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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습 美 대사들의 한마디

입력 : 2015.03.07 03:04

도쿄올림픽을 7개월 정도 앞둔 1964년 3월 24일. 도쿄 한복판 아카사카 근처 미(美) 대사관 후문 앞에서 장년(長年)의 백인 남성이 차에 올라타려는 순간 일본인 청년이 달려들어 날 길이 16㎝ 칼을 휘둘렀다. 오른쪽 허벅지를 깊이 찔린 남성은 즉시 병원으로 후송됐고 청년은 체포됐다. 찔린 사람은 지금도 미·일 동맹의 상징적 존재로 통하는 에드윈 라이샤워 대사였다. 라이샤워는 몇 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고 22일간 입원해야 했다.

▶그 4년 전인 1960년의 일본은 이른바 '안보(安保) 투쟁'으로 전쟁 같은 상황이었다. 미·일 안보조약 개정 문제로 대규모 소요가 발생하고 좌·우파 무력 충돌까지 일어났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일본 방문 준비를 하러 왔던 백악관 비서가 탄 차가 하네다공항 근처에서 붙잡혀 미 해병대 헬기로 구출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라이샤워는 그 여진이 계속되던 1961년 4월에 일본 대사로 부임했다. 하버드대학원에서 일본을 전공하고 나중에 일본인과 재혼했을 정도의 일본통이었다. 이 사람을 찌른 청년은 "내가 취직을 못 하고 있는 것은 미국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정신분열증을 이유로 기소되지 않았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사건 직후 일본 정부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초비상이 걸렸다. 총리는 바로 다음 날 미 대통령에 친서를 보내 사과했다. 우리로 치면 행정자치부에 경찰청을 합친 조직인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당시 일본 신문들은 '대일 감정 악화 우려'를 큰 제목으로 뽑으며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다'고 썼다.

▶라이샤워는 수술 때 수혈을 받은 뒤 "이제 내 몸에도 일본인의 피가 흐르게 됐다"고 했다. 이 한마디가 두 나라 관계를 더 탄탄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피'가 문제였다. 당시 일본은 수혈용 혈액의 97.5%를 매혈(賣血)로 충당했다. 라이샤워는 오염된 피를 수혈받아 간염에 걸렸다. 퇴원하자마자 하와이로 가 한동안 요양해야 했다. 그러고도 라이샤워는 "내가 그만두면 일본 사람들이 책임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일본에 돌아와 2년 5개월을 더 일했다.

▶북한에 여덟 차례 다녀온 적이 있는 종북(從北) 성향 한 극단주의자가 그제 주한 미 대사를 칼로 찔렀다. 칼날이 조금만 내려갔어도 치명상이 될 뻔했다 한다. 리퍼트 대사는 피습 9시간 만인 어제 오후 트위터에 영어로 '많은 분이 보여주신 성원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한글로 '같이 갑시다'고 썼다. 51년 전 라이샤워의 한마디를 떠올리게 한다.



신정록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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