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2.27 06:00

2차대전 때의 슬픈 가족사 파헤치는 유태인 예비 수녀의 旅程, 삶의 근원적 물음 건드려
흑백 화면과 연기, 음악까지 관통하는 절제의 미학, 강조할 것들을 더 강렬하게 드러내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이다’(Ida)를 보는 시간은 번잡한 세상을 잠시 탈출해 삶의 근원적 물음과 마주하는 여정(旅程)이 됐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짐 자무시 감독의 1984년작 ‘천국보다 낯선(Stranger Than Paradise)‘이 떠올랐습니다.

’이다‘는 한 여성의 정체성에 관한 모색, 신(神)과 구원과 믿음 등의 문제에 다가가고 있고, ’천국보다 낯선‘은 황폐해진 아메리칸 드림의 공간을 파헤치고 있으니 서로 조금 다른 영화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감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두 영화가 묘하게도 몇 가지 닮은 점이 있었습니다. 주인공들이 무언가를 찾아 계속 길을 가는 로드무비적 스타일을 취한 것도 공통적이지만,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 듯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은 일들이 화면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도 두 영화의 공통점입니다.

무엇보다도 닮은 건 두 영화 모두 일부러 흑백으로 찍었으며 플롯도 단순하고 영상 테크닉도 화려한 기교를 최대한 배제하고 심플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꾸밈을 배제한 작품 스타일은 자신의 정체성을 응시하려는 주인공 이다의 진지한 태도와 맞아떨어집니다. ‘이다’는 2013년 작품인데도 영화의 배경을 1960년대의 폴란드로 해 놓았습니다. 흑백 화면에서 펼쳐지는 동유럽 시골의 황량한 풍경들이 진짜 옛 필름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수녀원에서 정적인 생활을 하다가 유일한 혈육인 이모를 만나기 위해 수녀원을 나서는 이다(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 그녀의 앞에 충격적인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수녀원에서 정적인 생활을 하다가 유일한 혈육인 이모를 만나기 위해 수녀원을 나서는 이다(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 그녀의 앞에 충격적인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 ‘이다’는 어려서부터 고아로 수녀원에서 자란 여성의 정체성 찾기 여행을 따라갑니다. 수녀원에서 지내는 '안나(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는 수녀가 되기 직전 신에게 순종할 것을 서약하는 서원식(誓願式)을 눈앞에 두고 수녀님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습니다. “네겐 유일한 혈육으로 이모가 있으니 가서 뵙고 오라”는 것입니다. 수녀원을 나와 이모 ‘완다’(아가타 쿠레샤)를 만난 안나는 자신의 가족에 관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안나’가 사실은 유태인이며 본명은 ‘이다’라는 것, 그리고 이다의 부모님은 2차대전 때 살해됐다는 것입니다.

혼란에 빠진 이다는, 그 미친 시절에 부모가 누구 손에 어떻게 죽었는지 진실을 좀더 알고 싶어합니다. 부모님 묘지라도 만들어 드리려고 이다는 이모와 함께 부모님의 옛 고향을 찾습니다. 수십년 전 피의 역사들이 조용한 시골 마을의 증언을 통해 하나하나 드러납니다. 마침내 이다는 부모를 살해한 남자와 마주해 자신의 방식으로 그를 다룹니다. 가족의 유해를 찾아 묘지도 만들어 줍니다.
수십년 전 전쟁 속에서 빚어졌던 가족의 슬픈 역사를 함께 추적해 가면서 점차 가까와지는 이다(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와 이모 완다(아가타 쿠레샤). 영화‘이다’는 이처럼 많은 장면에서 주요 피사체를 화면의 가장자리로 치우치게 위치시켜 중앙을 텅 비운다. 세상의 주변을 맴돌며 삶을 고민하는 인물들의 처지를 표현하는 듯하다.
수십년 전 전쟁 속에서 빚어졌던 가족의 슬픈 역사를 함께 추적해 가면서 점차 가까와지는 이다(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와 이모 완다(아가타 쿠레샤). 영화‘이다’는 이처럼 많은 장면에서 주요 피사체를 화면의 가장자리로 치우치게 위치시켜 중앙을 텅 비운다. 세상의 주변을 맴돌며 삶을 고민하는 인물들의 처지를 표현하는 듯하다.
슬픈 역사와 묻혀졌던 가족사의 진실을 확인하게 된 이다와 이모의 마음에는 큰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이모는 아들의 과거사와 대면하고 영화 종반에 중대한 선택을 합니다. 놀라운 건 예비수녀 이다의 변화입니다. 엄숙하고 금욕적인 수녀원에서 갇혀 살던 그녀에게 바깥 나들이는 슬픈 가족사를 찾는 여정인 동시에 수녀원 담장 너머의 세상을 점점 알아가는 체험이기도 합니다.

