11년 동안 일하다가, 1988년 요코하마 시의회 의원으로 처음 선출직에 진출했습니다. 다시 10년 가까이 지역구 기반을 밑바닥부터 다져온 끝에, 47세가 되던 1996년 요코하마 가나가와현 제2선거구에서 중의원으로 당선됩니다. 그동안 거쳐왔던 역경을 드러내듯 스가의 얼굴에는 ‘고생한 흔적’이 주름으로 남아있습니다.

너무 다른 성장배경 탓에 결코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스가와 아베 총리는 2000년대 초반 ‘대북(對北) 강경론’을 함께 펼치며 가까워졌습니다. 극우 성향에 서로 공감한 탓인지 스가는 아베에게 컴플렉스를 느끼기는 커녕 “어렸을 때부터 정치 가문에서 성장한 아베는 특별하다”며 먼저 다가갔고, 아베 총리의 1기 내각이 꾸려졌던 2006년에는 총무대신으로 발탁됐습니다. 아베 총리는 이듬해 사임해 1기 내각이 끝났지만, 스가는 아베가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다시 출마해 2기 내각을 출범시키도록 적극적으로 밀었습니다. 스가가 당시 출마를 망설이는 아베 앞에서 “총재 선거에서 져도 좋으니 다시 한번 정치가 아베 신조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세시간 동안 열변을 토하며 “지금 당장!”이라고 고함을 쳤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스가 관방장관의 선거 포스터. /자민당 홈페이지
스가 관방장관의 선거 포스터. /자민당 홈페이지
스가는 지금도 아베 정권에서 군기반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기 내각이 출범한 직후 처음 열린 각료회의에서 스가는 “역사 인식에 대해서 내각 전체가 통일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역사 관련 발언을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각료직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그러면서 공영방송인 NHK 주요 요직에 아베파(派) 인물을 앉히고, 아베에게 우호적인 보도가 나오도록 압력을 가하는 등 언론 장악에도 힘을 쓰고 있습니다. 아베 정부의 행보를 비판하는 반대파들은 “스가는 아베 정부의 괴벨스”라고 비난합니다.

스가의 생각은 저서 ‘정치의 각오’에서 보다 자세히 드러납니다. 이 책에서 스가는 “과감한 정치를 강조하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가슴에 묻고 걸어가겠다”고 합니다. 평화 헌법을 개정해 지금의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만드려는 그의 야심이 읽히는 대목입니다. 스가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한 고노 담화조차 부정하며 “정부 차원에서 일본의 명예를 회복하길 원한다”고 말하는 등 ‘전범국가 일본’의 과거를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에는 스가 관방장관이 또 어떤 발언을 쏟아내 동아시아 이웃 국가들의 마음을 멍들게 할지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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