오랜 수녀원 생활 끝에 처음으로 밖으로 나와 만난 사람인 이모는 하필이면 무척 ‘자유분방한’ 여성입니다. 젊은날엔 판사를 지냈다는데 법조인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고 지금은 술·담배에 쩔어 살면서 이 남자 저 남자를 집에 불러들여 방탕하게 삽니다. 이다는 그런 이모를 처음엔 별로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점차 이모를 이해하게 됩니다.

나중에 이다의 변화는 더 놀라운 경지까지 갑니다. 이다는 서원식에 앞서 “제가 아직 하나님을 맞을 준비가 안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밖으로 나온 이다는 담배, 술 등 수녀에게 금지된 것들에 도전합니다 길에서 히치하이킹을 한 것을 계기로 알게 된 남자와의 일은 ‘예비수녀’로서의 몸가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경지까지 갑니다. 과연 이다는 수녀가 되려는 생각을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입니다. 이다가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까 하는 궁금증으로 마지막 장면을 지켜보게 됩니다.
가족사의 슬픈 과거를 응시한 세속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다시 수녀원에 돌아온 이다(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 그녀에겐 깨달음으로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된 사람의 여유 같은 게 느껴진다.
가족사의 슬픈 과거를 응시한 세속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다시 수녀원에 돌아온 이다(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 그녀에겐 깨달음으로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된 사람의 여유 같은 게 느껴진다.
수녀원을 나와 혈육과 고향을 찾아 길을 떠났던 이다(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는 히치하이킹 하는 남자를 차에 태운다. 그녀는 수십 년 간의 금욕 생활 중엔 상상할 수 없던 체험도 하게 된다.
수녀원을 나와 혈육과 고향을 찾아 길을 떠났던 이다(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는 히치하이킹 하는 남자를 차에 태운다. 그녀는 수십 년 간의 금욕 생활 중엔 상상할 수 없던 체험도 하게 된다.
‘이다’는 친절하게 답을 주기보다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영화입니다. 우리에게 생각을 채워넣을 여백을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감독의 이같은 태도는 표현 면에서는 극히 절제하는 미니멀리즘적 스타일로 나타납니다. 흑백필름으로 찍기로 선택한 것부터가 컬러를 걷어낸 절제의 미학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절제되어 있고 음악의 사용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절제의 태도는 얼핏 간결하고 단조로운 듯하지만, 실은 꼭 필요한 요소들을 훨씬 더 강렬하게 부각시킵니다. 컬러를 걷어낸 흑백 화면 속에서 어둠과 빛들은 더 도드라집니다. 눈부신 흰빛과 뿌연 회색, 어스름 어두움 등 흑과 백의 향연은 흑/백이라는 배색이 얼마나 고급스러운지를 새삼 알게 합니다. 흑과 백이 주는 상징성은 역사의 명암을 파헤치는 영화의 테마와도 어우러집니다.

무엇을 채워넣기 보다는 없앨 것을 깨끗이 없애는데 더 주력하며 빚어낸 ‘장면 만들기(미장센)’는 아름다운 시각 이미지의 성찬(盛饌)입니다. 이다 역 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라는 배우의 연기도 절제 그 자체입니다. ‘너는 유태인이란다’ 라는 충격적 말을 들을 때도 그녀의 안면 근육들은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이런 차가움이 보는 사람 가슴을 더 요동치게 합니다. 음악 역시 일반적 영화에 비해 거의 없는 듯하다가도 중요한 고비마다 재즈에서 클래식까지 강렬한 선율들이 갑자기 두 귀를 때립니다. 소리없던 긴 시간들이 음악의 존재감을 증폭시킵니다.

절제의 미학으로 필요한 것을 더 강렬하게 드러내면서 ‘이다’는 미니멀리즘의 ‘힘’을 보여줍니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맵고 짠 양념으로 범벅된 자극적 음식들로 얼얼해졌던 혀가 최고급 생선회 한 점의 진짜 맛을 보고 녹아내리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이다’는 너무 치장해서 역겨운 모든 영화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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